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동남아 여행 갔을 때 코끼리 털이 행운을 가져다 준다고 해서 코끼리 트레킹하면서 코끼리 털 뽑아 왔잖아요.”
책을 함께 만든 북 디자이너가 불쑥 말했다. 동물 관련해서 말도 안 되는 이야기가 많지만 그중 상위권에 속했다. 그러던 그가 인간을 위해 관광지에서 공연을 하고, 등에 사람을 태우고, 함께 사진을 찍어주는 일을 하는 쇼 동물에 관한 책을 함께 만들고 나더니 어느 날 고해성사하듯 지난날의 행동을 털어놓은 것이다.
오랜만에 가족들과 떠난 해외여행에서 코끼리 트레킹이라는 낯선 경험에 흥분하고, 코끼리 털을 뽑으며 특별한 재미를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작은 추억이 동물에게 얼마나 고통을 주는 일인지 알게 되자 미안함을 느끼게 되었다. 알면 보이고, 무지해서 한 행동은 용서가 되는 법. 무지했던 그는 이제 여행을 가서 절대 동물 트레킹을 하거나 동물 쇼를 보지 않을 것이다. 물론 순간의 기쁨을 위해 모른척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행동이 동물에게 고통을 준다는 걸 알게 되면 멈추게 된다. 그래서 안다는 게 참 중요하다. 사실 나도 아무 것도 모르던 시절 코끼리 공연 보면서 박수를 쳤던 사람이다.
얼마 전 캄보디아의 관광지에서 관광객을 태우던 코끼리가 쓰러져 숨졌다. 코끼리의 나이는 사람으로 치면 80세가 넘는 45세였고, 40도가 넘는 무더위에 쉬지 않고 일을 하다가 스트레스와 탈진으로 심장마비를 일으켰다. 지난해 벨라루스의 공연장에서는 코끼리가 공연 도중 2m 높이의 구조물에서 떨어졌다. 코끼리는 쌓아 놓은 의자 위에서 뒷다리를 들고 물구나무서기를 하는 쇼를 선보인 후 내려오는 것을 두려워하다가 결국 추락했다. 그럼에도 공연 주최측은 그 코끼리를 다시 공연에 내보내겠다고 했다. 동물들의 노동 강도와 노동 환경이 어느 지경인지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무대, 행사장 뒤에서 동물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는 가이다. 공연과 행사에 사용할 야생 코끼리를 포획할 때는 깊은 구덩이에 빠뜨려서 사흘 밤낮을 때리는 경우가 많고, 잡은 코끼리를 굴복시키기 위해 목과 뒷다리, 앞다리를 밧줄로 묶어서 목이 졸리도록 땅에 바짝 묶어 놓은 후 물과 먹이를 제한하고, 훈련할 때는 대부분 쇠갈고리가 달린 도구로 코끼리의 성기, 입, 항문 등을 찔러 고통을 준다. 이런 과정을 거친 코끼리들이 공연도 하고, 우리를 등에도 태우는 것이다.
우리나라 인기 동물 프로그램에 소개될 정도로 유명한 여행지였던 태국의 호랑이 사원은 지난 달 호랑이에게 모진 매질과 약물을 투여했다는 혐의로 호랑이들을 압수당했다. 이곳은 관광객들이 돈을 내고 온순하게 길들여진 호랑이와 사진을 찍고, 함께 산책하는 곳으로 유명한 관광지였다.
종교적으로 코끼리를 숭배하는 인도에서는 코끼리를 죽이지는 않지만 각종 행사와 돈벌이에 이용한다. 인도의 코끼리 수의사인 패니커 박사는 1976년부터 2003년까지 자신의 병원에서 죽은 코끼리의 사망 원인을 조사했다. 조사 대상 248마리 중에 조련사에게 고문을 받다가 죽음 50마리, 영양실조와 과도한 노동으로 죽음 50마리, 관절염 또는 고문으로 혈액에 독소가 퍼져 죽음 40마리, 알 수 없는 먹이 때문에 변비로 죽음 40마리, 일을 하는 도중에 죽음 18마리였다. 248마리 중에 198마리가 고된 노동과 훈련을 위한 폭력, 형편없는 식사 등으로 죽었다. 습성에 맞지 않는 일을 시키다 보니 폭력이 행사되고, 형편없이 먹이면서 과한 노동을 시켰다는 증거이다.
여름휴가 계획을 짜는 시기이다. 어떤 곳을 가는가 보다 어떤 원칙을 갖고 여행을 할 것인지 먼저 생각해 보면 좋겠다. 문제가 된 태국 호랑이 사원이 오랫동안 동물보호단체에 의해 학대와 약물투여 혐의가 제기되었지만 유지할 수 있었던 건 끊임없이 찾아오는 관광객 덕분이었다.
동물 쇼를 보고, 동물과 사진을 찍고, 동물 트레킹을 하기 위해서 낸 20달러, 100달러는 동물학대에 일조하는 것이다. 그러니 동물 학대에 일조하는 일정은 과감히 버리자. 자본주의 사회에서 시장은 소비자의 선택에 빠르게 반응한다. 소비자가 윤리적으로 올바른 소비를 하는 순간 동물은 보다 더 인도적으로 다뤄질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벨라루스의 코끼리 사고 영상에서 내려오지 못하고 벌벌 떠는 코끼리를 조련사가 꼬챙이로 찌르면서 재촉하는 모습이 잔인하지만 더 잔인한 건 공포에 질려 주저하면서도 높은 곳에서 물구나무서기를 하는 코끼리를 보면서 박수를 치는 관객들이다. 반면 함께 공연하던 코끼리들은 걱정하듯 추락한 코끼리에게 다급하게 달려갔다.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동물의 모습이다. 올 여름 휴가 여행은 동물들에게 인간다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여행이기를 바란다.
김보경 책공장 더불어 대표
참고한 책: 코끼리는 아프다, 현암사, G.A. 브래드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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