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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양궁 10연패 안에 '짱콩' 있다… 늦게 폈지만 가장 화려하게 핀 장혜진

2024.09.07 04:30
양궁은 한국 올림픽의 최고 효자 종목이다. 2024 파리 올림픽에서는 양궁에 5개 걸린 금메달을 싹쓸이했다. 특히 여자 양궁은 시대가 바뀌고, 멤버가 바뀌어도 한결같이 세계 최강 자리를 지켰다. 단체전이 도입된 1988 서울 올림픽 이래 36년 동안 단 한 번도 지지 않고 10연패 위업을 이뤘다. 1984 로스앤젤레스(LA) 올림픽 서향순을 시작으로 파리 올림픽 임시현까지 10명의 ‘신궁’이 탄생한 가운데 꾸준히 팬들의 인기를 얻고 있는 건 8대 신궁 장혜진이다.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2관왕을 차지하며 ‘짱콩’ 열풍을 일으켰다. 짱콩은 키가 작은 땅콩 중에 최고가 되라는 의미를 담은 장혜진의 별명이다. 키는 158㎝로 활보다 조금 크지만 존재감은 상상 이상이었다. 주장으로 단체전 8연패를 이룬 다음 개인전에서 2관왕을 완성했다. 2020 도쿄 올림픽과 2024 파리 올림픽은 선수가 아닌 방송 해설위원으로 9연패, 10연패의 감동적인 순간을 국민들에게 생생하게 전달했다. 2022년 은퇴 후 결혼과 출산을 하고 지금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서울지역본부 도심정비계획팀 차장으로 ‘K직장인’의 삶을 살고 있는 장혜진을 지난달 28일 서울 논현동 근무지에서 만났다. 장혜진은 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 활을 잡았다. 같은 반 친구가 ‘양궁장에 놀러가자’는 말에 양궁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따라갔다. 장혜진은 “선배 언니들이 자기 키보다 큰 활을 가지고 무표정으로 쏘는 모습이 엄청 멋있어 보였다”며 “그런데 학교 코치님이 ‘맛있는 간식도 먹을 수 있다’며 양궁을 권유했다”고 돌아봤다. 그렇게 유혹에 넘어간 장혜진은 부모님에게 흔쾌히 허락을 받을 줄 알았지만 반대에 부딪쳤다. 부모님은 “운동이 쉽지 않다. 시작해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할 수 있겠냐”면서 반대했고, 장혜진은 “끝까지 해보겠다”고 이틀에 걸쳐 설득해 허락을 받아냈다. 양궁이 재미 있어서 시작했지만 성장은 더뎠다. 중학교 때까지 전국대회를 나가보지 못했다. 장혜진은 “재능이라고는 없었다”며 “남들보다 체격 조건이 좋았던 것도 아니고 엄청 왜소하고 작았다. 단지 양궁장에 가서 간식 먹고, 동료들과 코치님이랑 지내는 시간이 재미 있어서 양궁장을 들락날락하면서 (훈련을) 했었다”고 설명했다. 중학교에 진학한 뒤에는 양궁 선수한테 치명적인 ‘클리커병’이 찾아와 고생했다. 이 병은 자신감 등이 부족해 활 시위를 놓지 못하는 일종의 불안 증세다. 장혜진은 “중학교에 가니까 거리도 멀어지고 좀 더 힘들어서 양궁 선수에게 제일 불치병인 클리커병이 왔다”며 “무서워서 그런 병까지 걸렸는데도 불구하고 처음에 부모님께 ‘끝까지 해보겠다’는 말을 해놓은 게 있어서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고 털어놨다. 중학교 졸업 후 양궁부가 창단된 대구체육고로 진학한 장혜진은 1학년 때 합숙과 훈련 방식에 힘들어해 잠시 방황도 했으나 부모님 생각을 하며 버텼다. 장혜진은 “효녀 심성이 있어서 정신을 번쩍 차렸다”며 웃은 뒤 “기존에 사용하던 활 대신 다른 브랜드의 활을 쓰면서 기록이 확 눈에 띄게 올랐다. 이후 처음 메달 맛도 보게 됐고, 양궁에 더 빠지게 됐다”고 밝혔다. 대학 4학년에 늦게 태극마크를 단 장혜진은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2012년은 두고두고 아쉬운 해다. 