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판 승부하는 ‘로또형 수능’은 문제
美 SAT처럼 수험생에 복수 기회 주고
국가기초학력평가 등 전환 검토 필요
숭례문 부근 한국일보사 건물 18층 논설위원실에서 창 밖을 보면 멀리 서소문공원 쪽으로 종로학원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1980년 거기서 재수를 했기에 가끔 추억에 잠긴다. ‘서울의 봄’이 있던 해였다. 그래서 재수생 사이에선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자조(自嘲)가 유행이었다. 재수생 주제에 민주화 따위에 관심을 가질 처지는 아니었다. 시내를 방황하다 혹 머리가 길다는 이유로 삼청교육대에 끌려갈까를 걱정했을 뿐이다.
전두환의 신군부는 그 해 여름 교육개혁을 단행했다. 이른바 ‘7ㆍ30 교육개혁’ 조치다. 당시에도 큰 병폐이던 과열 사교육(과외)을 근절하겠다는 것으로, 본고사를 없애는 대신 내신성적과 예비고사 성적만으로 대학 신입생을 뽑는다는 것이 골자였다. 과외금지와 졸업정원제도 동반됐다. 일선 고교와 재수학원은 발칵 뒤집혔고 수험생들은 갈피를 잃었다. 대학입시를 불과 몇 달 남겨두고 날벼락 같은 제도변화에 충격이 컸던 기억이 생생하다.
이후에도 입시제도가 크게 바뀐 것이 10여 차례는 족히 될 것이다. 앞으로도 여러 제도변화가 예고돼있다. 2017학년도 수능에서는 한국사가 필수과목으로 지정된다. 2018학년도에는 영어가 절대평가체제로 전환되고, 문ㆍ이과 통합교육과정이 실시된다. 우리나라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교육과정과 입시제도가 변하는 별난 나라다. 입시제도가 한차례 바뀔 때 마다 대입 ‘방정식 차수’가 하나씩 올라가면서 전형방식이 더욱 복잡해졌다는 것이 입시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지금은 수시모집과 정시모집의 체제가 큰 틀에서 정착되었으나, 전형방식이 2,000개가 넘을 정도로 난해하다. 고3 담임교사도 전형방식을 다 파악하지 못해 전문가의 강의를 들어야 할 정도다. 입시제도 설명회장에는 유치원과 초등학교 학부모가 전체의 30%를 넘는 기현상도 발생한다. 입시제도가 수시로 바뀌고 대학마다 전형방식이 천차만별이니 학부모나 학생이나 여간 부담스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수시모집과 수능에 시달린 수험생들은 다음 달 2일 수능점수가 발표되면 다시 정시 지원에 눈코 뜰새 없이 바빠질 것이다.
이즈음 ‘대학입시 이대로 좋은가’라는 허망한 질문을 던져본다. 입시제도 개편은 사교육비절감과 선발방식의 다양화를 목표로 진행되어 왔다. 하지만 십 수차례의 제도변경에도 불구하고 사교육비가 오히려 늘면 늘었지 결코 줄지 않았음이 통계로 뒷받침된다. 수시모집으로 선발방식의 다양화는 충족됐지만, 너무 혼란스러운 것도 부담이다. 전형방식을 다듬을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그러려면 입시제도의 골격부터 바꿔야 한다. 수능과 내신, 논술고사ㆍ면접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대입평가 3대 요소 중 수능제도에 대한 개편이다. 오랜 세월에 걸쳐 준비한 수험생에 대한 능력평가를 단 하루, 단 한 번의 시험에 맡기는 방식은 잔인하고 후진적이다. 사립 명문대에서 입학사정을 담당하는 교수 친구는 “입학사정관제는 그럭저럭 정착이 되고 있으니, 한 방에 인생을 걸어야 하는 ‘로또형’ 수능은 폐기할 때가 됐다”며 “미국의 SAT처럼 1년에 여러 차례 응시할 수 있게 한다면 지금처럼 대학입시가 미쳐 돌아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학들이 정시모집을 줄이는 것도 수능에 대한 불신감 때문이다. 단판 수능에 실패한 수험생이 재수ㆍ삼수로 내몰리는 것도 사회적 낭비가 크다.
사실 우리도 1993년 딱 한 해 수능을 두 번 치러본 적이 있다. 두 시험의 난이도 조절에 실패하고 수험생도 더 큰 부담을 토로하는 바람에 이듬해부터 없던 일이 됐다. 그래서 SAT처럼 문제은행식으로 제도개선을 하거나, 자격시험화나 국가기초학력평가로 전환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각종 영어자격시험이 격주나 월 단위로 꾸준히 치러지는 것을 볼 때 기술적으로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다. 이와 함께 대학의 학생선발 자율권을 확대하고, 대학은 선발기준을 투명하게 공개하도록 하면 된다. 입시제도의 골격을 뜯어고치지 않으면 어떤 교육개혁도 효과 없다.
조재우 논설위원 josus62@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