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에는 관심 없어…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
“정치에는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형님(박근혜 대통령)과는 전화 통화도 하지 않습니다. 저를 저로 봐주는 사람들만 주변에 남은 지금이 가장 행복해요.”
‘박근혜 대통령의 올케’로 베일에 가려져 있던 서향희(42) 변호사. 2004년 박 대통령의 동생 박지만 EG 그룹 회장과 결혼해 세간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던 그는 박 대통령이 대선 후보로 떠오르던 2011년 8월 변호사를 휴업한 뒤 은둔자처럼 살았다. 아들 셋을 더 낳아 4형제를 키우고, 글을 쓰고, 주변 사람들에게 무료 법률상담을 해주었다. 정계와 얽히지 않는 것은 물론 사회생활을 전폐하다시피 했다. 그랬더니 도리어 “주변이 맑아졌다”고 서 변호사는 말한다. 자신에게 “다른 기대”를 품었던 사람들이 없지 않았지만 결국 “의심스러운 것으로 결론이 났다”는 것이다. 그렇게 주변을 정리한 그가 지난 3월 국민대 실용법학 강좌인 ‘창업과 법률’을 맡아 교수로, 컨설턴트로 돌아왔다.
15일 서울시 성북구 국민대 연구실에서 한국일보와 처음 단독 인터뷰를 가진 서 변호사는 “이제 서 코디로 불러달라”며 ‘지식코디네이터’라는 인생 2막의 목표를 펼쳐보였다. 지식코디네이터란 그가 고안해낸 새로운 직업. ‘법률도 좀 알고 인생도 좀 아는 라이프 코치’란다.
서향희 변호사는 국민대 ‘창업과 법률’ 강좌를 맡아 두 번째 수업부터 수강생 11명의 이름을 모두 외우고, 학생들에게 “평생 무료로 법률상담을 해주겠다”고 약속했다. 변호사 휴업 후 4년6개월 만에 사회에 다시 나온 만큼 강의에 대한 애착이 커 보였다. 기자는 3월부터 청강생 자격으로 수업에 참석했다.
서 변호사는 쉴 새 없이 이야기하고 농담을 섞어 가며 재치 있게 답변해 2시간에 걸친 인터뷰 내내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말을 잘하고 잘 웃고 목소리도 커서 주변사람들이 심심해하지 않겠다고 하자 “친구들이 그 맛에 저를 만난다”며 또 웃었다.
인생 2막 ‘지식코디네이터’
알파고 보고 생각한 새로운 직업
법률ㆍ인생 아는 라이프 코치로
_변호사 휴업 후 강의를 시작하기 전까지 어떻게 지냈나.
“일을 쉬게 되면서 가장 큰 변화는 아들이 4명으로 늘었다는 점이다. 딸은 노후보험이라고들 해서 ‘나도 보험에 가입해보자’고 야심 찬 계획을 품었는데 둘째(2014년생)가 아들이었다. 이후 셋째를 임신했는데 쌍둥이(2015년생)였다. ‘설마 둘 중 하나는?’하고 기대를 가졌지만 둘 다 아들이었다. 그리스 비극도 이럴 수 있나. (웃음) 친정어머니께서 ‘내 자손이 이렇게 번창할 줄은 몰랐다’고 하셨다.
또 이전에는 운동과 거리가 멀었지만 이제는 매일 요가원에 가지 않으면 몸이 힘들 만큼 요가의 맛과 멋에 푹 빠졌다. 외국어공부도 열심히 했다. 이제 영어로 대화하는데 문제가 없고, 중국어에도 큰 노력을 쏟아 중국한어수평고시(HSK) 5급을 땄다. 봄에는 박경리 기념관과 청마(靑馬) 문학관이 있는 경남 통영, 미당(未堂) 시 문학관이 있는 고창 등 지방에 다녔다. 오스트리아 비엔나와 스페인 산세바스티안, 러시아 상트 페테르부르크 같은 도시도 틈틈이 여행했다. 바캉스 문화생활이라고 할 만큼 4년 넘는 시간을 아주 풍성하게 보냈다.”
_변호사가 아닌 교수로 ‘인생 2막’을 시작했다. ‘지식코디네이터’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는데 어떤 의미인가.