그해 런던 올림픽을 앞두고 국가대표 후보 4인에 이름을 올렸지만 막판에 최현주에게 밀려 출전이 불발됐다. 당시 국가대표 점수가 높은 기보배와 이성진이 일찍 1, 2위를 확정했고 마지막 한 자리를 두고 장혜진과 최현주가 각축을 벌였다. 그리고 터키 안탈리아 월드컵에서 장혜진이 16강에서 탈락한 반면 최현주는 8강까지 올라 간발의 차로 최현주가 막차를 탔다. 장혜진은 “런던 올림픽 선발전 방식은 국내 선발전을 통해 4명을 뽑은 뒤 그 4명이 국제대회를 뛰면서 성적 순으로 배점을 합산해 최종 3명을 선발했다”며 "국내 선발전에서는 내가 3등을 했지만 국제대회 경험이 많이 없다 보니 성적이 너무 부진해 종합 0.5점 차로 탈락했다. 양궁은 워낙 공정하고 투명한 선발 시스템으로 유명하니까 겸허하게 결과를 받아들였다. ‘아직은 내 실력이 부족하니 더 준비를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고 떠올렸다. 숱한 시련은 장혜진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을 1년 앞두고 열린 리우 프레올림픽 때도 4위로 대회에 참가하지 못했지만 출전 선수들과 동행해 몰래 훈련하며 올림픽 꿈을 키웠다. 그리고 2016년 리우 올림픽 최종 선발전에 강채영과 마지막까지 접전을 벌여 1점 차로 막차를 탔다. 마침내 올림픽행 꿈을 이뤘지만 장혜진은 2012 런던 올림픽 2관왕 기보배와 최미선에게 가려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그렇다고 위축되는 건 없었다. 오히려 자신감이 가득 했다. 장혜진은 “런던 올림픽 탈락 후 국제대회 경험도 많이 쌓았고, 스스로 4년 전보다 성장했다고 느꼈다”며 “리우 올림픽 선발 과정도 약간 기적처럼 이뤄져 모든 기운이 나한테 오는 것 같았다. 리우에 가서도 활 쏘는 느낌이나 컨디션이 너무 좋아 자신 있는 슈팅을 많이 했었다”고 말했다. 그 결과 주장으로 단체전 1번 주자를 맡아 8연패에 큰 힘을 보탰고, 이후 개인전까지 휩쓸었다. 당시 29세의 나이로 늦게 꽃을 피웠지만 그 누구보다 화려하게 피었다. 선수들은 하나같이 개인전보다 단체전에 큰 부담을 느낀다고 말한다. 1988 서울 대회부터 이어진 연속 우승 기록을 이어가야 한다는 생각과 자신의 실수로 동료에게 피해를 주면 안 된다는 인식이 강하다. 리우 대회에서 8연패를 장식한 장혜진은 “개인전은 내 것만 잘하면 되니까 상관없는데 단체전은 내가 실수하면 안 되고 같이 힘을 모아서 해야 되니까 부담이 더 크다. 또 연속 우승 기록을 이어가야 한다는 압박감도 심했다”고 밝혔다. 파리 올림픽에서는 상징적인 10연패가 걸려 있어 후배들이 얼마나 부담을 안고 했을지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현장에서 해설을 하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장혜진은 “1988년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금메달을 놓치지 않았는데, 우승을 이어나가는 입장에서 만약 내 실수로 끊어진다면 역적이 되는 느낌일 것”이라며 “멘털이 약한 경우라면 양궁장에 정말 못 나갈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래서 10연패를 달성한 후배들이 더욱 대견하게 느껴져 직접 메달을 땄을 때보다 더 많은 눈물이 쏟아졌다고 했다. 리우 올림픽 2관왕 장혜진과 파리 올림픽 3관왕 임시현 중 누가 더 대단한가라고 묻는 짓궂은 질문에 주저하지 않고 임시현을 꼽았다. 장혜진은 “난 저기에 쪼그리고 앉아 있어야 한다”며 미소 지은 뒤 “진짜 후배들이지만 엄청 존경스럽다는 마음이 들 정도로 활을 진짜 잘 쏜다”고 칭찬했다. 