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군대 가잖아" "여자는 아기 낳잖아"
한국에서 남녀 갈등에 관한 얘기가 나올 때마다 본질을 덮어 버리는 '군대와 출산', 소모적인 댓글 논쟁이 인터넷 공간에서 또 불붙었습니다. 세계경제포럼(SEF)이 지난 19일 발표한 '세계 성 격차 보고서 2015'에 따르면 한국의 양성평등 수준이 세계 115위에 불과하다는 조사 결과가 알려지면서죠. 특히 남녀 임금 격차는 116위로 네팔(105위)이나 캄보디아(15위)보다 뒤처져 "남녀 임금 평등은 후진국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평가에 갑론을박이 벌어졌습니다. (▶바로 가기)
보도에 대한 네티즌들의 반응은 크게 세 가지였습니다. "이래서 결혼하면 남자가 손해다"(dhfl****)라는 '여성혐오형'과 "우리나라 출산율이 낮은 건 다 이유가 있다"(ssjp***)는 '여성이해형', "여성 여러분들 이민을 갑시다"(zumi****)라는 '탈조선형'이죠. 한국의 남녀 임금 차가 심한 게 정녕 군대 때문, 출산 탓일까요? 전문가들에게 상세히 물었습니다.
● '여성 활약 시대'의 그늘
세계경제포럼은 경제, 정치, 건강 교육 등 4개 부문에서 성 격차를 계량화해 순위를 매겨 2006년부터 매년 순위를 매겨 발표합니다. (▶바로 가기) 매년 하위권에 머무는 한국의 성 평등 지수, 그 가운데서도 남녀 임금 격차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2015년 기준 한국 여성 평균 소득은 2만 2,263달러로 남성(4만 달러)의 절반을 상회하는 수준입니다.
아이러니 합니다. 여성들의 사회 진출은 늘어났습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4년 여학생의 대학 진학률은 74.6%로 남학생(67.6%)보다 높았고, 여성 고용률도 49.5%로 전년에 비해 0.7%p 올랐습니다. 각종 고시에서도 여풍은 두드러집니다. 올해 공무원 시험에선 5급(48.2%)에 이어 7급(37.4%)에서도 여성 합격자 비율이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는 소식도 전해졌습니다.
여성의 활약이 돋보인다는 시대, 왜 남녀 임금 격차는 좀처럼 줄지 않는 걸까요. 권현지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결혼과 출산·육아로 인한 경력단절, 노후소득 불안으로 인한 여성의 저임금·불완전취업, 고소득 직종 및 고위 직급에서의 낮은 여성 비중 등 복합적인 요인들이 임금격차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 격차의 시작점은 '경력단절'
일부 네티즌들의 지적처럼 여성이 출산으로 소비한 시간과 경제적 손실은 남성이 군대에서 소비한 시간과 경제적 손실로 등가교환 될 수 있지 않을까요. 김난주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20대 남녀의 고용률만 생각해 군대와 출산을 동일한 선상에 놓고 비교하는 건 편협한 시각이다. 남녀 임금 격차의 본질을 이해하려면 '개인'으로서의 여성이 아니라 '가족의 일원'으로서의 여성의 삶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실제 남녀 임금 격차가 벌어지는 구간, 즉 여성이 일을 그만두는 건 결혼과 출산·육아가 시작되는 시점입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4년 기준 15~54세 기혼여성 956만명 중 임신, 출산, 육아 등의 사유로 직장을 그만둔 경력단절 여성(경단녀)은 20.7%인 197만7,000명으로 집계됐습니다. 연령대별로 보면 30대 경단녀가 111만6,000명(52.2%)으로 전체 경단녀의
절반을 넘습니다.
