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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끝뉴스] "울릉도에서 나가"… 메르스 자가격리 대상자 압송 소동

입력
2015.06.08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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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오후 경북 울릉도에서 방역복을 입은 울릉보건의료원 소속 직원이 땡볕 아래 서있고, 메르스 자가격리대상자인 관광객은 그늘에 앉아 구급차를 기다리고 있다. 울릉=독자 제공
지난 7일 오후 경북 울릉도에서 방역복을 입은 울릉보건의료원 소속 직원이 땡볕 아래 서있고, 메르스 자가격리대상자인 관광객은 그늘에 앉아 구급차를 기다리고 있다. 울릉=독자 제공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로 전국이 초비상 상황이었던 지난 7일 오전 11시 경북 울릉군 울릉경찰서에 비상이 걸렸습니다. 일요일인 이날 여느 휴일처럼 나른한 분위기를 깬 건 갑자기 대전지역 경찰서에서 걸려온 전화 한 통이었습니다. “메르스 자가격리 대상자가 거주지를 이탈했는데, 휴대전화 위치추적 결과 울릉군 북면에 있는 것으로 나타났으니 신병을 확보해달라”는 다급한 목소리가 수화기에서 들려왔습니다. 울릉경찰서장은 전 직원에 ‘비상’을 걸었고, 경찰관들은 사람 찾기에 동분서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한 시간쯤 지났을까요. 울릉경찰서 한 간부의 몇 차례 통화 시도 끝에 자가격리 대상자인 A(55)씨가 전화를 받았습니다. “밥을 먹으러 식당에 있다”는 답이었습니다. 일단 위치가 확인됐으니 한시름 덜었습니다. 정확한 위치를 파악한 경찰은 현장에 출동해 울릉보건의료원 북면보건지소로 데려와 격리할 수 있었습니다. 이 과정에서도 한바탕 실랑이가 벌어졌습니다. 자가격리대상자이니 어서 가자는 보건소 직원과 “내가 왜 가야 하냐”며 버티는 A씨는 한동안 말싸움을 해야 했습니다.

A씨는 4월 말부터 5월 말까지 관절염 수술을 위해 대전 대청병원에 입원했습니다. 공교롭게도 입원 기간 중에 이 병원에서 메르스 확진환자가 나왔죠. 직접 접촉은 없었던 탓에 능동감시대상자로 지정됐는데, 공교롭게도 울릉도 여행을 떠나기 전날인 5일 오후 8시 자가격리 대상자로 격상됐습니다. 방역당국은 이 같은 사실을 전달하기 위해 A씨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고, 다음날 아침에도 연락이 닿지 않아 직접 집을 방문하고서야 울릉도로 여행간 사실을 알게 된 겁니다. A씨는 지인 5명과 함께 여행사 패키지 울릉도 관광상품을 신청, 6일 아침 일찍 강릉항으로 떠났습니다. 이후에도 보건소 측은 수 차례 전화를 걸고 문자메시지를 보내도 응답이 없자 방역당국이 경찰에 위치추적을 요청했고, 울릉도에서 휴대전화 신호가 잡혔습니다. 경찰까지 출동하게 된 배경입니다.

능동감시 대상자는 격리될 필요 없이 하루에 한 두 차례 보건당국의 전화 확인으로 문진을 받고 보건소에서 확인증을 교부 받으면 되다 보니 일이 벌어진 겁니다. 기대했던 울릉도 관광을 한 순간 망친 것도 모자라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자 화가 난 A씨는 격분했습니다. 그러다 군청 직원들과 경찰관들의 지속된 설득에 한층 누그러졌고 적극 협조하겠다고 나왔습니다. A씨가 왜 보건소 측의 전화를 받지 않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울릉군은 A씨를 타고 온 배에 태워 보내려 했습니다. 강릉항에 도착하면 미리 대기하던 대전보건소 차량을 타고 집까지 가도록 하는 것이었죠. 그런데 일이 꼬였습니다. 여객선 출항시간인 오후 5시가 다 됐을 무렵, 선장이 못 태우겠다고 한 겁니다. 다른 승객들이 반발했기 때문입니다. 해운법상 선장은 선박 운항에 위험하다 판단되면 승객의 탑승을 불허할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A씨와 함께 온 패키지관광객 36명 모두 태우지 않겠다고 하다가 A씨를 제외한 나머지 관광객만 타고 가는 것으로 정리됐습니다.

당황한 울릉군청과 경찰서 직원들은 경북도에 소방헬기 지원을 요청했는데, 이마저 여의치 않았습니다. 규정 상 소방헬기는 메르스 확진환자만 이송할 수 있어 A씨처럼 자가격리대상자는 안 된다는 거죠.

청정 울릉도에 메르스의 메자와도 연관되는 것을 두려워한 울릉군. 결국 군 소유 행정선으로 울릉-독도를 운항하며 어업지도 등을 하는 ‘평화호’를 이용해 내보내기로 결정했습니다. 강원 강릉항이 멀기 때문에 기항지는 울릉도와 가장 가까운 육지인 묵호항으로 정했습니다. 강릉에 대기중이던 대전 서구보건소 직원들도 묵호까지 내려와야 했습니다.

A씨를 태운 울릉군 행정선은 7일 오후 6시45분 사동항(울릉신항)을 출발했습니다. 80명이 탈 수 있는 평화호에는 선장과 기관사 등 승무원 7명과 공중보건의 1명, A씨까지 단 9명이었습니다. 여객선보다 속도가 느린 탓에 평소 2시간30분이면 충분한 거리를 4시간 넘게 걸려 오후 11시 5분 묵호항에 닿을 수 있었습니다.

A씨를 무사히 육지로 ‘출도’시킨 나머지 8명은 기름을 보충하고 배를 정비한 다음 다음날인 8일 오전 7시 묵호항을 출발해 오전 11시30분에야 사동항으로 복귀할 수 있었습니다. 왕복 기름값만 1,000만원 넘게 들어갔습니다.

울릉경찰서 관계자는 “행여 군청과 경찰의 대응이 지나치다 할 수 있지만 적절하고 신속한 대처였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A씨에게 놀란 경북도는 8일 메르스 차단을 위해 울릉도에 열화상카메라 3대를 지원키로 했습니다. 이렇게라도 청정 울릉도가 메르스로부터도 청정함을 유지할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김정혜기자 kj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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