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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360˚] 이경규, 8번의 대상과 또 한 번의 우승

입력
2016.04.02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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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9일 진행된 '마이리틀텔레비전'의 인터넷 생방송 도중 자신의 반려견들과 누워서 방송하는 이경규. 마리텔 화면 캡쳐
지난달 19일 진행된 '마이리틀텔레비전'의 인터넷 생방송 도중 자신의 반려견들과 누워서 방송하는 이경규. 마리텔 화면 캡쳐

이경규가 또 우승을 했다. 36년간의 예능 활동 중 공중파 3사 연말 방송 대상만 8번. 강호동, 김구라 등 걸출한 후배들을 발굴하고 성공시켜 '규라인'을 구축한 한국 최고의 '예능황제'가 어디선가 또 우승을 했다는 것이 새삼스러운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번 우승은 좀 특별하다. 그는 지난달 19일 진행된 MBC 마이리틀텔레비전(마리텔)의 인터넷 생방송에서 가장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1위를 했다. 마리텔은 '예능 단두대'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기존 예능인들이 처참한 성적을 거두기로 유명하다. 진행자가 인터넷 생방송으로 편집과 자막 없이 3시간을 연달아 진행해야 할 뿐만 아니라 동시에 시청자들의 실시간 반응도 살펴야 한다. 아프리카TV 등 인터넷 방송 포맷을 공중파에 접목시킨 이 프로그램에 도전장을 내민 예능인들은 이 흐름에 적응하지 못하고 '웃음 사망꾼'(박명수), '불통'(정준하)이란 평가를 받아야 했다.

이경규는 이날 자신의 집에서 반려견 뿌꾸, 두치, 남순과 뿌꾸가 낳은 6마리의 강아지들을 데리고 방송을 진행했다. 사실 이경규가 방송을 진행했다기보다는 꼬물거리는 강아지, 뿌꾸의 젖을 먹는 강아지 등 반려견들의 자연스러운 모습이 방송을 이끌었다. 이경규는 아예 강아지 옆에 누워서 방송을 진행하는 '눕방'을 선보이며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화제가 됐다.

비단 ‘마리텔’뿐 아니다. 이경규는 30년을 훌쩍 넘는 긴 시간 동안 한국 예능계에 새로운 형식을 도입하는 데 앞장서 왔다. 조금만 지루하거나 식상해도 순식간에 잊혀지는, 경쟁이 치열한 예능계에서 자칫 새로운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는 ‘꼰대’가 되어 물러났을 수도 있는데 그는 달랐다. 이경규가 중심에 있었던 새로운 한국 예능의 시작을 정리했다.

MBC '일요일일요일밤에' 몰래카메라에 걸려든 임현식의 황당한 표정과 대조적인 이경규의 익살스런 얼굴. 한국일보 자료사진
MBC '일요일일요일밤에' 몰래카메라에 걸려든 임현식의 황당한 표정과 대조적인 이경규의 익살스런 얼굴. 한국일보 자료사진

리얼 예능의 시초, 몰래카메라

이경규의 대표 프로그램이자 '리얼 버라이어티 예능'의 시초라고 불리는 '몰래카메라'는 1991년 '일요일 일요일 밤에'(일밤)의 한 코너로 방송됐다. 인기 연예인들을 돌발상황이나 당혹스러운 상황에 몰아넣고 촬영하는 방식. 지금은 이미 ‘한 물 간’ 형식이지만 당시엔 참신했다. 서태지와 아이들부터 박중훈, 현진영 등 당대의 최고 연예인들 대부분이 '몰카'에 당했다. 이후 많은 예능에서 몰래카메라 방식은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포맷이 됐다.

1992년 종영된 이 코너는 2005년 '돌아온 몰래카메라'라는 이름으로 다시 '일밤'에서 부활한다. 하지만 이미 식상해진 소재, 작위적인 설정 등으로 2년 만에 종영한다. 하지만 '이경규 몰래카메라'를 기억하는 이가 많았기 때문인지, 지난 설연휴 예능프로그램에서 시청률 1위를 차지한 것은 이경규가 우승한 MBC의 '몰카배틀-왕자의 게임'이었다.

