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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령의 길 위의 이야기] 애를 왜 때리고 그래요

입력
2016.09.20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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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살배기 조카는 떼를 쓰다 못해 아예 마트 바닥을 데굴데굴 굴러버렸다. 아버지와 엄마는 바둥거리는 손자를 겨우겨우 들쳐 안고 사람들 사이를 빠져 나왔다. 그래도 생떼는 그칠 줄 몰라서 급기야 아버지가 녀석의 엉덩이를 한 대 때려주고야 말았다. 애애애앵, 조카는 서럽게 울음을 터뜨렸고 그 울음소리보다 더 크게 엄마가 소리를 질렀다. “아니, 애를 왜 때리고 그래요?” 좀 맞아도 싸다고 생각했던 나는 뜨악한 눈으로 엄마를 쳐다보았다. 엄마는 몹시 흥분해 있었다. “나는 딸 셋을 키웠지만 한 번도 손은 안 댔어. 애를 어떻게 때려. 뭘 안다고.”

그 말에 그만 내 입에서 푸핫핫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엄마가 안 때리고 우리를 키웠다니. 돌이켜보면 그렇게 심한 말썽쟁이도 아니었는데 나는 플라스틱 빗자루를 들고 달겨드는 엄마를 피해 골목으로 달아난 적도 있었다. 빗자루가 눈에 후딱 띄지 않으면 엄마는 아무 거나 손에 잡히는 대로 들고 철푸덕철푸덕 엉덩짝을 때렸다. 숙제를 빨리 해놓지 않았거나 밥그릇을 깨끗이 비우지 않았거나 종이인형을 몰래 사 모으다 걸렸거나 하는 이유들이었다. 다락에 갇힌 적도 있었다. 나는 온갖 잡동사니들이 모여있는 다락에서 혼자 노는 것을 참 좋아했는데, 막상 갇히고 나면 그렇게 무서울 수가 없었다. 내가 마지막으로 맞은 건 불과 몇 년 전이다. 목덜미에 나비 문신 새긴 걸 들킨 거다. 그날 나는 진짜 등짝을 엄청나게 맞았다. 그래 놓고는 저렇게 시치미라니. 엄마는 조카를 데리고 홱 사라졌다. 아마 조카의 귀에 대고 속삭였겠지. “이제 할아버지랑 놀지 마.”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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