한편으로는 체계적인 환경에서 훈련하는 후배들이 부럽기도 하면서, 혼성 단체전이 조금 더 일찍 리우 올림픽에 도입됐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내비쳤다. 장혜진은 “리우 때 컨디션이라면 혼성전도 우승해 최초의 3관왕이 되지 않았을까요”라며 활짝 웃었다. 한국 양궁은 공정한 선발 시스템에 뛰어난 기량을 가진 선수들이 많다. 때문에 올림픽보다 국내 선발전이 ‘바늘구멍’이다. 성공보다 실패를 겪을 꿈나무들이 훨씬 더 많기에 먼저 어려운 길을 걸은 장혜진의 조언은 큰 힘이 될 수 있다. 장혜진은 국가대표 꿈을 키우는 후배들을 향해 “계속 힘들다, 힘들다 하면 사람이 계속 부정적으로 빠질 수밖에 없고 축 처져 하기 싫게 된다”며 “그럴 때마다 일부러 더 긍정적으로 상황을 바꾸려는 생각을 했고, 이것 또한 지나간다는 마음으로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다 보니 어느 순간 목표에 가까워져 있는 걸 보게 됐다. 후배들도 지금 힘든 순간들이 있겠지만 포기하지 않고 즐겁게 그냥 훈련을 하다 보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조언을 건넸다. 직장인으로서는 후배들에게 귀감이 될 수 있도록 책임감을 갖고 일한다. 장혜진은 “양궁만 해서 우물 안 개구리였는데, LH에서 직장인으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줬다”며 “은퇴 이후에 ‘장혜진처럼 저런 삶도 꿈꿀 수 있구나’라는 희망을 후배들에게 줄 수 있다는 생각으로, 먼저 같은 길을 걸었던 선배들이 이뤄낸 업적에 내가 흠이 되지 않아야겠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배우면서 직장을 다니고 있다”고 강조했다.
"몇몇 학교에선 여학생들에게 일단 SNS에 올린 사진을 내리라고 했다면서요? 그것부터가 문제인 거예요. SNS에다 올린 게 무슨 잘못입니까. 그걸 가지고 못된 용도로 쓰는 게 범죄라는 걸 이참에 확실히 가르쳐주는 게 더 중요한 거죠." 지난 3일 서울 송파구 문정동 '법과 치유' 사무실에서 만난 오지원(47) 변호사. 이번에 터진 딥페이크 사건에 화가 난다는 듯 말을 이었다. 화가 난 이유는 딥페이크 사건으로 전국의 학부모들이 '내 아이가 혹시?'라며 술렁대서만은 아니다.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21년 법무부 산하 '디지털 성범죄 등 대응 전문위원회'에 참여한 경험 때문이기도 하다. 이 위원회는 2020년 경찰 수사 끝에 'N번방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의 주범들이 체포되면서 만들어졌다. 영화감독 변영주가 위원장을 맡고, 그룹 원더걸스 출신 가수 핫펠트(본명 박예은), N번방의 존재를 세상에 알린 ‘추적단 불꽃’과 ‘리셋’ 등이 전문위원으로 참여했으며 '검찰 미투'로 각인된 서지현 검사가 실무 TF팀장이었다. '법무부스럽지 않은 구성' 그 자체만으로도 화제가 됐다. 판사 출신인 오 변호사는 당시 대한변호사협회 여성아동특별위원으로 위원회에 참여했다. 오 변호사는 "지금 딥페이크 문제가 뜨겁다고 관련 규정 몇 개 고치고, 형량 좀 더 높이고 끝낼 것이 아니라 무한복제, 무한전파가 가능한 디지털 시대의 특성을 감안해 피해자 중심으로 접근법을 완전히 뜯어 고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가가 이런 자세로 대응하겠다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주지 않으면 새로운 유형의 디지털 범죄에 계속 당하게 될 것이라는 경고이기도 하다. 이어 "부처별로 단기간에 뭔가 내놓지 말고 정부와 국회가 협의체를 만들어 반년 이상 집중적인 논의를 거쳐 수사, 재판, 피해회복 등 전 과정을 다 스크린해봤으면 좋겠다"고도 했다. -전문위가 여러 회의 끝에 내놓은 11차례의 권고안과 보고서를 읽었다. 