이경규가 '양심냉장고'를 촬영하고 있는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이경규가 '양심냉장고'를 촬영하고 있는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공익 예능의 신호탄, 양심냉장고

1996년 11월부터 방영된 ‘양심냉장고’는 당시로선 드물었던 공익적 프로그램이었다. 인적 드문 새벽, 도로에 잠복하고 있던 제작진이 신호등과 정지선 등 기본적인 교통 안전 규칙을 지키는 차량에게 상품으로 냉장고 한 대를 주는 기획이었다. 첫 방송에서 횡단보도 앞 정지선을 지킨 장애인 부부가 냉장고를 받으며 큰 화제를 몰고 왔다. 차선ㆍ신호 지키기 외에도 쓰러져있는 쓰레기통 일으켜 세우기, 어르신 짐 들어드리기, 청소년에게 유해매체ㆍ주류ㆍ담배 팔지 않기 캠페인 등 다양한 주제로 프로그램이 만들어졌다.

양심냉장고는 급격한 경제성장을 따라잡지 못한 시민의식을 고취시키며 공익성과 재미를 둘 다 잡은 프로그램으로 평가 받았으며 '느낌표' '아시아 아시아' 등 공익 예능 붐의 계기가 되기도 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MBC '일요일일요일밤에'의 '이경규가 간다'에서 미국전 방송 모습. MBC 제공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MBC '일요일일요일밤에'의 '이경규가 간다'에서 미국전 방송 모습. MBC 제공

4년에 한 번 월드컵 시즌엔... '이경규가 간다'

'이경규가 간다'도 MBC ‘일밤’의 한 코너로 출발했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이 열릴 당시 이경규가 직접 프랑스로 가 응원전을 펼치며 경기를 관전하는 형식으로 진행했다. 기존 중계방송이 월드컵 경기, 그것도 국가대표팀의 경기에만 한정된 중계로 일관했던 것에 비해 '이경규가 간다'는 경기뿐만 아니라 흥분과 열광의 도가니인 경기장 안팎의 모습을 보여주며 세계인의 축제인 월드컵의 모습을 입체적으로 담아 호평을 받았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는 한국이 4강까지 올라가며 큰 성공을 거뒀고, 2006년 독일 월드컵 당시에도 '이경규가 간다'가 크게 흥행하면서 이경규는 '월드컵 예능 1인자'라는 타이틀을 얻는다.

이경규는 일밤을 떠난 후에도 '이경규가 간다'를 이어갔다. KBS '남자의 자격'에 출연하던 당시 열린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도 '남자, 월드컵을 가다!'란 코너로 직접 남아공 응원전을 떠났다. 그러나 중계권 제약 때문에 이전에 비해 다채로운 모습을 담지는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2014년 SBS ‘힐링캠프’에 출연할 때에도 이경규는 브라질 월드컵을 응원하기 위해 현지로 갔으나, 이미 경쟁자가 많아진 '월드컵 예능'에서 차별화 요소가 부족하고 국가대표팀도 저조한 성적을 거둬 명성에 맞는 성과를 얻지는 못했다.

활짝 웃는 이경규. 한국일보 자료사진
활짝 웃는 이경규. 한국일보 자료사진

"예능의 끝은 다큐" 36년차 예능인의 행보는

지난 1월 9일 방송된 MBC '무한도전'의 '예능총회'에 출연한 이경규는 "예능의 끝은 다큐멘터리"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소가 한가로이 풀 뜯는 모습만 방영해 시청률 17%를 기록했다는 노르웨이 사례를 언급했다. '마리텔'의 인터넷 생방송에서도 그는 '방송을 날로 먹는다'는 시청자의 불만에 "원래 예능의 끝은 다큐다. 오늘 방송은 내가 아닌 강아지들이 웃음을 줄 것"이라고 받아쳤다. 실제로 '예능 단두대'라는 '마리텔'에서 1위를 차지한 그의 말은 36년간 종횡무진 한국 예능계를 누비고 연구한 예능인의 경험이 녹아 든 성찰처럼 들리기도 한다. 셰프 등 비 예능인의 활동이 예능인을 압도하고 짧은 유머 동영상의 소셜미디어 확산이 공중파 프로그램의 영향력을 압도하는 시대에 그의 행보가 궁금해진다.

박소영기자 sosyo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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