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참의원 선거를 앞둔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이 뜻밖의 복병에 긴장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유명했던 ‘오체불만족(五體不滿足)’의 장애인 저자를 도쿄 선거구에 깜짝 영입인사로 내세우려 했지만 불륜파문으로 무산되는가 하면, 30대 주부의 블로그 글이 반향을 일으키면서 보육원 부족문제가 정국 최대이슈로 등장했다. 안보법 찬반이나 개헌문제를 대비하던 자민당은 일하며 아이를 키우는 ‘워킹맘’들의 현실적 분노가 폭발하면서 여성표 계산에 급급하고 있다.
보육원 부족은 일본에서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후생노동성 통계에 따르면 작년 4월기준으로 정부인가 보육원 대기아동이 2만3,000명에 달했다. 그런데 이 문제가 갑자기 핫이슈로 떠오른 것은 지난달 15일 “보육원 떨어졌다, 일본 죽어라”는 과격한 글이 인터넷에 뜬 게 발단이 됐다. 여성들의 공감이 급격히 확산되는 과정에서 아베 총리의 무심한 발언이 기름을 부었다. 야당의원이 묻자 “익명인 이상 실제인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며 무시하는 태도를 보인 게 공분을 샀다. 당황한 아베 정권이 보육원 정원 상한 확대 같은 긴급대책까지 내놨지만, 중의원 자민당 의석에서 “블로그 누가 쓴거야”라는 야유가 터져 나왔던 장면이 회자되고 있다. 주부들의 국회의사당 앞 데모와 서명운동이 불어나는 상황이다.
여성층의 이상기류엔 잇따른 불륜사건도 한몫했다. 아빠 육아휴직 운동으로 뜬 자민당 의원이 부인의 임신기간 불륜이 밝혀져 의원직을 사퇴한 뒤, 자민당은 교토(京都)지역구 여성당원층의 비판에 보궐선거 후보공천도 포기한 상황이다. 팔다리가 없는 오토타케 히로타다(乙武洋匡) 카드야말로 장애인과 여성을 포함해 약자에 어필한다는 구상이었다. 특히 오토타게의 부인이 “아내인 나도 책임이 있다, 깊이 반성한다”고 사과하는 진풍경에 ‘사죄강요설’이 나오는 등 여성여론은 연달아 들끓었다.
사실 공인의 사생활 문제는 문화권에 따라 차이가 있다. 개인의 자유보다 더한 상위가치가 없다는 유럽의 경우 비교적 관대하지만, 기독교 보수주의 전통이 강한 미국에선 단칼에 정치생명이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일본은 1989년 우노 소스케(宇野宗佑) 총리가 게이샤와의 스캔들로 69일만에 물러난 전례가 있다. 일본도 과거엔 남편만 설득하면 부인까지 2표를 확보한다는 인식이 흔했다. 하지만 우노 총리 스캔들로 떠들썩하던 당시 여장부 도이 다카코(土井多賀子) 당수가 이끈 사회당계열 여성후보가 참의원선거에서 전원 당선됐다. 일본에서 여성유권자의 존재감을 의식하는 계기가 된 사건이었다.
아베 정권은 ‘여성활약사회’‘우머노믹스(우먼+아베노믹스)’같은 구호를 내걸며 여성표 공략에 신경쓰고 있지만 곳곳에서 허점을 노출하고 있다. 지난주 한 자민당 남성 의원은 선거승리를 기원하려 신사에 갔다가 지지요청을 거절당하자 “무녀 주제에 자민당이 싫다니”라는 발언으로 여성비하 논란을 일으켰다. 이 여성을 밤에 따로 불러내려 한 것도 지탄을 받았다.
자민당 핵심부가 지금 우려하는 것은 작년 안보법 반대여론에 큰 역할을 했던 여성층이 반정권 대열로 돌아오고 있다는 점이다. 당시 국회앞에는 자녀를 미래의 전쟁터에 보낼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전쟁법 반대’ 유모차 시위부대가 등장했다. 이후 안보법 강행처리가 끝나면서 잊혀졌던 엄마들의 분노가 보육원 같은 생활이슈로 옮겨 붙는 과정이다.
2011년 동일본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거친 뒤 일본 여성들은 정치가 개인 삶과 직결된다는 점을 실감하기 시작했다. 민생이 부각되는 선거야말로 여성표 공략은 쉽지 않다. 중의원을 해산하고 동시선거까지 치를 경우 정권이 바뀔 수도 있는 모험이 된다. 보육원 이슈 불끄기가 아베 정권 선거메시지 관리의 최대 고비가 될 것 같다.
도쿄=박석원특파원 s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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