“지식코디네이터는 알파고 시대를 맞아 변호사도 미래에 없어질 직업에 포함되는 것을 보고 경각심을 느껴 제가 궁여지책으로 생각해낸 새로운 직업이다. 코디(CODI)의 알파벳에 직업의 정체성도 부여했다. ‘Creative(창의적), Objective(객관적), Diligent(부지런한), Intelligent(지적인)’로 풀어낼 수 있다. 코디로서, 개인들에게 맞춤형 상담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제가 가진 법률적 역량뿐만 아니라 부족하지만 인생 선배로서 경험과 지식을 활용하고 싶다. 제가 인생 후반기를 창업을 준비하는 학생들을 위해 운영되는 창업지원단 교수로 시작한 것도 현실에 적용할 수 있는 실용적인 강의와 상담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주변 분들에게 이제 서 변호사가 아니라 ‘서 코디’로 불러달라고 하는데 의외로 반응이 좋다.”
_‘창업과 법률’ 강의에서 선보인 남다른 교수법이 인상적이다. 법률지식뿐만 아니라 한자풀이와 고전, 인간관계에 대한 팁까지 담았는데.
“한번 사는 인생을 아름다운 한 소절의 노래처럼 만들라는 뜻에서 ‘인생을 노래하는 법’을 지도하고 싶었다. 실용성에 초점을 맞춘 강의이다 보니 이론 법학이 아닌,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법률적 문제상황을 설정했다. 창업자들이 겪는 동업관계와 임대차, 횡령, 배임 등과 관련된 판례를 소개했다. ‘피노키오’와 ‘심청전’, ‘죄와 벌’, ‘안나 카레리나’ 등 학생들에게 익숙한 고전에서 사례를 제시했고, 형사법의 적법절차를 설명하기 위해 영화 ‘나의 사촌 비니’를, 창업과정에서 겪어야 하는 난관을 보여주기 위해 영화 ‘조이’를 함께 관람했다.
생소한 법률용어는 한자를 활용했다. 창업(創業)의 창(創)자가 칼로 상처를 낸다는 의미인 점을 들어 ‘창업은 원래 성공하기 힘들어서 아픈 것이’라고 설명하거나, 죄(罪)는 그릇된(非) 일을 해서 법망(法網: 그물)에 걸려든 데서 유래됐다고 설명하는 식이다. 강의를 하면 가장 많이 배우는 사람이 강의를 준비한 사람이라는 말을 실감했다. 좌충우돌한 제 첫 강의를 수강하며 저를 자극하고 리드해 준 11명의 수강생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한다.”
만만치 않은 ‘네 아들 육아’
셋째는 딸 원했는데 쌍둥이 아들
남편이 예절교육 등 계획 세워줘
_네 아들 육아가 만만치 않겠다.
“저와 남편은 물론 친정어머니와 여동생도 손을 보태며 ‘공동체 육아’를 하고 있다. 힐러리 클린턴이 ‘아이를 키우는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It takes a village to raise a child)’고 하지 않았나.
육아를 하다 보면 힘에 부칠 때가 많다. 그 때 남편이 곁에서 해주는 말 한 마디가 십 년 넘게 간다. 내 상황을 따뜻하게 봐주고 있다는 느낌이 큰 도움이 됐다. 초등학교 5학년생인 첫째 아들은 어디 가면 예의 바르다는 말을 많이 듣는 편이다. 남편이 예절교육을 잘 해주고 큰 그림을 그려준 덕분이다. 남편은 아이들과 몸으로 놀아주는 것을 좋아한다. 저보다 감각이 훨씬 젊고 약속도 잘 지킨다.
책 읽어주기는 제 몫이다. 얼마 전까지 832쪽에 달하는 찰스 디킨스의 ‘위대한 유산’을 아침마다 20쪽씩 소리 내어 읽어주었다. 74구절로 된 ‘어린이용 사자소학’을 1년간 아들과 함께 외워 실천하는데 효과 만점이다. 예를 들어 제가 식탁에서 소리를 내면 아들이 제게 ‘물출기성(勿出器聲ㆍ식탁에서 그릇 소리를 내지 말라)’ 구절을 댈 정도다.”
