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나시와 어머니의 강 갠지스
3,000년 고도, 인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 연간 100만 명 이상이 찾아오는 힌두의 성지 바라나시는 갠지스강을 끼고 있다. 바라나시의 갠지스강은 많은 사람이 영혼을 바치는 곳이다.
공항에서 갠지스강 근처에 있는 숙소로 들어가는 길. 시바의 파란 이미지, 바로 옆에서 울려대는 오토릭샤의 경적, 지린내 나는 지저분한 골목길, 47도의 찌는 듯한 더위에 온몸은 땀으로 뒤범벅이 되고 입에선 짠맛이 난다. 조금만 자극해도 예민해지는데 오감이 모두 최고조로 작동한다. 한국인들이 바라나시에 오면 한 번씩은 앓는다는데 그게 비단 음식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망치로 온몸을 쿵쿵 때리는 듯한 아주 깊은 자극을 받는다. 생전 처음 가보는 인도의 첫 도시 바라나시에서부터 이미 여행의 설렘은 온데간데없고 벌써부터 피곤함이 몰려온다.
원숭이들이 좁은 골목의 건물들 사이를 날아다니는 가운데 아이들은 외국인인 내가 마냥 신기한 양 장난을 치고, 커다란 소들은 누가 지나가든 말든 아무렇지 않게 배설물을 흘린다. 골목마다 빼곡한 수많은 상점들, 태평하게 앉아서 신문을 보는 노인, 그리고 그 사이를 무수한 여행자가 땀을 흘리며 복잡하디 복잡한 골목 한가운데에서 길을 헤맨다. 인도에서 가장 인도다운,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도시 바라나시 골목 사이사이에서는 생의 처음과 마지막을 만날 수 있다.
힌두교도들은 갠지스를 어머니의 강, 성스러운 강으로 여긴다. 이곳에서 목욕을 하면 모든 죄를 면할 수 있다고 믿는다. 옆에서 빨래를 하는 와중에도 순례자들은 흙탕물 속에 몸을 담그고 기도를 중얼거린다. 온 몸에 그 흙탕물을 뿌려 깨끗하게(?) 씻어낸다. 해가 뜰 무렵이 좋다고 여기는 순례자들은 이른 아침부터 갠지스에 몸을 담그고 아침 기도를 한다.
바라나시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점점 동물적으로 변해가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주민들의 발을 자꾸 관찰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가만히 내 발도 들여다보게 된다. 내가 가진 육신이 그냥 껍데기일 뿐인가라는 생각이 든다. 인간은 역시 지독히도 환경에 지배 받는 동물인가보다.
바라나시의 갠지스강 주변에는 가트(Ghat)라고 하는 계단식 시설이 있다. 경사진 돌계단으로 약 84개의 가트가 있는데, 성스러운 갠지스강에 몸을 씻는 의식을 위해서 만들어졌다. 가트는 때로는 배를 타는 선착장이고, 도비왈라(빨래를 업으로 하는 카스트)들의 빨래터이기도 하며, 아이들의 수영장, 크리켓 경기장도 되고, 화장터이기도 하다. 길가에는 꽃과 음식을 파는 상인들과 노숙자들도 보인다. 수많은 사람들이 가트에서 제각각 다양한 활동을 하지만 강을 대하는 그들의 마음만은 모두 같아 보인다.
사실 바라나시의 첫 인상은 쓰레기장 같은 환경과 지저분한 사람들, 비위생적인 음식 그리고 불쾌한 지린내였다. 덜 문명화된 이곳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수없이 요동쳤다. 그렇게 혼잡한 마음속에서 며칠을 보내고 아무 생각 없이 가트 앞에 앉아 갠지스강과 그네들의 일상을 훔쳐보던 순간, 그냥 사는 방식이 다른 것일 뿐 내가 판단할 사안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수없이 요동치던 마음이 점점 잔잔해졌다.
가이드 발루를 따라 바라나시의 수많은 가트 중 하나인 마니카르니카 가트로 갔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냄새가 콧속을 자극한다. 바라나시에서 사망자는 가트에서 화장되고, 유골은 강가에 흘려 보낸다. 이곳에서는 화장(火葬)이 시작되어도 누구 하나 슬퍼하지 않는다. 갠지스강에 화장되는 것을 영광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발루는“인도인들은 어머니의 강 갠지스에서 목욕하면 죄를 씻을 수 있고 죽어서 어머니의 강에 뿌려지면 윤회의 업보에서 벗어난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죽은 사람은 24시간 안에 화장을 해야 하는데, 다른 곳에서 사망하면 바라나시에서 화장하기 어려워 바라나시에 와서 죽음을 기다리지.”
