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철 관광시설관리사업소 단속반장… 올해 말 정년 퇴직
37년간 구조자만 100여명…“해수욕장이 부르면 달려올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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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워요. 은퇴하더라도 해운대해수욕장이 부르면 언제든 달려가겠습니다.”
올해 환갑을 맞은 박용철(60ㆍ사진) 해운대 관광시설관리사업소 단속반장은 직함을 내려놓더라도 해운대해수욕장과의 ‘의리’를 지키고 싶다고 했다. 멀쩡한 직장을 부모님 몰래 그만두고 해운대해수욕장에서 구조활동을 시작한 지도 37년이 지났다. 어느덧 정년을 채워 올해 말 퇴직하게 된 그의 표정에는 시원함보다 섭섭함이 앞섰다.
“늙은 사람한테 무슨 이야기를 들을 게 있다고…”. 비가 내린 6일 오전 11시 해운대 자택에서 만난 박 반장은 허리보호대를 차며 말했다. 불과 17일 전 디스크 수술로 거동이 불편한 탓이다. 박 반장은 “해수욕장 개장한다고 이래저래 무리를 한 것 같다”며 “며칠 쉬면 괜찮은데 오늘은 비까지 내려서 더 아픈 것 같다”고 말했다. 진료의사는 박 반장에게 젊을 때 관리를 안 한 탓이라고 했단다. 박 반장은 “1996~1997년 해운대구청이 바가지 근절 차원에서 공용파라솔을 운영했다”며 “개당 3~4㎏짜리 파라솔을 많을 때는 10묶음씩 양쪽에 지고 다닐 정도로 열정적이었다”고 말했다.
박 반장이 용팔이라는 별명을 얻은 것은 우연찮은 기회였다. 1974년 수영구의 한 와이어 생산업체에서 일하다가 왼쪽다리를 다쳐 3개월간 2차례나 수술을 받고 퇴원한 직후였다. 수영구 민락동(광안리) 방파제에 앉아 친구들과 술잔을 기울이려던 차에 그의 눈 앞에서 고교생 3명이 탄 보트가 뒤집어졌다. 그와 친구들은 망설일 틈 없이 바다에 뛰어들어 학생들을 구해냈다. 박 반장은 “고향이 영도라 어릴 때부터 수영에는 자신이 있었다”고 말했다. 구조활동은 그 때부터였다. 그는 “1970년대 배우 박노식 주연의 용팔이 시리즈가 크게 히트를 쳤다”며 “우연찮게 사건에 휘말린 용팔이가 의리를 앞세워 문제를 해결하는 모습이 나와 닮았다며 주변에서 그렇게 부르더라”고 수줍은 미소를 보였다.
피서지 중심이 이동하며 1979년 그는 광안리에서 해운대해수욕장으로 옮겨왔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뒀지만 부모님에게는 알리지 않았다. 박 반장은 “어릴 때 영도다리 밑에서 수영하다가 검정 고무신을 잃어버리고 집에 들어가 쫓겨난 것이 여러 번이었다”며 “돌이켜보면 부모님의 타박은 고무신 때문만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는 “행여나 바다에서 사고라도 당할까 봐 걱정했기 때문”이라며 “아들이 멀쩡한 직장을 그만두고 바다에 들어간다니 얼마나 걱정하셨겠나”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박 반장의 결정을 뒤늦게 안 어머니는 점집을 자주 들렀다고 한다. 박 반장은 “물을 좋아하면 물에서 죽고, 산을 좋아하면 산에서 죽는다고 걱정하셨다”고 말했다.
정확히 세어본 적은 없지만 박 반장이 구한 생명은 100명이 넘는다. 그럼에도 박 반장의 기억에는 살리지 못한 구조자가 먼저 떠오른다. 그는 조용히 사진 한 장을 꺼내 보였다. 사진에는 8~9살로 보이는 어린이가 팔을 축 늘어뜨린 채 구조요원 품에 안겨있었다. 박 반장은 “인공호흡도 하고 병원으로 옮겼는데… 살아있으면 지금쯤 40~50대는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100여명을 구조하며 죽을 고비도 여러 차례 넘겼다. 그를 지독히도 괴롭힌 것은 ‘이안류’(수면 아래서 해안 반대편으로 나가는 강한 물살)로 박 반장은 ‘바다의 급류’라고 불렀다. 그는 “이안류가 뭔지도 모를 때였는데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러 들어가자마자 물살이 빠르다는 것을 느꼈다”며 “게다가 피구조자가 내 머리채를 잡았는데 힘이 어찌나 센지 도저히 뿌리칠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다행히 재빨리 구명보트가 접근해 그들을 구했다. 박 반장은 “이안류를 만나면 아무리 헤엄을 쳐도 제자리이고 어느 순간 힘이 빠져 물을 먹고 사고를 당하게 된다”며 “전문가들은 대각선 방향으로 천천히 빠져 나온다”고 대처 방법을 귀띔했다.
올해 연말 퇴직하는 박 반장에게 해운대해수욕장 개장은 마지막 행사다. 박 반장은 주말이 끝나면 어김 없이 새벽 3~4시 무렵 해수욕장에서 만날 수 있다. 청소차(비치 클리너)를 몰고 깨진 유리병, 음식물 등 피서객들이 밤새 남긴 쓰레기를 치우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기 때문이다. 박 반장은 “올해 해운대해수욕장은 사고를 당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이 무사히 즐길 수 있게 하는 것이 목표”라며 “굳이 올해가 마지막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해수욕장이 나를 필요로 하다면 언제든 돌아올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정치섭 기자 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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