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의 아이폰 제조 공장으로 유명한 대만의 팍스콘을 자회사로 거느린 홍하이가 일본의 액정화면(LCD)업체 샤프를 인수한다. 샤프는 LCD를 처음 개발한 원천 기술을 갖고 있는 업체다. 따라서 샤프의 고급 LCD 기술이 중국과 대만업체에 흘러 들어가면 가장 강력한 경쟁상대인 삼성 LG 등 국내기업들에게 부담이 될 전망이다.
24일 외신 및 전자업계에 따르면 샤프는 이날 임시 이사회를 열어 팍스콘의 모기업인 대만 홍하이정밀공업의 인수제안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그 동안 경영난에 빠진 샤프 인수를 놓고 홍하이와 일본 민관펀드인 산업혁신기구(INCJ)가 경합을 벌였다. INCJ는 기술 유출을 우려해 대만업체에 매각을 반대했으나 고용 승계와 경영 정상화 등을 조건으로 6,600억엔(7조 3,100억원)의 인수자금을 제시한 홍하이가 승자가 됐다.
다만 정식 인수 계약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로이터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홍하이는 “내용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인수 계약을 일시 보류하겠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월스트리트저널 인터넷판도 홍하이가 이날 샤프로부터 총액 3,500억엔(3조8,753억원) 규모의 우발채무 목록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인수를 단념한 것이 아니라 지연되는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홍하이는 애플, 소니, 블랙베리 등을 고객사로 가진 전자부품 생산업체로 지난해 매출 172조원을 기록했다. 주로 다른 업체의 의뢰를 받아 부품이나 제품을 생산하는 홍하이는 주문자상표부착(OEM) 방식의 생산에서 벗어나 자체 브랜드 제품을 내놓는 것을 목표로 샤프 인수에 적극 나섰다. 업계에서는 홍하이가 전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샤프의 브랜드와 고급 LCD 기술을 이용해 TV사업 등에 뛰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국내 TV 제조사들에도 비상이 걸렸다. 샤프의 LCD 고급기술이 홍하이와 팍스콘 뿐 아니라 중국, 대만 등의 TV 제조사들로 흘러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샤프는 60인치 이상 대형 LCD 화면에 강점을 갖고 있다. 삼성디스플레이, LG디스플레이 등 국내업체들이 생산할 수 있는 최대 크기의 LCD는 50인치대이다. 따라서 국내 삼성전자와 LG전자는 60인치 이상 대형 LCD TV에 들어가는 LCD 패널을 샤프에서 구입한다.
그런 만큼 국내업체들의 LCD 수급에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된다. 이 때문에 한때 삼성전자는 샤프의 대형화면 LCD 공장인 사카이 공장 인수를 검토하다가 중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 내부에서 굳이 샤프의 공장을 인수하지 않아도 제품 수급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라며 “샤프가 홍하이에 인수돼도 제품을 팔아야 하기 때문에 삼성의 LCD 수급에 문제가 발생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대형 TV 시장에서 향후 경쟁이 격화될 가능성이 있다. 현재 중국업체들은 대형 LCD TV 제조에 잇따라 뛰어들었다. 그러나 중국업체들은 고급 액정 기술이 없어서 화질이 국내 업체들보다 뒤쳐진다는 평가다. 그런데 홍하이가 샤프를 인수해 고급 액정 기술을 확보하면 고화질의 대형 TV 제조를 할 수 있고 거래 관계인 중국 TV 제조사에도 샤프의 고급 LCD 패널을 공급할 가능성이 있다. 이렇게 되면 중국업체들에 관련 기술이 확산되면서 대형 TV 시장에서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여기에 궈 타이밍 홍하이 회장이 삼성에 반감을 가진 것도 변수다. 궈 회장은 2010년 훙하이 계열사인 LCD 패널업체 치메이가 삼성전자의 가격 담합 고발로 3억유로의 벌금을 냈을 때 공식 석상에서 “삼성은 경쟁자 등에 칼을 꽂는 기업”이라며 비판을 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당장 홍하이가 삼성을 비롯해 국내 업체들에 LCD 패널 공급을 줄이거나 가격을 올리는 등으로 LCD 공급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다. 김동원 현대증권 애널리스트는 “홍하이가 LCD 공급의 주도권을 쥘 수 있지만 세계 TV 시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삼성과 LG에 대한 공급을 줄여서 견제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정준호기자 junho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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