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 말, YBM시사닷컴의 게임사업부서인 '프로젝트G'의 신종현 팀장은 플레이스테이션2(PS2)용 게임 '아머드 코어 3'를 출시하면서 초조함을 감출 수 없었다. 일본에서는 발매 첫 주에 11만장이 팔린 대형 히트작 이었지만, 부품을 조립해 로봇을 제작하고 상대와 대결한다는 게임의 내용상 극소수의 로봇 마니아에게만 먹힐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러나 이 게임은 출시된 지 반년 만에 5만장이 팔려나가며 지난해 국내 PS2 타이틀 판매순위 10위 안에 들었다. 약 50만대 가량으로 추정되는 국내 PS2 보급대수를 감안하면, PS2 사용자 10명 중 1명은 가지고 있는 셈이다. 이는 드러나 있지는 않지만 국내 로봇 마니아층이 얼마나 두터운지를 알려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키덜트족이 로봇 게임의 구매자 재미있는 것은 국내 로봇 마니아들이 일본과 마찬가지로 어린이들이 아닌 성인층에 폭 넓게 분포돼 있다는 점. 테크노마트의 건담 모형 매장에서 10만∼100만원 가량 하는 로봇 모형을 구매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직장을 가진 성인들이다. 어린이를 뜻하는 'kid'와 어른을 뜻하는 'adult'를 합쳐 '키덜트(Kidult)족'이라고도 불리는 이들은 초등학생 때부터 건담을 비롯한 로봇 모형을 조립하면서 자라난 20∼30대들이다.
최근 출시된 로봇 게임들은 단순히 부품을 조립해 도색하고 전시하는 데 그치지 않고, 로봇을 직접 타고 조종하려는 소망을 지닌 이들의 욕망을 만족시켜 준다. 메카닉 디자인의 귀재 가와모리 쇼지가 로봇 디자인을 맡은 아머드 코어3는 플레이어가 수백개의 부품을 조립해 기체를 만든다. 또 1인칭 시점으로 실제 로봇을 조종하는 듯한 느낌을 주어 마니아들을 끌어들여 예상을 뛰어넘는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최신 로봇 게임들 아머드 코어3가 국내 로봇 마니아들의 존재를 알렸기 때문일까. 최근 로봇게임의 출시가 부쩍 늘었다. 세계적인 로봇 애니메이션 시리즈인 건담과 마크로스를 배경으로 한 '건담 전기'와 '로보텍 : 배틀크라이'(이상 PS2용)는 애니메이션 속에서만 보던 꿈의 기체 건담과 발키리를 직접 조종할 수 있어 큰 홍보를 하지 않았는데도 높은 판매고를 올리고 있다.
17일 출시될 PS2용 '존 오브 엔더스2'도 마니아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대작이다. 일본판을 먼저 접해본 게이머들은 '메탈 기어 솔리드' 시리즈에서 영화 뺨치는 스토리와 장면 연출을 자랑한 코지마 히데오가 만든 작품이라 역시 다르다며 찬사를 아끼지 않고 있다. 로봇 액션 부분은 3차원 그래픽이지만 임무 사이사이의 스토리는 2차원 애니메이션 동영상으로 진행돼, 엔딩을 보면 한편의 완결된 애니메이션을 본 듯한 느낌이 든다. YBM시사닷컴이 X박스 전용으로 이 달 출시할 예정인 '무라쿠모'도 X박스 이용자들을 기대에 부풀게 하고 있다. '하이 스피드 로봇 액션'이라는 장르명에 걸맞게 빠른 속도로 적을 추격하며 긴장감 넘치는 전투를 즐길 수 있다.
그러나 로봇 마니아들이 국내에 정식 발매되기를 가장 학수고대하는 게임인 '수퍼로봇대전' 시리즈는 아직 출시되지 않고 있다. 16비트 게임기 시절부터 로봇 마니아를 사로잡아 온 이 시리즈는 마징가Z부터 에반게리온까지 일본 최고의 인기 로봇 수백종이 총출동하는 전략 게임. 반다이코리아는 "로봇의 저작권을 갖고 있는 수십 개 업체에 모두 허가를 얻어야 하기 때문에 당분간 일본 밖에서의 출시는 어렵다"고 밝혔다.
/최진주기자 parisco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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