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공격으로는 경기를 이길 수 있고, 좋은 수비로는 우승을 할 수 있다.”
2013년 바이에른 뮌헨을 유럽축구 트레블(3관왕)로 이끈 ‘명장’ 유프 하인케스 감독이 했던 말이다. 독일을 넘어 세계 축구의 모범 답안이 된 문구다.
네덜란드와 벨기에가 공동 개최한 유로 2000에서 네덜란드는 화려한 공격 축구로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조별리그에서 3전 전승을 했고 8강에서는 유고슬라비아를 6-1로 이겨버렸다. 4강 상대는 말디니와 칸나바로, 네스타가 버틴 ‘질식 수비’의 이탈리아. 암스테르담 아레나에서 열린 그 경기를 아버지와 직접 보러 간 기억이 난다. 네덜란드 팬들은 우승을 의심하지 않았다. 이탈리아도 당연히 이길 거라 믿었다. 아니 확신했다. 하지만 결과는 승부차기 접전 끝에 네덜란드의 패배였다. 무섭도록 이탈리아 골문을 두드렸지만 열리지 않았다. 토너먼트에서 우승하려면 안정된 수비가 필수라는 걸 보여주는 좋은 예다.
유로 2016 조별리그에서는 모든 국가들이 수비를 정교하게 하는 게 눈에 띈다. 북아일랜드나 아이슬란드 같은 약 팀은 전원이 자기 진영으로 들어가서 수비한다. 반면 스페인이나 독일은 공을 뺏긴 뒤 그 자리에서 바로 다시 뺏는 방법을 쓴다. 같은 수비라도 전략은 여러 가지다.
그렇다면 공격은 안 하고 전원이 수비만 하는 팀은 어떻게 뚫어야 할까.
이는 지도자 자격증 수업을 들을 때도 중요한 테마였다. 한국의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를 만든 히딩크, 독일 축구의 전설 마테우스 그리고 감독 생활을 하는 동안 열 중 아홉은 밀집 수비를 깨야 했던 과르디올라 맨체스터 시티 감독은 측면 일대일 상황에서 상대 선수를 벗겨 낼 수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내가 선수로 뛸 때 아버지가 입이 닳도록 해 주셨던 얘기가 있다.
‘측면에 나가서 기회가 되면 자신 있게 상대에게 도전해라’ ‘상대 진영 깊은 곳까지 가서 백패스 하는 것은 책임 회피다’
지난 번 한국과 스페인(6월2일)의 평가전을 현장에서 보며 이 부분이 가장 아쉬웠다. 공을 상대 진영 깊은 곳까지 운반하면 그 자리에서 ‘도전’을 해야 한다. 그래야 상대가 부담을 느끼고 수비를 붕괴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 선수들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인지 자꾸 뒤로만 패스했다. 물론 이는 한국 축구의 문제만은 아니다. 독일 TV에 출연한 히딩크는 러시아의 유로 2016 경기를 보며 측면 일대일 상황을 피하는 선수들을 질책했다. 마테우스도 폴란드전에서 독일의 풀백들이 공격 가담 후 자신 있게 일대일 싸움을 하지 않자 불만을 나타냈다. 물론 선수마다 특징이 다르다. 일대일 경합을 오히려 피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상대를 제칠 수 있다고 인정받은 측면 선수들까지 도전을 회피하면 안 된다. 페널티 박스 밖으로 계속 볼을 내보내면 이미 축구가 아니라 핸드볼이다.
이번 대회에서 밀집 수비를 깨는 모범 답안은 역시 스페인이 보여줬다. 물론 그들은 개인 능력이 굉장히 뛰어나다. 이니에스타와 다비드 실바, 놀리토 그리고 스페인의 유일한(?) 약점이었던 타깃형 스트라이커의 고민을 해결한 모라타까지. 하지만 더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은 건 스페인 선수들의 도전 정신이다. 어떻게든 공을 상대 수비가 불편해하는 지점으로 보내려고 한다. 페널티 박스 안으로 패스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다. 스페인의 측면 수비수인 후안 프랑과 호르디 알바는 틈만 나면 상대 뒷공간으로 파고 든다.
한국대표팀도 9월부터 러시아월드컵 최종예선을 시작한다. 한국은 이란, 우스베키스탄, 중국, 카타르, 시리아와 한 조다. 이란을 빼면 모두 한국보다 랭킹이 낮다. 한국전에서 수비 위주로 나설 가능성이 높기에 상대 밀집 수비를 깨야만 좋은 경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유로 2016이 후배들에게 많은 공부가 됐으면 한다.
프랑크푸르트 크론베르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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