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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부엌의 '창대한 시작'

입력
2016.09.20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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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비가 내리던 작년 3월로 기억한다. 제주시 조천읍 신촌리 길모퉁이의 오래된 작은 공간에서 그의 젊은 모습을 보았었다. 제주로 내려와 식당을 열겠다는 그는 작은 공간에 모인 사람들에게 자신이 만든 음식과 자신이 추천하는 사케를 내었다. 시식을 마무리할 즈음, 참석한 사람들은 서로 음식에 대한 의견을 말했다. 그 자리에서 나는 ‘제대로 자리잡을 수 있겠어요?’라고 그에게 당돌한 질문을 던졌다. 그는 약간 상기된 표정이었고, 사람들은 조금 어색해했다. 음식은 분명 훌륭하고 맛있었다. 사케와의 조화도 무척 만족스러웠다.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음식들과 사람들이 쏟아내는 칭찬 사이에서, 쓸데없이 나는 제주로 쏟아져 들어오는 ‘손’들을 생각해버린 것이었다. 생각은 걱정으로 이어졌고, 혈혈단신으로 내려왔다는 그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는 맛집들 사이에서 잘 정착했으면 하는 마음이 그런 질문으로 내뱉어져 버린 것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당시의 조금 미안했던 질문은 정말 미안한 마음으로 남아버렸다. 시식회 이후로 무언가가 틀어진 듯 하더니 그는 조천에서 시내로 나왔고, 몇 번의 우여곡절 끝에 칠성통 골목 한 켠에 자리를 잡았다. 그대로만 받아들이기엔 조금은 조심스러운 그의 쾌활한 표정과 어떻게든 해보겠다는 분주함이 주변의 도움을 얻어내고 기발한 아이디어를 끌어내었다. 골목 한 켠 그의 공간은 점점 모습을 갖추어가더니 어느 날 미친부엌이라는 이름이 내걸렸고, 그의 시작은 심히 창대했다.

‘창대한 시작’은 여전해서, 지금은 일찍 서두르지 않으면 대기순번을 받아야 하는 그런 소문난 맛집으로 성업중이다. 가까이서 바라보거나 직접적인 도움을 주지는 않았지만, 그의 혈혈단신 고군분투기를 적당한 거리에서 보고들은 입장에서 현재 미친부엌의 성업과 그의 분주함은 마음을 푸근하게 만든다. 가끔 미친부엌에 들르게 되면 여지없이 대기순번을 받고 칠성통 거리를 잠시 배회하게 되는데, 그게 싫지가 않은 것이다. 그리고, 환대의 인사를 건네는 그의 진심에 나는 그 때의 당돌함이 떠올라 마음이 조심스러워진다.

미친부엌은 전형에서 약간 비껴 선 스타일의 일식 요리집이다. 잘 정돈된 선어회는 깔끔하고, 연어덮밥은 무게를 담은 아담함이 느껴진다. 치킨 가라아게의 풍미와 식감은 이 섬 안에서 손꼽을 수준이고, 크림짬뽕은 매콤함과 부드러움이 잘 어우러진 이 집만의 독특한 메뉴이다.

공 셰프의 사케에 대한 감각은 수준급이다. 가격대비 풍미와 깊이가 훌륭한 사케는 물론이고, 도쿠리에 담아내는 일반사케도 입 안을 감도는 풍미가 상당하다. 그것은, 밤길 운전대를 포기할까 말까 하는 고민과 부담을 당연한 운명으로 받아들이게 만드는 것이다.

어느 날 저녁, 공 셰프가 아직 총각이어서 그런지 여자손님들이 70% 이상을 차지한 테이블 한 켠에 자리하고 앉아 ‘고독한 미식가 세트’에서 맥주를 빼고 공 셰프 추천 사케 한 병, 짬뽕은 크림으로 선택하여 주문하였다. 바빠 보이는 와중에 날 알아본 공 셰프는 가까이 다가와 인사를 나누었고 친절하게 사케를 설명해주었다. 각종 메뉴를 조금씩 맛 볼 수 있는 고독한 미식가 세트를 천천히 음미하고 사케의 훌륭함을 즐기며, 나는 좀처럼 남의 손에 건네지 않는 운전대를 운명처럼 포기해버렸다. 생각해보면 그의 제주정착기와 미친부엌의 성공적인 모습은 한 편의 스토리이자, 조용히 기도했던 내 마음의 훈훈함이다. 그리고, 한없이 바빠 보이는 그에게 사케 한 잔 건네지 못했지만, 한 잔 한 잔 마시며 여일한 모습으로 이어지길 기도했다. 공 셰프를 알게 된 이후 그의 모습은, 제주라는 공간에 들어와 살고자 하는 수많은 움직임들 중, 마음 깊이 응원과 격려를 보내고 싶은 그런 모습이기 때문이다.

전영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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