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대받을 권리, 환대할 용기
이라영 지음
동녘 발행ㆍ338쪽ㆍ1만6,000원
2016년 한국은 온갖 차별과 혐오의 각축장이다. 어떤 혐오가 더 힘이 센지, 어떤 차별이 더 악랄한지 대결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다. 인간을 구분 짓는 기준은 계급이 명확하게 나뉘었던 과거보다 더 세밀해져서, 이제는 오히려 차별의 폭력에서 하나도 누락되지 않는 현대인을 발견하는 것이 더 어려울 지경이다. 우리 모두는 여성이거나, 600만 비정규직이거나, 전라도민이거나, 임대아파트 거주자거나, 지방대 학생이기 때문에, 누구도 약자의 범주에서 완벽하게 배제될 수 없다.
세밀해져서 더 자연스러워진 이 차별들을 ‘환대받을 권리, 환대할 용기’는 예사로 넘기지 않고 짚어준다. 각종 매체에 기고한 칼럼에서 특유의 예민함으로 섬세하고 날카로운 시각을 보여준 예술사회학 연구자 이라영의 사회비평 에세이다.
소수자를 위한 일상생활의 정치학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책에서 서술되는 소수자는 이전까지 우리가 일괄적으로 구분 지어온 성적 소수자, 저소득층, 여성, 아이들에만 그치지 않는다. 저자는 다문화 가정부터 노숙인에 이르는 변방의 계급들까지 두루 아우르며 오늘날 현대사회, 특히 대한민국에 만연한 불평등의 구조를 낱낱이 해부한다.
예술사회학을 전공한 저자의 이력에 걸맞게 책은 대중문화를 매개로 최근 한국에서 수면 위로 떠오른 이슈들을 끌어와 당대의 시의성을 확보했다. 솔로 강아지 논란을 통해 어른의 시각으로 발명된 ‘동심’이라는 세계를 지적하고, 방송가의 최대 흥행 이슈로 떠오른 ‘먹방’ 혹은 ‘쿡방’ 에서 소거된 밥 하는 엄마의 노동을 꼬집어내며, ‘동안’이라는 단어에 스며있는 ‘어린 것’에 대한 강박을 비판하는 등 우리 주변에서 흔히 발견되지만 스쳐 넘겼던 숱한 편견의 사례들을 조목조목 짚어낸다.
저자의 기민함이 가장 빛나는 부분은 여성을 소재로 한 3장(‘여성, 성스럽거나 혐오스럽거나’)과 4장(‘여성의 노동은 없다’)이다. 왜 모든 언어의 기본호칭은 남자로 이루어져 있으면서 ‘미인’이라는 단어만 여성이 기본 성별인지, 왜 노상방뇨를 하는 사람은 남자가 대부분인지. 시선에서부터 호칭까지 사소하게 넘겼던 우리 일상의 성차별 요소들에 대해 전부 다시 사유할 것을 당부한다.
차별과 편견의 더께는 생각보다 더 피부처럼 자연스러워져 있어, 저자의 지적으로 마주하게 되는 민낯이 생경하다. 하지만 ‘무감각’과 ‘무심결’은 변명의 말이 될 수 없기 때문에, 누군가는 지나치게 까다롭다고 핀잔할 수도 있는 이런 예민함이 여전히 더 필요하다.
저자가 강조하는 것처럼 “절대적이고 필연적인 약자”란 없다. ‘그들’을 조롱하고 모욕하며 나는 ‘그들’이 아니고 루저가 아님을 증명하기보다는 모두 연결되어 있는 존재임을 인식하고 서로를 환대할 용기가 필요하다. 20년쯤 뒤 이 책을 읽으며, 차별과 편견에 놀랍도록 무지했던 2010년대 대한민국의 한 풍경을 두고 촌스럽다면서 깔깔거릴 수 있는 날이 올 것을 기대해본다.
한소범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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