그래서 근처에는 죽음을 기다리는 요양원도 많이 있다. 사체는 3시간 동안 태우고 다 타건 덜 타건 강에 보낸다. 실제로 강가에 떠다니는 사체를 여러 번 보았다. "하루에 200명 정도 화장을 치르는데 한번에 300kg 정도의 목재가 필요해. 장작은 보통 3단으로 쌓는데, 좀 더 여유가 있는 사람은 5단으로 쌓기도 하지." 망자는 그렇게 어머니 갠지스강으로 되돌아간다.
바라나시 현지인의 인생관과 행복관은 무엇일까? 카란 샤르만(Karan Sharman, 30)은 브라만 계급이고 카페 영업주이다. "인생은 투쟁이야. 항상 좋은 일만 있는 것도 아니고 나쁜 일만 있는 것도 아니잖아. 그러나 우리는 살아가야 하는 거지. 내가 생각하는 행복은 그게 어디서 오든 선물이라는 거야. 우리는 하루를 살면 하루가 축복이라고 생각해. 우리가 태어난 것 자체가 축복인 셈이야. 내게는 바라나시에 태어난 게 선물이고 행복인 거지."
사듭(Saddb,21)은 힌두대학 교수학과에 재학 중이며 친척의 옷 가게에서 일한다. “나는 매우 행복해. 왜냐하면 바라나시에 태어났기 때문이야. 바라나시는 인도에서 가장 신성한 곳이니까. 결혼하고 아이들도 있고, 작은 직업이지만 나는 행복해. 나는 바라나시에 태어난 이상 바라나시에서 죽을 때까지 살 거야. 저 갠지스강에 가는 그 순간까지."
태어난 것 자체가 감사한 일이고 하루하루가 축복이라고 생각한다면 이 복잡한 골목도 그리고 이 갠지스강도 더럽든 지저분하든 흙탕물이든 상관없을 것이다. 그들의 마음으로, 그들의 시선으로 이 강을 바라보면 그저 신성하고 아름다움뿐일 테니 말이다.
[배움 4]행복은 우리 삶의 선물이고 축복이다.
▦힌두교는 인도인의 종교이자 생활
힌두교는 인도인의 80% 이상의 믿는 중요한 종교다. 바라나시에는 1,500개가 넘는 힌두교 사원이 있다. 이들에게는 생활이 종교요, 종교가 곧 생활이다. 집안과 숙소, 골목 어디에서든 신상(神像)을 볼 수 있다. 다샤스와메드 가트에선 일몰 후 매일 밤 수많은 순례자들이 힌두교의 예배의식 푸자를 진행한다. 갠지스강의 여신에게 바치는 제사의식으로 하루를 무사히 보냈음을 감사 드리고, 내일에 대한 희망과 소원을 비는 의식이다. 징과 북소리에 맞춰 기도가 울려 퍼지고 강물에 꽃을 띄워 보낸다.
사실 인도에 오기 전까지 힌두교에 이질감을 가지고 있었던 게 사실이다. 파란 얼굴의 시바 이미지, 그리고 동물숭배사상 등 우리 정서와 맞지 않는 그들의 모습이 내 눈에는 낯설고 불편할 뿐이었다. 그저 신기한 볼거리였을 뿐인 푸자 의식 도중 문득 뒤를 돌아보았다. 기도를 드리는 할머니의 표정에 무언가 간절함이 가득하다. 마음 한구석에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그 고요하고 정적인 에너지에 나도 모르게 경건해진다. 할머니는 작은 종이 접시 위에 꽃을 뿌리고 초를 얹어 강으로 띄워 보냈다. 그냥 그 마음이 너무도 아름답다. 이들의 행동과 음악이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지만, 종교와 상관 없이 보는 이들의 마음도 숙연해진다.
인도의 아이들은 이마에 힌두교 종파를 표시하는 빨간 점 틸락을 칠한다. 즉, 낙인이 찍히게 되는 것이다. 태어나면서부터 종교가 덧씌워지고 나이가 들면 종교 자체를 자신과 동일시하게 된다. 그렇게 종교관이 굳어지면 조금이라도 교리에서 벗어나는 행동에 야수나 맹수처럼 돌변하는 게 인간 아닌가. 마치 동물적 본능처럼. 때로는 자신의 종교를 타인에게 강요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무력적인 대립과 충돌은 죄 없는 목숨까지 앗아간다. 극단적으로 배타적인 태도를 대할 때마다 종교의 의미가 무엇인지 되돌아본다.
영국에서 교사로 근무하다 퇴직 후 여행중인 데니스에게 조언을 구했다. "나는 행복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서로 존중해야 해요. 모든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환경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그들의 가치와 생각들, 그리고 서로 다름을 존중해야 해요. 종교뿐만 아니라 다른 것도 마찬가지예요."
[배움 5]행복은 나와 타인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이를 존중함에 있다.
행복여행가 김뻡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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