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위안부’ 저자 박유하 세종대 교수를 기소한 검찰의 처분에 후폭풍이 거세다. 학계는 공론장에서 다툴 사안이 법정으로 넘어갔다고 우려하고 있다. 일본 언론이 연일 비판의 강도를 높이는 가운데, 문화계 인사들의 항의성명 발표까지 예고돼 파장이 예상된다.
‘제국의 위안부’는 2013년 출간 직후 논란의 중심에 선 책이다. 국내에서 통용되는 ‘총칼에 끌려간 10대 소녀’라는 위안부 피해자의 이미지가 전체 구조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한 박 교수는 징모에 일본인 및 조선인 민간업자가 개입했고, 이들이 인신매매 및 취업사기로 경제적 이득을 취한 점을 부각시켰다.
“자발적 매춘부” “동지적 관계” 등의 표현이 등장하는 점도 논란을 키웠다. 박 교수는 “자발적 매춘부는 인용문에 나오는 말이며, 동지적 관계는 조선인의 처지와 점령지 여성의 처지를 비교하기 위한 표현일 뿐 기본적으로 위안소를 운영한 국가(일본)의 책임을 묻는 것이 책의 취지”라고 해명해왔다.
격노한 나눔의 집의 위안부 피해자 11명은 지난해 6월 박 교수와 출판사 대표 정모씨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하고, 출판ㆍ광고금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올해 2월 법원이 가처분 신청을 일부 인용했고, 지난주 검찰이 박 교수를 불구속 기소하면서 수사는 일단락됐다.
학자들은 피해자들을 심정적으로 이해하지만, 이번 사안이 법정으로 간 것은 착잡하다는 반응이다. 박 교수를 비판해 온 한 역사학자는 “잘못이 있다면 학술적으로 다투면 될 일이지 ‘앞으로 역사, 민족 문제를 잘못 건드리면 이렇게 된다’는 메시지를 줘선 안 된다”며 “관련 연구를 위축시키고 문제 해결에도 도움이 안 된다”고 말했다.
문학평론가인 황현산 고려대 명예교수도 24일 트위터를 통해 “이 정권은 박 교수를 희생양으로 삼기 쉽다. 두 가지 이득이 있기 때문이다. 자기들이 친일 문제에 엄격하다는 간판으로 삼을 수 있고, 이승만 박정희 비판에 사법처리의 교두보를 마련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이 같은 희생양 만들기는 곧 “학술연구를 정치에 예속시키려는 사전작업”이라고도 덧붙였다.
일본 언론은 연일 기소 사실을 강력 비난하고 나섰다. 20일 일본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이 “표현의 자유”를 언급한 데 이어, 언론이 이 문제를 집중 부각시키고 있다. 요미우리는 25일 사설에서 “학술연구를 입건하는 것은 공권력 남용으로 한일관계에 미묘한 그림자를 드리운다”면서 “검찰이 전문가들도 견해가 나뉘는 내용에 판단을 내리는 것은 의문”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박 교수가 책임이 ‘대일본제국’에 있다고 강력 비판하고 있음에도 이런 견해표명조차 제약하면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한일간 건설적 대화는 어렵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26일에는 와카미야 요시부미(若宮啓文) 전 아사히(朝日)신문 주필을 비롯한 학술ㆍ언론ㆍ문예ㆍ저널리즘 관계자 수십 명이 ‘박 교수 기소에 대한 항의성명’을 낼 예정이라 파장이 예상된다. 이들은 “박 교수 기소는 학문과 언론자유를 빼앗는 행위임을 깊이 우려한다”고 주장했다.
박 교수는 24일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이 책의 의도 중 하나는 경제적인 이득을 얻기 위해 국가세력을 확장한 일본 제국주의 치하에서 이득을 취한 일본인 및 조선인 업자의 책임을 말하는 것”이라며 “일각에서 이 책을 조선인의 책임을 말하거나 민족주의를 비판한 책으로 오해하지만, 저는 10년 전부터 위안부 징모에 구조적 강제성이 있었음을 지적했다”고 강조했다.
박 교수는 비판적 여론으로 공론장에서조차 충분한 논의가 이뤄지지 못했다고 아쉬워했다. 그는 “무엇보다 깨끗한 할머니의 이미지를 부정당했다는 분노를 저에게 쏟아내는 가부장주의, 적대와 강한 선입견이 깔린 오독 등을 보며 절망했다”며 “이질적인 의견을 내는 사람을 숙청하고 싶어하는 욕망들을 보며 공포를 느낄 따름”이라고 말했다.
도쿄=박석원 특파원 spark@hankookilbo.com
김혜영기자 sh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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