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ㆍ학문 자유와 적절한 조화 필요
학자적 양심마저 꺾으려 해서는 안돼
‘박유하 사건’ 사회성숙도 지표 될 듯
기자생활이 오래다 보니 교통사고만큼이나 많은 신경이 쓰이는 게 형법상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죄다. 세상 사람들의 말과 행동에 대한 평가나 비판이 주업이어서 주의를 게을리하다가는 누군가의 명예감정을 해치기 십상이다. 그런 보도에 흔히 적용되는 것이 형법 309조의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죄다.
이 죄는 형법 307조에 규정된 ‘일반’ 명예훼손죄에 비해 처벌이 엄격하다. 명예훼손죄는 사실이든, 허위사실이든 공연(公然)한 적시(摘示)로 남의 명예를 훼손한 행위에 적용되고, 각각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과 ‘5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이와 달리 ‘신문, 잡지 또는 라디오 등의 출판물’을 통한 명예훼손은 사실이냐, 허위사실이냐에 따라 각각 ‘3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700만원 이하의 벌금’과 ‘7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1,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을 보다 엄히 다스리겠다는 법의 취지는 상식으로도 분명하다. 신문이나 책, 방송에서의 언설(言說)이라면 계 모임이나 반창회 자리에서 한두 마디 한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많은 사람에게 전달되고, 피해자의 명예감정 침해도 그만큼 더 심각하게 마련이다. 보호하려는 법익, 또는 해친 법익이 크면 클수록 형벌도 엄해진다.
문제는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죄의 적용 가능성이 가장 큰 언론과 출판 등의 분야가 대개 학자와 언론인 등의 활동무대라는 점이다. 포괄적으로는 표현의 자유, 개별적으로는 헌법 21조의 ‘언론ㆍ출판의 자유’나 헌법 22조의 ‘학문ㆍ예술의 자유’가 보장하려는 언론과 학문의 자유와 상충한다. 특히 학문의 자유는 ‘타인의 명예나 권리 또는 공중도덕이나 사회윤리를 침해하여서는 안 된다’고 헌법이 직접적 제한을 가하고 있는 언론의 자유와 달리 헌법 37조 ②항의 일반적 제한, 즉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ㆍ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라는 요건에 의해서만 제약할 수 있다.
이런 헌법적 권리와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규정의 정면 충돌을 최대한 피해보려는 장치가 형법 310조에 규정된 명예훼손죄의 위법성조각 사유, 즉 ‘진실한 사실로서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이다. ‘진실한 사실’이나 ‘오로지 공공의 이익’이란 명문은 극히 예외적 적용을 떠올리게 하지만, 실제로 법원은 ‘진실성’과 ‘공공성’을 폭넓게 인정해 왔다. 언론보도의 경우 공공성은 당연했고, 진실성 요건도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상황’, 심지어 사실 확인을 위한 노력으로 충족됐다. 더욱이 확정된 사실이라도 언제든 새로운 추출과 배열, 해석으로 진실의 면모를 바꾸려는 학문의 속성상 학계의 연구 결과에 대해서는 더욱 넓게 진실성과 공공성을 인정해 왔다.
이런 상식을 송두리째 흔드는 사건이 <제국의 위안부>(뿌리와 이파리)를 쓴 박유하 세종대 교수에 대한 일련의 명예훼손 소송이다. 법원이 지난 2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일부의 도서출판 등 금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인 데 이어 검찰은 최근 형법 309조 ②항(허위사실 적시) 위반 혐의로 박 교수를 불구속 기소했다. 이번 형사소송에서는 가처분 소송 때와는 달리 형법 309조의 구성요건에 대한 한결 엄밀한 검토가 이뤄질 것이다. 가령 ‘남을 비방할 목적으로’라는 요건이나 진실성 공공성 등이 촘촘하게 다퉈질 것이고, 형사소송 특유의‘애매할 때는 피고의 이익으로’ 정신도 살아날 것이다.
무엇보다 이번 소송은 우리사회의 성숙도, 관용도의 지표가 되는 동시에 자신의 입맛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학문의 영역에까지 재갈을 물릴 수 있는지를 가릴 것이다. 사회가 발전할수록 자신과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남을 핍박하지 않는다. 그런 사회발전을 확인하고 싶다. 거꾸로 국사 교과서 국정화 과정에서 보아온 정치권력의 독선과 다를 바 없는 ‘시민권력의 독선‘ 은 확인하고 싶지 않다.
/황영식 논설실장 yshwang@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