이번 딥페이크 사태는 어쩌면 예고된 참사처럼 보인다. "그렇다. 연예인들은 이미 딥페이크 피해를 보고 있었다. 그런 기술이 있고, 누구나 그 기술에 쉽게 당할 수 있다는 걸 모두가 알고 있었는데 아무 대책이 없었던 결과다." -지금도 '일회성 장난'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번 사건도 붙잡고 보니 10대가 거의 대부분이다. "이런 유의 사건이 터졌을 때 가해자 부모들의 반응은 어쩌다 실수다, 장난이었다는 건데 이건 두 가지를 생각해봐야 한다. 하나는 성교육의 명백한 실패라는 측면, 그리고 또 하나는 '수사해봐야 우리를 못 잡을 것'이라고 아이들이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법원은 흔히 '어리고, 초범이고, 반성한다'는 이유로 형을 깎아주는데 그게 아닐 수도 있다? "온갖 것을 다 검색해보는 인터넷 시대에 아이들도 '경찰이 수사해봐야 어차피 텔레그램은 협조하지 않을 거다, 그러면 우리를 잡지 못한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고 봐야 한다. 안 그러면 왜 굳이 텔레그램까지 가겠나. 우리는 자꾸 텔레그램을 우리로선 어쩔 수 없는 성역처럼 얘기한다. 그래서 나는 수사기관 책임이 적지 않다고 본다. 수사기관이 그런 죄를 저지를 여지를 준 것이다." -프랑스는 텔레그램 최고경영자(CEO) 파벨 두로프를 아동 성범죄 등을 방조했다는 이유로 체포했다. "맞다. 그래서 권고안에서도 텔레그램이 협조하지 않는다면 일정 기간 서비스 정지는 물론 앱 삭제 등으로 강력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우리나라가 법이 없는 나라도 아닌데, 아동 성착취물은 어느 나라 할 것 없이 강력한 범죄로 엄정하게 대응하는데, 우리만 왜 그렇게 손 놓고 있는지 모르겠다. 이게 누적되면 한국이 그런 범죄자들에게 일종의 해방구가 되지 않으리라고 누가 장담하겠나. 이미 성착취물 유통 1위 국가가 한국이라는 얘기가 나오지 않나. 플랫폼 기업들을 강하게 압박해야 하고 수사 관련 협조는 철저하게 받아내야 한다." -이용자 불편 등 여러 요소를 감안해야 하는 것 같다. "나도 텔레그램 쓴다. 편리하고 잘 쓰고 있다. 하지만 성착취물 같은 중대 범죄 행각을 잡기 위한 수사에 비협조적이다? 그렇다면 그에 상응하는 불이익을 줘야 한다." -수사기관에 '응급조치' 권한을 부여하자고도 제안했다. "기존 성범죄는 대개 피해자의 고소로 시작한다. 고소장을 받고 피해자 진술을 확보하고 그다음에 압수수색을 통해 증거를 확보한다. 그런데 딥페이크 같은 디지털 성범죄는 자기가 당한 줄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 또 피해 정도가 어느 수준인지도 모른다. 남들이 보고 알려주면 그제야 찾아보고 충격을 받는다. 기존 수사 프로세스와 안 맞다. 그러니 수사기관이 증거를 수집할 권한, 일정 정도 증거를 확보한 뒤엔 더 이상의 피해 확대를 막기 위해 접근을 차단하고 영상을 삭제할 권한 등을 줘야 한다. 수준과 방법은 일선 수사기관의 경험을 들어서 다양하게 정할 수 있다." -사생활 침해, 사찰 논란도 가능하다. "그래서 어떤 경우에 그럴 수 있는지 명확한 규정과 수사담당자들의 전문성 강화, 반복적인 교육훈련이 필수다. 기본적으로 이런 내용들은 방송통신위원회에서 수사기관으로 중심점을 이동하자는 것이다. 방통위는 위원회 조직이라 움직임이 느리다. 가정폭력법상 분리조치처럼 디지털 범죄에 재빨리 대응하기 위해서는 수사기관에 응급조치 및 긴급 임시 조치 권한을 줘야 한다." -디지털 성범죄물들은 삭제하는 것도 골치 아픈 문제다. "여성가족부 산하 한국여성인권진흥원에서 지원은 하는데 많이 부족하다. 자기가 지우겠다고 매일 밤마다 그 범죄 흔적을 스스로 뒤지는 사람, 한 달에 몇백만 원씩 제 돈 들여 지우는 사람도 부지기수다. 