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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종훈의 자동차 현대사] 자동차 대중화의 마침표, 국민차 ‘티코’

입력
2016.05.23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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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5월 한국 최초의 국민차 티코(사진)가 장충체육관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796㏄ 가솔린 엔진의 최고 출력은 41마력, 에어컨은 별도로 주문해야 하는 차였다. 가격은 319만원부터 시작해 최고급 모델이 359만원이었다.

연비가 24㎞/ℓ라 대우는 “30ℓ 용량인 연료 탱크를 가득 채우면 서울∼부산 왕복이 가능하다”고 자랑했다. 티코의 연비는 놀라웠지만 시속 120㎞ 이상 달리는 것은 무리였다. 고속주행에 접어들면 엔진과 차체가 부서질 듯 떨렸고 바람소리가 엄청나게 몰아쳤다. 그래도 제원표상 티코의 최고속도는 143㎞/h였다.

티코 출시는 서민들에게 더 없이 반가운 소식이었다. 비싼 가격 때문에 엄두를 내지 못한 ‘마이카’를 비로소 실현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88 서울올림픽 이후 급속히 진행된 모터리제이션, 즉 자동차의 대중화가 티코로 한층 탄력을 받게 됐다.

당시 티코는 ‘국민차’로 등장했다. 국민 누구나 큰 부담 없이 소유할 수 있는 차라는 의미였다. 이런 개념은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가 원조다. 히틀러가 페르디난트 포르셰 박사에게 “성인 두 명과 아이 둘(한 가족)을 태우고 시속 100㎞로 달리면서도 가격이 저렴하고 유지 보수가 쉬운 차를 만들어 달라”고 요청해 만들어진 차가 훗날 폴크스바겐의 ‘비틀’이다.

우리 정부가 내건 국민차의 조건은 좀 더 구체적이었다. 성인 4명 탑승에 공차중량 700㎏ 이내, 길이ㆍ너비ㆍ높이가 각각 3.5ㆍ1.5ㆍ1.4m 안쪽, 가격 200만원대 등이었다.

엔진 배기량은 치열한 논란을 거친 끝에 800㏄ 미만으로 결정됐다. 티코는 이런 기준을 대부분 만족시켰지만 가격은 맞추지 못했다. 대우는 편의장비들을 들어내는 등 가격을 내리기 위해 온갖 수를 다 썼어도 결국 200만원대가 아닌 300만원대로 티코를 내놓았다.

국민차가 된 티코는 1992년 유라시아 대륙 횡단으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성우 배한성씨를 포함한 원정대 3명은 티코와 다마스를 타고 10월 1일 영국 런던 그리니치 천문대 앞 광장을 출발해 시베리아를 가로질러 11월 16일 중국 베이징에 도착했다. 1만9,600㎞를 50일만에 완주한 것이다.

이런 티코의 뿌리는 일본 스즈키의 3세대 ‘알토’다. 스즈키가 법규에 맞지 않는 연비 측정으로 최근 물의를 일으키긴 했지만 알토는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오며 일본 경차 시장의 강자로 인정받은 모델이다. 알토에 일본 이외 해외 시장용으로 개발한 796㏄ 엔진을 얹어 국내용으로 만든 차가 티코였다.

대우와 스즈키의 기술제휴는 1988년 시작, 96년까지 이어졌다. 스즈키는 당초 티코 연산규모를 24만대로 기대했다 실제로는 8만대 정도에 그치자 한국 사업에 매력을 잃었다. 대우도 그 동안의 노하우를 살려 후속차종을 개발 중이어서 자연스러운 결별을 반기는 입장이었다. ‘오토다이어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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