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역사재단 주최로 ‘고조선과 한의 경계-패수는 어디인가’ 토론회가 21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렸다. 이날 토론회는 고대사를 둘러싼 사학계 논란을 재점검해보기 위해 재단측이 마련한 것으로, 지난 3월 ‘한사군’ 위치 토론에 이어 두 번째 자리다.
패수(浿水)는 한나라와 고조선의 국경선으로 그 위치에 따라 고조선의 강역이 변할 수 있는 지명이다. 고조선의 강역을 최대한 넓게 해석하는 재야사학계는 난하설, 사료 비판을 중시하는 강단사학계는 초기 청천ㆍ압록강설을 넘어 요즘은 ‘혼하설’이 다수설을 이루고 있다.
김종서(한국과 세계의 한국사 교육을 바로 잡는 사람들의 모임) 박사는 패수의 위치를 중국쪽에 치우친 난하 인근으로, 심백강 민족문화연구원장은 허베이(河北)성 바오딩(保定)시 일대로 비정했다. 이들은 다양한 문헌 자료를 기반으로 고조선은 역사적 강국이었음을 강조했다.
박준형(연대 동은의학박물관) 박사는 고조선 중심지가 요서-요동-평양으로 이동했다는 3단계 이동설을 내세웠다. 박 박사는 “문화권으로 보면 고조선은 한 때 요서지역까지 포괄했지만, 고고학 자료를 보면 왕국으로 성립할 시기의 중심지는 요동으로 보인다”면서 “진-한 교체기에 요동을 사이에 두고 중국과 밀고 당기는 관계를 지속하는데 이 때문에 위만에게 요동 지역을 떼어준 게 아닌가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이후석(숭실대) 박사 역시 요동ㆍ요서 일대 유물을 상세히 분석한 뒤 “요하에서 압록강 사이에 패수가 위치했다고 보는 게 가장 합리적 해석”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중국 랴오닝(遼寧)성에서 출토된 봉니(封泥ㆍ문서를 봉할 때 쓴 진흙)로 흔히 고조선 요서설의 근거로 꼽히는 봉니 ‘임둔태수장’에 대해서도 “봉니만 보면 그럴 수도 있지만, 그 봉니가 출토된 곳에서 함께 발굴된 분묘, 주거 등 주요 유물들을 보면 모두 중국식”이라면서 “만약 ‘임둔태수장’이란 봉니를 고조선의 증거로 해석해버리면 고조선은 독자적 국가나 문화라기보다 중국의 압도적 영향력 아래 있었다는 중국ㆍ일본 일부 학자들의 주장에 동의하는 셈”이라고 비판했다.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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