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8년 이래로 611차례 실시
부가가치세 인상 찬성하는 등
‘대중 추수주의’와 거리 멀어
스위스 다보스에서 해마다 열리는 시장주의자들의 모임 세계경제포럼(WEF)은 늘 스위스를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국가들 중 하나로 꼽는다. 스위스의 1인당 국민소득, 정부에 대한 신뢰도, 연금재정 건전성은 세계 최상위권이다. 반대로 실업률, 범죄율, 공공기관의 적자,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세계 최저 수준이다.
그렇다면 스위스의 경쟁력은 과연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정치분석가들은 스위스의 경쟁력을 국민투표에서 찾는다.
스위스는 1848년 이래 611차례 국민투표를 실시한 ‘국민투표의 천국’이지만 보수 언론들이 흔히 우려하는 ‘대중 추수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2012년에는 모든 이에게 6주 휴가를 보장하는 국민투표를 부결시켰고 2009년에는 장애인연금의 재정건전성 확보를 위해 부가가치세를 인상하는 데 찬성했다. 시장을 통제하는 선도적인 제도도 도입했다. 2013년 스위스 국민은 기업이 경영자와 중역에 보너스를 지급할 때 그 기준과 계획을 정관에 명문화해야 한다는 법을 통과시켰다. 지난 5일에는 기본소득 보장을 헌법에 포함하는 국민투표를 진행하기도 했다.
물론 국민투표가 항상 좋은 결과만 낳은 것은 아니다. 특히 유럽연합(EU)과의 관계는 국민투표에 따라 심하게 요동쳤다. 스위스는 1972년 유럽 공동체(EC)와의 자유무역협정, 2005년 유럽내 자유이동조약인 솅겐조약 체결 때 국민의 동의를 얻었다. 반면 1992년에는 유럽경제지역(EEA) 가입안이 부결됐고 2014년에는 솅겐조약과 배치되는 대규모 이민방지법이 통과됐다. 가장 큰 논란을 일으킨 것은 ‘미나레트 금지법’이다. 2009년에 스위스 국민은 스위스 연방정부와 기독교를 포함한 종교계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이슬람교 성전인 모스크의 부속건물 미나레트의 건축을 제한하는 법을 통과시켜 EU와 유럽 각국의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이런 상황을 꼭 국민투표라는 제도의 잘못으로 보기는 어렵다. 스위스의 국민투표도 정부와 정당이 제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정치권과 국민의 대결구도가 형성되는 경우는 극소수다. 로랑 베른하르트 취리히대 정치학연구소 연구원에 따르면 의회가 제정한 법에 도전한 국민투표는 178차례인데, 이 가운데서 약 2%만이 가결됐다. 포린 어페어스는 그럼에도 “의회 입법이 도전을 받을 가능성 그 자체만으로도 정치인들은 심사숙고해서 법안과 정책을 결정하게 된다”고 봤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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