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인사서 유출 시점 판단 근거인 팔만대장경 1960년대 인경본
문화재청 "인경했는지 모르지만 내전수함음소 없다" 엉뚱한 답변
팔만대장경의 일부 ‘내전수함음소(內典隨函音疏)’가 도난품으로 의심된다는 의혹이 제기된 가운데(☞ 관련기사 보기) 내전수함음소가 1960년대 제작된 팔만대장경 인경본(먹으로 인쇄한 것)에 등장하는지 여부가 또 다른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 부분은 내전수함음소가 언제 해인사로부터 유출됐는지 판단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인데, 문화재청은 보물 지정 당시 국내에 있는 1960년대 인경본 실태조차 제대로 조사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도난 의심 문화재가 보물로 지정되기까지의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봐야 할 부분은 이 문화재가 언제 어떤 방식으로 유출됐느냐 하는 것이다. 때문에 팔만대장경이 인경된 가장 최근 시점인 1960년대(1963년~1968년) 인경본에 내전수함음소가 있는지 없는지를 따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문제는 학계 일각에서 내전수함음소 유출 시점이 일제시대나 그 이전이 아닌 1960년대 이후일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관섭 전 한국전통문화대 교수는 “팔만대장경 중복판조사 연구에 참여했다 1960년대 인경된 것으로 추정되는 인경본에서 내전수함음소를 봤다”며 “의혹이 일고 있는 만큼 언제 인경된 것인지 밝히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해인사에 있는 인경본이 1960년대의 것으로 드러날 경우 내전수함음소는 적어도 팔만대장경이 국보(제32호)로 지정된 1962년 이후 해인사에서 유출됐다고 볼 수 있다. 국보가 지정됐음에도 문화재가 외부로 빠져나갔다는 점에서 큰 파장이 예상되는 부분이다.
이에 대해 문화재청은 기자의 질의에 대한 서면답변서에서 “1963~1968년 사이 13부를 인경했다는 내용을 확인할 수 없고, 이 때의 인경본에는 내전수함음소가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고 밝혔다. 인경본 관련 내용을 알지 못한다면서도 여기에 내전수함음소가 없다는 점은 안다고 대답한 것이다.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기자의 지적에 문화재청 담당자는 그제서야 “1960년대에 이루어진 인경의 전체적인 상황이나 부수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확인하기 어렵다는 취지의 답변이었다”며 “1960년대 당시 인경본 중 하나인 동아대 석당학술원의 인경본에서 내전수함음소가 없다는 게 확인돼 그렇게 말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문화재청이 관여해 만든 ‘합천 해인사 대장경판 중복판 조사용역사업 보고서’에는 1963년부터 1968년 사이에 걸쳐 해인사 보유 팔만대장경이 총 13부 인경됐다는 사실이 버젓이 나온다. 그런데도 문화재청은 동아대 외에 동국대와 성균관대 등 1960년대 인경본을 소장한 다른 곳에 있는 인경본을 확인조차 하지 않아 논란을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편 현재 내전수함음소가 포함된 인경본을 유일하게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해인사는 해당 인경본이 1960년대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이에 대한 접근을 차단하고 있다.
채지선기자 letmeknow@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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