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넥센 히어로즈와 롯데 자이언츠의 프로야구 시범경기가 열린 22일 고척 스카이돔(이하 고척돔). 넥센 팬 김지선(26)씨는 “안경을 안가져왔다”며 아쉬워했다. 평소엔 안경을 쓰지 않다가 업무나 운전시에만 안경을 쓰는 ‘애매한 시력의 보유자’라는 그는 “고척돔 전광판이 작다고 듣긴 했지만 이렇게까지 작을 줄은 몰랐다. 이 전광판에 적응해야 한다는 사실이 조금은 암울하다”며 혀를 내둘렀다.
#2 SK 와이번스와 NC 다이노스의 시범경기가 열린 24일 인천SK행복드림야구장의 상황은 정반대였다. SK팬 김지훈(32)씨는 경기장에 들어서자마자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크다고 듣긴 했지만 이렇게 클 줄은 몰랐다”며 함박웃음을 지은 김씨는 “눈이 정말 편하다”며 전광판을 주시했다. 그는 “미국 메이저리그도 부럽지 않다”면서 “원정 팬들도 SK홈구장을 부러워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마치 게임 같다”… 초대형 전광판에 환호
야구장에 선보인 새 전광판에 팬들의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같은 ‘신상’임에도 어느 쪽은 어느 쪽은 크고 화질 좋은 전광판에 미소를, 어느 쪽은 너무 작은 전광판에 울상을 짓고 있다.
SK는 올해 개막전에 맞춰 세계에서 가장 큰 야구장 전광판‘빅보드’를 설치했다. 가로 63.398m·세로 17.962m, 총 면적 1,138.75㎡ 규모로 웬만한 초등학교 운동장 크기와 비슷하다. TV로 치면 2,580인치.
‘빅보드’는 가로 110m·세로 18m의 세계 최대 전광판인 미국 풋볼팀 잭슨빌 재규어스의 사례를 참고해 만들었다(▶동영상 보기). 지역의 랜드마크가 돼 풋볼경기뿐만 아니라 ‘전광판을 보러’ 경기장에 찾는 이들도 많다는 데 주목한 SK의 전략은 적중했다. 24일 찾은 인천구장엔 ‘전광판이 얼마나 큰지 보러’경기장을 온 사람도 꽤 있었다.
김지훈씨는 “전광판을 보면 마치 야구 게임을 하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최대 장점으로는 생생한 화질과 다양한 정보를 꼽았다. “화면이 큰 것도 좋지만 큰 전광판에 어떤 내용을 담을지 고민한 흔적이 느껴진다”고도 했다. 전광판엔 수비 선수의 포지션이 그림으로 나타났다. 타구장 전광판엔 보통 선수 이름 옆에 포지션을 상징하는 숫자가 적힌다.
NC팬 노하나(27)씨의 반응도 비슷했다. “화질이 너무 생생해 깜짝 놀랐다”는 그는 “수비포지션을 그림으로 나타낸 점이나 아웃 카운트를 숫자로 적은 점 등은 야구를 잘 모르는 사람도 알아보기 쉽게 배려한 것 같다”고 전했다. 노씨는 이어 “관중은 물론 전광판 광고를 집행한 광고주들도 굉장히 좋아할 것”이라며 마케팅 효과 상승도 내다봤다.
“화질은 우리 못 따라가”… 대구 팬들도 감격
대구 팬들의 ‘전광판 자랑’도 인천 못지 않다. 지난 2월 완공돼 올해부터 삼성 라이온즈의 홈구장으로 사용되는 라이온즈파크에는 가로 36m·세로 20.2m 크기의 전광판이 설치됐다. 초고화질(UHD)급 1,900만 화소로 깨끗하고 선명한 화질을 자랑하는 라이온즈파크의 전광판을 접한 팬들은 화질과 주자 정보를 가장 큰 장점으로 꼽았다.
19일 개장행사를 찾은 류한철(25)씨는 “전광판 화질은 어느 구장에 견줘도 뒤처지지 않을 것”이라고 자부했고, 23일 삼성과 LG의 시범경기를 찾은 박승환(23)씨는 “전광판을 측면에서 봤을 때도 선명하게 보여 놀랐다”며 “보조전광판도 신의 한 수”라고 했다. 26일 삼성과 SK의 시범경기를 찾은 전다민(24)씨는 주자 정보에 감탄했다. 전씨는 “전광판 위쪽과 좌우에 1, 2, 3루 베이스를 형상화해 배치했는데 해당 위치에 주자가 있을 때 불이 들어와 경기 흐름의 이해를 돕는다”고 말했다.
“고척돔 필수아이템은 안경과 스마트폰”
하지만 지난해 문을 연 고척돔을 새 홈구장으로 맞은 넥센 팬들의 표정은 달랐다. 가로 22.40m·세로 7.68m 크기의 전광판이 너무 작아서다. 김지선씨는 “시력이 좋은 사람도 보기 불편할 크기”라며 “하루빨리 개선해야 할 과제”라고 지적했다.
가족과 함께 고척돔을 찾은 신근용(57)씨는 “가족 모두가 전광판 보기를 포기했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신씨는 “전광판을 보느니 스마트폰으로 경기 정보를 보는 편이 확실히 낫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서울시설공단 돔경기장운영처 관계자는 28일 한국일보와 전화통화에서 “개선의 뜻은 분명하지만 문제는 예산”이라고 답했다. 이 관계자는 “지난해 개장경기 후 지적된 부분 중 안전과 관람 환경에 관한 사안들을 최우선적으로 개선했다”며 “수십억 원이 드는 전광판은 당장 교체하긴 힘들지만 장기과제로 설정해 개선해 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김형준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오주석 인턴기자(서울과학기술대학교 문예창작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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