김 부연구위원은 "출산과 육아로 경력이 단절된 여성이 복귀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대략 7~8년이고, 대개는 일·가정 양립을 원하기 때문에 가정에 충실할 수 있는 곳인 시간제 일자리를 울며 겨자먹기로 선택하고 있다”며 “이들과 청년들이 찾는 일자리는 중첩되지 않고, 만약 남성들도 7~8년 경력이 단절됐다면 여성들과 같은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 비정규직·유리천장… '엄마'의 비애
남녀 임금 격차가 좀처럼 개선되지 않는 이유는 여성의 고용지위도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이 통계청의 '2015년 8월 경제활동부가조사'를 분석한 '비정규직 규모와 실태'에 따르면 남성 정규직 임금을 100%라 할 때 여성 정규직 임금은 68.7%, 남성 비정규직 임금은 53.7%, 여성 비정규직 임금은 36.3%로 격차가 매우 컸습니다. 고용형태와 성차별로 인한 임금 격차의 피해가 여성에게 집중되고 있는 셈입니다.
김 위원은 “30대 이후 남성이 정규직으로 직장에서 안정을 찾아갈 때 여성은 출산과 육아를 이유로 경력이 단절되고 비정규직 일자리로 돌아오면서 임금 격차는 고착화된다”면서 “비정규직 대다수는 정규직을 중심으로 설계된 현행 사회보험 가입률과 노동조건 적용률이 30%대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어 현행제도로는 비정규직을 보호하는데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경력단절 대신 경력유지를 선택한 엄마들의 현실도 녹록지 않습니다. 여성정책연구원의 '2015 여성관리자패널조사'에 따르면 2014년 기준 248개의 기업을 조사한 결과, 정규직 여성 근로자 중 사원은 45.5%, 대리급은 46.6%, 과장급은 31.4%, 차장급은 13.6%, 부장급은 7.4%, 임원급은 3.5% 순으로 나타났습니다. 고위직일수록 여성의 비율이 현격히 줄어듦을 뜻합니다. 김 부연구위원은 "일본의 경우 지난해에 여성고용촉진법을 추진해 2020년까지 '지도적 지위' 여성 비율을 30% 높이겠다는 목표를 세웠다"며 "경력유지를 택한 여성을 위한 제도와 사회적 분위기가 뒷받침 되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 여전히 보수적인 한국사회
여성의 사회진출에 대한 한국 사회의 보수성은 여전합니다. 26일 통계청이 발표한 '2015 사회조사'에 따르면 '여성 취업'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남성은 81.9%로 나타났습니다. 이 가운데 '가정 일에 관계없이' 직업을 갖는 게 좋다고 답한 남성은 49.6%로 절반을 넘지 못했습니다. 여성취업의 가장 큰 장애요인은 남녀 모두 육아부담(47.5%)을 첫 손으로 꼽았고, 사회적 편견 관행(21.5%), 불평등한 근로여건(10.8%), 가사부담(5.9%) 순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우리사회의 성 평등 담론은 여성을 약자로 여기고 보호하는 제도 마련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동반자'로서의 양성평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부족하다"고 꼬집었습니다. 이 교수는 “일·가정 양립은 여성정책이 아니라 노동정책”이라며 “경력단절과 맞물린 저출산 문제를 해결한 스웨덴의 사례를 보자. 남성 육아휴직을 반강제로 실시하고, 남녀 모두 가정에 충실하도록 배려한 시간제 정규직 일자리를 공급하면서 출산율이 올랐다”고 설명했습니다. (▶스웨덴의 모습은)
그렇다면, 임금부문에서 양성평등이 실현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부분은 크게 세가지 입니다. 비정규직을 위한 근로조건 개선, 일·가정 양립을 위한 제도 보완, 좋은 일자리 제공.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단기적으로는 여성 근로자가 밀집되어 있는 저임금 서비스업종 등의 근로조건 개선을 위한 법정 최저임금 인상 등이 필요하지만, 장기적으론 여성경제활동의 장애로 볼 수 있는 출산과 육아에 대한 부담을 국가와 사회가 나눠 질 수 있는 정책이 나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김지현기자 hyun162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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