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를 막론하고 TV가 상용화된 이후 대중의 표심(票心)은 거실에서 완성되어 왔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선거에 나서는 후보들의 정책, 정치성향을 손쉽게 들여다볼 수 있는 뉴스와 토론 방송은 선택의 기로에 선 유권자들의 방향을 이끄는 매우 영향력이 큰 도구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족이나 모임이 오직 ‘1개의 스크린’을 공유하는 이른바 ‘거실 미디어(Living Room Media)’의 시대는 개인별 미디어 사용을 확산시킨 스마트폰의 대중화로 사실상 종언을 고한 지 오래다. 이런 트렌드를 증명이라도 하듯 11월 대선을 앞둔 미국 사회에선 최근 인터넷 동영상 서비스 유튜브(Youtube)가 유권자들의 표심을 좌우하는 가장 핵심적인 미디어로 떠올랐다는 보도가 잇따른다. 후보들은 분량이 짧은 만큼 집중도가 높아 선거운동에 효과적인 유튜브를 활용하기 위해 거금을 아낌없이 투자하는가 하면, 유권자들은 답이라도 하듯 어떤 매체보다 열성적으로 들여다본다.
선거 관련 유튜브 동영상 1억1,000만 시간 시청
최근 구글의 지주회사 ‘알파벳’이 발표한 ‘온라인 영상물과 정치광고가 유권자에 미치는 영향’이란 제목의 보고서에 따르면 미 민주ㆍ공화당 경선 주자들이 하나둘 활동을 시작한 지난해 4월부터 올 2월까지 선거운동 관련 유튜브 동영상의 총 시청시간은 1억1,000만 시간에 달한다. 이는 환산할 경우 458만3,333일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시간으로 대략 한 편 당 5분 내외인 유튜브 동영상을 감안하면 무려 13억2,000만 편에 이르는 분량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선거운동 유튜브 시청분량은 같은 기간 CNN, C-SPAN, MSNBC, FOX News에서 방영된 모든 선거관련 방송을 합한 것보다 100배나 많은 규모이다”고 설명했다.
고무적인 것은 선거 관련 유튜브 동영상 시청자가 특정 연령층에 쏠려있지 않다는 점이다. 지면이나 방송 등 기존 미디어에 대한 집착이 강하면서 전통적으로 투표율이 높은 중년층 이상이 유튜브 동영상을 외면한다면 의미가 반감되기 때문이다. 구글의 자체조사에 따르면 선거 관련 유튜브 동영상 시청자 가운데 35세 이하(일명 밀레니얼 세대) 유권자의 비중은 59%에 그쳤다. 전체 시청자 중 45세 이상도 26%로 4명 중 1명 꼴이다.
전통적 방송 프로그램을 압도하는 유튜브 선거 동영상의 인기는 후보자들의 적극적인 투자에서 비롯되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보고서에 따르면 각 당 대선 후보 캠프가 유튜브 동영상에 집행한 제작, 광고비는 지난 2월 기준으로 2015년 10월보다 3배 가까이(294%)나 증가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시장조사기관 보렐 어소시에이션의 자료를 인용해 올해 미국 대선 주자들이 유튜브 등 온라인 동영상 제작과 광고에 신문, 라디오, TV 등 일반 매체에 들어간 비용 전체보다 많은 3억 달러를 쏟아 넣었다고 보도했다. 유튜브측은 “2월 아이오와 코커스와 뉴햄프셔 예비경선을 앞두고는 자체적으로 설정한 선거관련 동영상 분량 가운데 빈 공간이 전혀 없었다”고 밝혔다.
선택이 아닌 필수적인 프로파간다 도구
유튜브 동영상 등 인터넷과 모바일 공간에서 유통되는 선거 콘텐츠의 중요도가 이번 대선에서 처음으로 부각된 것은 아니다. 2007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민주당의 유력 후보로 혜성처럼 등장했을 당시 ‘오바마 걸(Obama girl)’시리즈로 불린 동영상이 크게 인기를 얻으면서 온라인 동영상 선거운동 시대는 개막된 셈이다.
하지만 이로부터 9년여가 지난 올해 대선 국면에서 유튜브 동영상 선거 콘텐츠는 승리를 위해 반드시 활용해야 하는 프로파간다(선전) 도구로 자리잡았다. 미국 언론들은 이러한 현상을 놓고 ‘유튜브 디지털 포퓰리즘(Youtube Digital Populism)’이라는 신조어로 설명할 정도이다. 공화당 테드 크루즈 후보의 선거캠페인 전략가인 크리스 윌슨은 “2016년 대선 승리여부는 유튜브를 얼마나 제대로 써먹느냐에 달려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며 “(유튜브가) 선거운동에 활용된 것은 처음이 아니지만 이제 유튜브에 신경 쓰지 않는다면 지는 것 외에 다른 결과를 기대할 수 없다”고 워싱턴포스트에 전했다.
실제 구글의 데이터에 따르면 이번 선거에서 가장 두각을 나타내는 후보인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의 유튜브 활용도가 가장 높다. WP는 트럼프에 이어 민주당의 버니 샌더스, 힐러리 클린턴, 테드 크루즈 후보 순으로 유튜브를 선거캠페인에 많이 사용한다는 점에 주목하며 “이러한 순서가 실제 경선에 전혀 반영되지 않는다고 누구도 말할 수 없다”고 보도했다.
유튜브 선거운동이 다른 미디어를 통한 것보다 효과적이며, 그렇다고 여겨지는 이유는 철저하게 개인화된 매체라는 특성 때문이다. 가족이나 TV를 공유하는 주변 사람의 눈치를 볼 것 없이 원하는 후보자를 선택해 영상을 소비할 수 있으며, 유튜브와 연결되는 여러 소셜미디어로 손쉽게 동영상에 대한 느낌을 공유할 수 있다. 최근 가장 인기가 높았던 대선 관련 유튜브 동영상의 주인공은 민주당의 버니 샌더스 후보이다. 1분 정도에 불과한 이 영상은 지지를 선언한 사이먼 앤 가펑클의 ‘아메리카(America)’를 배경음악으로 한다. 짧은 영상 속에 자본주의의 그늘을 적시하는 샌더스의 감성을 담은 영상은 며칠 만에 300만 명의 입길에 올랐다.
WP에 따르면 유튜브는 지난해 이후 대규모의 선거 관련 동영상 전담팀을 운영하고 있다. 민주, 공화당 담당으로 나눠진 두 개의 팀은 정치전략 전문가들의 지휘를 받는다. 이들의 규모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고 있지만 WP는 “유튜브가 포천(Fotune) 선정 500대 기업들의 관련 동영상 제작팀과 비슷한 수준의 인력을 선거 관련팀에 배치해 운영하고 있다”고 전했다.
양홍주기자 yangho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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