_이제 변호사 활동은 안 하나.
“하고 있다. 수임료나 자문료를 받지 않는 ‘공짜 동네변호사’다. 가족부터 친구와 지인, 동네 주민들까지 주변의 삶을 평화롭게 만들어주고 있다. 예전에 법무법인을 운영할 때는 가족이나 친구들조차 한 명도 안 오더니 공짜변호사가 되니 물밀듯이 밀려오고 있다. (웃음) ‘창업과 법률’ 수업을 하면서 일주일에 하루를 더 내어 실제 창업을 했거나 창업을 준비 중인 분들에게 상담을 해주기도 했다. 제가 상담한 사례를 모아 나중에 책을 낼 생각이다. 현재 집필 중인 가칭 ‘망하지 않는 창업 119’라는 책에도 녹여 넣고 있다.”
_정치하라는 주변의 권유가 많았을 것 같은데.
“정치인 집안의 남자와 결혼했을 때부터 오해하시는 분들이 많던데 분명히 말씀 드리면 정치에는 전혀 뜻이 없다. 지금까지 그랬듯 앞으로도 가슴이 시키는 대로, 본능적으로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며 사랑하는 가족, 소중한 친구들과 더불어 즐겁고 행복하게 살겠다. 이제 제 주변에는 저를 있는 그대로 봐주는 사람들만 남아서 좋다. 저에게 다른 기대를 품었던 사람들이 정리되니 주변이 맑아졌다고 할까.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의심스러웠던 분들은 결국 의심스러운 것으로 결론이 났다.”
_가장 존경하는 법조인이나 지식인은.
“73세에 물리학 박사가 되신 강봉수 전 서울지방법원장을 존경한다. 퇴임 후 우연히 서점에서 펼쳐 든 기하학 책이 학창시절 가졌던 과학에 대한 열정을 불러일으켜 하루 15시간 공부에 전념한 7년간의 유학생활 끝에 당당히 박사학위를 취득하셨다고 하는데 젊은이들도 하기 힘든 일을 해내시다니 정말 대단하다. 요즘 평균수명이 100년이니까 앞으로 남은 30년 동안 법조계에서처럼 물리학계에서도 정말 많은 업적을 남기실 거라 믿는다.
존경하는 지식인은 제 영혼의 멘토이신 공자님이다. 공자님 말씀 중에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게 되고, 생각하지 않으면 망한다는 구절이 있다. 학생들에게 생각하는 능력의 중요성을 강조할 때 인용한 내용이다. 제 좌우명도 서경에 나오는 ‘필일신(必日新)’이다. 신현림 작가의 시에서처럼 ‘알 수 없는 우주 속에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한없이 노력하는 것뿐’이며, 나를 매순간 긴장시키는 말이 있다는 것은 더 나은 삶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믿는다. 창조의 대명사이자 대한민국 대표 지성 이어령 선생님은 제 직업의 롤모델이다.”
_변호사와 교수 직함을 가진 지금도 여전히 꿈이 많다.
“아들보다 꿈이 많은 엄마다. 어릴 적부터 추리하는 것을 좋아해 탐정을 꿈꿔왔다. 탐정은 지금 하려는 코디네이터 직업의 일부다. 민간조사업법(탐정법)이 통과되면 코디이자 탐정으로서 의뢰인에게 실제적인 문제 해결을 해주고 싶다.
작가의 꿈도 있어서 매일 글을 쓴다. 새벽에 일어나 음악 칼럼을 쓰고 시는 260편 이상 썼다. 역사 속 인물에 대해서는 14편을 썼다. 하루에 4시간씩 쓰고 글쓰기에 필요한 리서치는 3시간씩 하고 있다.
나중에 나이가 들고 지금보다 더 많이 지혜로워지면 시군법원 판사로 재판을 하고 싶다. 지방에서 순박한 사람들 틈에서 행복하게 살면서 예기치 않은 사건을 겪은 사람들에게 솔로몬의 재판을 해주고 싶다. 많은 꿈 중 하나다.”
강철원 기자 strong@hankookilbo.com
박지연 기자 jyp@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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