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셔츠는 원래 속옷이었다. 티셔츠는 중세 시대 군인들이 입던 리넨셔츠에서 유래했다. 당시 군인들은 철사를 고리형태로 연결하여 그물처럼 짠 갑옷을 입었는데 제작기술이 좋지 않아 맨 몸에 걸칠 경우 긁히기 쉬웠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입던 게 셔츠다. 언더웨어로 사용되었던 것이다. 셔츠는 귀족들이 자신의 값비싼 겉옷이 땀과 같은 신체의 분비물로 인해 더러워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입었던 속옷이다. 결코 바깥에 드러나도록 입는 옷이 아니었다.
이런 흐름은 20세기까지 연결된다. 티셔츠라고 부르는 의복의 아이템은 처음 1880년대 유럽에서 가볍고 쉽고 빨리 마르는 옷이 필요하던 군인이나 남자의 속옷으로 만들어졌고, 편리함과 위생적이어서 스포츠맨과 노동자들이 즐겨 입었다. 티셔츠는 가볍고 통풍 기능이 좋으며 염색이 잘되는 이유로 면섬유로 만들어져 제1차 세계대전 때에는 미국 2해군의 공식적인 속옷으로 널리 이용되었다. 미국 해군의 티셔츠는 라운드넥에 흰색 면 저지로 만들어져서 현재와 같은 T자형의 형태를 가졌다. 이후 미국 육군은 1942년에서야 백색 면 티를 공식 속옷으로 받아들였다.
티셔츠가 일반 대중에게 겉옷으로 알려지게 된 것은 2차에 걸쳐 발생한 세계대전의 여파 때문이다. 세계대전 후 퇴역군인들은 일상에 돌아와서도 티셔츠를 즐겨 입었다. 국가를 위해 헌신한 영웅을 상징하는 옷이란 문화적 의미가 더해지면서 일반 대중에게 인기를 끌며 겉옷으로 티셔츠를 착용하기 시작했다. 1950년대 티셔츠는 노동자 계층의 옷이었다. 미국의 육체노동자들이 땀을 흘리며 건물을 신축하는 과정에서 자주 겉옷을 벗었는데 그때마다 흰색의 셔츠를 자주 노출하게 된 것이었다. 어느 시대건 특정 스타일의 옷이 대중의 인정을 얻으려면 유행을 지지하고 채택하는 두터운 집단의 정서가 필요하다. 옷을 둘러싼 시각적 구조의 변화는 곧 인식의 변화를 의미하기에 변화를 열망하는 대중의 소비가 밑받침 되어야 한다.
1950년대 중후반 전후, 산업 전반에 효율성을 토대로 하는 조직이 본격적으로 만들어졌다. 전쟁의 여파로 기성세대에 대한 불만이 많은 젊은 층은 국가를 위해 헌신한 군인 그룹과 전후의 피폐한 국가를 자신의 땀과 손으로 건립하던 육체노동자들에게 눈을 돌렸다. 티셔츠를 입는다는 것은 그들과의 정서적 연대를 의미했고 학교와 교회, 정부기관을 채운 수트 차림을 한 기성세대와의 결별을 의미했다. 1950년대 중반 이후로 학교의 심벌 마크, 운동 팀 등이 프린트된 티셔츠들이 등장하게 된 것도, 전후 세대가 자신의 소속감과 정체성을 밝히는 표현 수단으로 티셔츠를 접목하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결과다. 정체성을 선연하게 드러내려는 열망이 강하다는 건, 이전사회와 구분된 ‘자아’를 갖고 싶어 했다는 뜻이다. 이때부터 청바지와 접어 올린 흰색의 티셔츠는 청년세대의 저항적 메시지를 사회 전반에 토해내는 매개가 되었다.
패션의 역사에서 정치 캠페인을 위해 티셔츠를 이용한 것은 1948년 당시 공화당 후보였던 토마스 듀이였다. 그는 ‘Dew it with Dewey(듀이와 함께 촉촉한 인생을)’라고 부르짖었지만 안타깝게 트루먼 대통령에게 패했다. 티셔츠로 자신의 이미지 구축에 성공한 정치인은 케네디 대통령이다. 집에서 티셔츠 차림의 모습을 기자들이 촬영하면서 젊고 잘생긴, 거기에 스타일까지 가미한 정치인이란 이미지를 대중에게 각인시켰다. 그를 통해 티셔츠는 국가적 캐주얼웨어로 등극하게 된다. 쿠바의 혁명가인 체 게바라의 얼굴이 담긴 티셔츠가 등장한 것도 1960년대 말이다. 이후 프랑스 68혁명의 데모대도 체 게바라의 셔츠를 입었고, 결국 그의 얼굴이 박힌 셔츠는 사회적 분노를 표출하는 이상주의자, 우상파괴주의자, 언제든 대의를 위해 죽을 수 있는 인간에 대한 상징으로 사람들에게 기억되게 된 것이다.
1975년 패션매거진 엘르는 티셔츠를 민주주의적 이상을 표현하는 예술작품이라며 유행을 넘어선 기본 아이템으로 선정했다. 영국 총리였던 마가렛 대처는 어떤 사람의 정치적인 성향은 그 사람이 입은 티셔츠에서 알 수 있다고 인터뷰에서 말하기도 했다. 이렇게 티셔츠는 정치적 발언을 담아내는 시대의 그릇이 된 것이다.
김홍기 패션큐레이터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