차라리 수사기관이나 법원이 처벌 단계에서 영상원본 삭제 등을 가해자에게 요구하고 객관적으로 확인해서 형량에다 반영할 필요가 있다. 지금은 가해자가 ‘반성합니다, 다 지웠습니다' 하면 그런가 보다 하고 객관적 확인도 없이 형량을 감경해 준다. 그러나 삭제를 양형요소로 삼으려면 수사기관도 법원도 제대로 확인을 할 필요가 있다. 피해자는 얼마나 불안하겠는가. 또 피해자에게 피해 진술 기회도 줘야 한다. 아는 사람이 저지르는 디지털 성범죄는 사회적 관계를 파괴하는 행위다. 그저 이상한 사진 몇 장 이렇게 나돌았다로 끝낼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피해자에게 '저 사람의 범행으로 인해 나의 사회적 관계가 이렇게 파괴됐습니다'라고 발언할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 -'성적 인격권'도 만들자고 했다. "온라인 공간에서의 성적 가해 행위나 '체액 테러' 같은 비접촉 성범죄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다. 메타버스 등 온라인 공간에서 미성년자 등을 상대로 심각한 성적 언동, 괴롭힘을 지속하는 경우 등은 처벌에 공백이 있다. 성적 인격권이라는 개념을 도입하면 피해자의 성적 이력이나 평판 같은 걸로 공격하는 일을 줄이는 효과도 있을 것이다. 성적 자기결정권과 함께 성적 인격권을 보호할 필요가 있다." -이번엔 좀 다를까. 여야·정부 모두 들여다보겠다고들 한다. "개인적으론 큰 기대는 안 한다. 요즘 많이 나아졌다고 하지만 '10대들의 디지털 성범죄'라고 하면 '어릴 적 여자아이 치마 들추기 비슷한 거 아니냐', '애들끼리 장난삼아 야한 사진 만들어 돌려본 거 가지고 뭘 그러냐', '실제 죽고 다치는 심각한 범죄가 얼마나 많은데 저런 건 건당 벌금 50만 원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너무 많이 봐왔기 때문이다. 그 인식의 틀을 깨야 한다. 지금 아이들에게 디지털 세상은 너무나 친숙한 공간인데, 그 세상에서 뭇 사람에게 내가 장난감처럼 소비됐다는 데서 오는 공포, 자괴감 같은 건 엄청 크다. 이 고통에 대한 공감에서 출발하지 않으면 변화는 어렵다." -안 그래도 이준석 의원 같은 사람은 과잉 규제가 걱정된다고 했다. "그 또한 의견 자체로는 충분히 낼 수 있는 의견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래서 뭘 하겠다는 건가,라고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사실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문제 같은 것에 가장 관심 있는 곳은 여가부다. 선거에 이기려고 여가부를 해체하겠다고 하지 않았던가. 미우니 고우니 해도 정부 부처 가운데 젠더적 관점을 가지고 접근하는 유일한 부처인 여가부를 저렇게 유명무실하게 만든 공백은 크다. 이런 문제는 앞으로 계속해서 더 많아질 텐데 그러면 어떻게 하자는 것인가. 답도 함께 내놔야 한다." -당시 전문위원회 논의 결과는 어떻게 됐나. "정권이 바뀌면서 흐지부지됐다. 정권이 바뀌고 서지현 검사가 다른 검찰청으로 발령받은 뒤 사표를 내면서 우리 전문위원들도 거의 다 사표를 냈다. 사실 여가부도 아니고 법무부에서 젠더적 관점을 가진 위원회를 만들었다는 거 자체는 상당히 파격적인 일이었다. 그래서 우리 권고안을 바탕으로 법무부가 열심히 뛴다면 뭔가 상당한 성과를 낼 수 있겠다는 기대도 있었는데, 그게 모두 사라진 것이다." -정권 바뀌고 한동훈 법무부 장관 때 이어질 수 없었나. "법무부에서 이 위원회를 다시 이어가겠다는 취지의 말은 있었다고 하는데, 그 뒤론 들은 게 없다. 지금이라도 당시 전문위원회의 권고안을 토대로 제대로 된 대책을 만들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