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 올라봐야 결국 집세를 내야 합니다. 자본은 당신에게 어딘가에서 벌게 해주지만, 또 다른 어디선가는 돈을 내게 합니다. 제가 평생 들어온 말이 ‘그래도 성장은 있어야 한다’입니다. 맞습니다. 성장해야죠. 그런데 이런 방식의 성장이라면 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한국을 방문한 영국의 저명한 마르크스주의 지리학자 데이비드 하비(81) 뉴욕시립대 대학원 교수는 21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하비는 마르크스의 ‘자본’을 강독해나가면서 지리의 변증법을 탐구해온 학자다. 대개의 이론이 지리를 환경적 요인으로써 미리 주어진 것으로 간주한다면, 하비는 이 지리적 조건 역시 인간에 의해 변증법적으로 재구성되는 것이라는 주장을 펴왔다. 프랑스 파리의 오스망화, 미국의 교외주거화 현상 등에 대한 연구를 바탕으로 자본의 논리가 지리적 현상에 어떻게 관철되는지, 이에 따른 보수적 심성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대한 분석은 널리 알려져 있다.
계간 ‘창작과비평’ 50주년을 기념해 창비 초청으로 방한한 하비는 이날 간담회와 이어진 ‘자본주의의 위기와 일상의 정치’라는 대중 강연에서 마르크스의 이론을 기반으로 ‘반자본적 도시화’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것이 자신의 과제였다고 말했다.
하비는 ‘반성장’이란 주제가 저소득 취약 계층에 가장 먼저 타격을 준다는 점을 인정했다. 좌파이론가들은 ‘자발적 가난’을 미화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일반인들의 욕망, 이를 의식해야 하는 정치인들의 표 계산 등을 감안하면 현실성이 있느냐는 지적을 둘째치고, 과연 인간 본성에 합당한가라는 반론이 제기될 수 밖에 없다. 정작 좌파 자신은 풍족하게 하는 경우가 많아 ‘캐비어 좌파’라는 비아냥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그는 ‘반성장’이란 단어의 파격성은 인정했다. 하비는 “저소득층에게 가장 큰 혜택은 성장이며 1950, 60년대 유럽의 사민주의 정권들은 이를 실제로 증명해 보이기도 했다”면서 “그러나 1970년대 이후 세상은 그렇지 못하다”고 잘라 말했다. 최근 30~40년간 사회적 불평등이 만연하면서 저소득층의 상대적 피해와 박탈감이 오히려 더 커지고 있기 때문에 이제는 사회시스템의 변화를 찾아볼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하비는 “성장이 존재해야 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동시에 장기적으로 불필요한 성장은 억제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 제대로 된 정치적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복지, 이민 등 다양한 주제를 둘러싼 다양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지만, 그 문제의 근본 원인은 자본이라는 설명이다.
이런 차원에서 하비는 마르크스 대중화 작업에 집중해왔다. 그는 “일반인들은 소련식 사회주의 이미지 때문에 마르크스 이론에 대해 잘못된 인상을 가지고 있고, 전문가들은 필요 이상으로 복잡하게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면서 “그게 바로 지난 15년간 내가 ‘마르크스 프로젝트’를 진행해온 이유”라고 설명했다. 그는 “마르크스의 저술에 대한 신중한 재해석 작업이 진행되고 있고 나도 그 중 한 명”이라면서 “그러나 마르크스가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었다는 식의 도그마적인 해석도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으로선 주류 경제이론의 도그마 문제가 더 심각해보인다”고 꼬집기도 했다.
하비는 올 하반기에 1970년대 이후 다양한 주제에 대해 써온 에세이들을 한데 묶은 ‘데이비드 하비의 세계를 보는 눈’을 창비에서 낼 예정이다. 그는 “워낙 다양한 주제를 다뤄서인지 몇몇 사람들은 ‘당신 책은 지리학이냐 인류학이냐 사회학이냐 문화비평이냐’고 묻던데 내 대답은 ‘그 전부 다’이다”면서 “우리가 사는 도시의 역동성을 이해하는 데 무슨 학이면 어떻고, 소설이든, 영화든 무슨 상관이겠냐”며 웃었다.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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