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돌과 알파고의 이번 대국은 가까운 미래에 인간의 감정이 감정 없는 인공 지능에 휘둘리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인류 진화 관점에서 역사를 풀어 쓴 ‘사피엔스’(김영사 발행)의 저자 유발 노아 하라리(40) 히브리대 역사학과 교수는 내달 25일 내한을 앞두고 최근 이스라엘 메실랏 시온의 자택에서 진행한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15일까지 이어지는 프로바둑기사 이세돌 9단과 구글 딥마인드의 인공지능 알파고의 대국에 대해 그는 “누가 최종적으로 이길지 알 수 없지만 확실한 것은 이9단이 끝내 이긴다 해도 인공 지능이 5∼10년 내에 인류를 앞서게 될 거라는 점”이라며 “기술 발전에 따라 인류는 지게 돼 있다”고 전망했다. 이세돌의 불계패로 끝이 난 첫 대국에 대해선 “이세돌이 알파고처럼 감정이 없었더라면 불계패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끝까지 승부수를 찾아낼 수도 있었다”고 자신의 견해를 내비쳤다.
‘사피엔스’는 변방의 유인원 호모 사피엔스가 어떻게 먹이사슬의 정점에 오르게 됐는지를 탐구하는 책이다. 하라리 교수는 이 책에서 인류학 생물학 역사학 경제학 심리학 현대과학 등 다양한 학문 분야를 종횡무진하며 인류의 시원부터 현재에 이르는 진보를 짚어낸다. ‘빅히스토리’를 연구하는 그의 관심사는 미래의 인류다. ‘사피엔스’에서 그는 대체로 미래에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하지만 인간과 인공지능의 관계에는 낙관과 비관이 엇갈린다. 사람의 말을 잘 듣는 인공 지능의 활약으로 삶이 더욱 편안하고 윤택해질 수도 있지만 감정이 없는 컴퓨터가 인간의 감정을 조종하게 될 수도 있다는 점은 염려스럽다.
이번 대국이 단순히 인간과 인공지능의 두뇌싸움의 문제로 그치지 않는 건 그 때문이다. 과학기술의 발전은 승패의 의미를 너머 인류에 큰 화두를 던진다. 하라리 교수는 “기술 변화 속도가 빨라짐에 따라 새로운 세대에 무엇을 교육할지 국가들이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고 우려하며 “최첨단 인공지능 알고리즘이 인간 자신보다 인간을 더 잘 파악하고 분석해 직업이나 배우자 선택에 참견하게 될지도 모르니 인간은 이러한 발전에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피엔스’에서 인간을 현재로 이르게 한 세 가지 혁명으로 인지ㆍ농업ㆍ과학혁명을 꼽았던 하라리 교수는 “인류가 세 혁명을 겪으면서도 인간 그 자체에 대한 변화는 아직 겪지 않았다”며 “앞으로 인간은 50∼100년 내 마음과 뇌, 신체가 바뀌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20일 일정으로 아시아를 방문하는 하라리 교수는 한국에서 약 일주일간 머무르며 독자들과 이 같은 내용의 이야기를 나눌 예정이다. 그는 “한국 독자들과 대화하고 한국을 알기 위해 서울과 남부 지방 등에 갈 계획”이라며 “단순히 책 내용을 열거하는 강연이 아니라 역사와 미래 사이에서 인류에게 필요한 새로운 화두를 던지고 싶다”고 했다. 그는 또 “과학 발전이 인간에 끼치는 영향력은 각 문화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며 정치적 상황에 따라 군사 분야에서만 기술이 발전한 나라로 북한을 거론하기도 했다.
지난해 11월 말 국내 출간된 ‘사피엔스’는 3개월 만에 8만부 이상 팔리며 여전히 종합도서 순위 20위 안에 올라 있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된 ‘사피엔스’에 이어 그는 과학 발전에 따라 점점 쓸모가 줄어들고 있는 인류의 위기를 다룬 저서를 올 가을 출간할 계획이다.
고경석기자 kave@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