지난 13일 오후 7시쯤 경기 수원시의 한 아파트 7층 베란다. 도박자금을 은닉했다는 첩보에 따라 경북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대 형사들은 총책의 친아버지 집에 들이닥쳤다. 집안 여기 저기 수색하던 경찰은 베란다 비키니옷장 속에서 검은 비닐봉지 수십 개를 찾아냈다. 붉은 노끈으로 묶은 비닐봉지는 모두 58개나 됐다. 열어 보니 봉지마다 5만원권이 100장씩 담긴 현금봉투가 10개씩 들어 있었다. 이렇게 5,000만원씩 담김 비닐봉지가 57개, 1개는 4,000만원이었다. 경찰은 압수한 현금을 사무실로 가져와 인근 금융기관에서 빌린 계수기로 세는 데 3시간 이상 걸렸다. 모두 5만원권으로 5만7,799장, 28억8,995만원이었다. 실수로 봉투 하나에 100장이 아닌 99장을 담은 것으로 추정했다.
경북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해외에 불법도박사이트를 개설해 3,600억원대의 도박자금을 운영한 혐의(도박장 개장)로 양모(76)씨 등 3명을 구속하고, 필리핀 현지에 체류 중인 총책 양모(47)씨 등 6명을 같은 혐의로 지명수배했다.
경찰에 따르면 총책 양씨는 2012년1월부터 지난해 말까지 필리핀에 체류하며 도박사이트를 개설한 뒤 현지인 딜러를 고용해 인터넷으로 생중계하면 국내 참가자들이 베팅하는 방법으로 바카라 블랙잭 등의 도박판을 운영한 혐의다. 국내 4만여 명의 참가자들이 양씨의 대포통장으로 송금한 도박자금은 모두 3,600억원. 양씨는 판돈의 3%를 딜러비로 공제하고 배당금을 돌려 주는 수법으로 100억원대의 수입을 올렸다.
경찰조사 결과 총책 양씨는 구속된 자신의 친아버지 등 3명의 인출책에게 대포통장을 배달하면 1회에 2,000만~4,000만원 가량을 현금으로 인출해 보관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버지 양씨는 전직 공무원 출신으로 아들의 범행에 가담했으며, 아들은 서울의 명문대를 중퇴한 뒤 수학학원 강사 등을 전전하다 2009년에도 같은 혐의로 구속돼 1년 6개월간 옥살이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필리핀에 체류 중인 아들 양씨 등 2명을 인터폴을 통해 수배하고, 국내의 다른 인출책 2명 등 모두 6명을 지명수배했다. 도박참가자 중 1,000만원 이상 베팅한 경우에도 수사할 방침이다.
오민석 사이버수사대장은 “100억원의 부당수익금 중 이번에 압수한 것은 30억원이 되지 않고, 인출책도 3명이었던 점에 비춰 국내에 은닉했거나 필리핀으로 불법송금한 것으로 보고 자금의 사용처를 추적 중”이라고 말했다.
정광진기자 kjche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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