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 동안 한번쯤은 해외에 다녀와야 여행으로 쳐주는 세태지만 실제 대학생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다. 등록금과 방값에 조금이라도 보태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고, 취업과 학습의 부담감에 마음의 여유를 찾기 힘든 게 현실이다. 여름방학 동안 한국일보에서 인턴기자를 하고 있는 남녀 두 대학생이 친구들과 가볍게 다녀올 수 있는 1박2일 근교여행을 기획했다. 조건은 딱 한가지, 1인당 10만원 이내에서 모든 걸 해결하는 것이다. (관련기사▶ 여자 넷 춘천여행 따라가기)
남자들만의 우정과 자유! 한탄강 래프팅 여행
친구들끼리 방학 때마다 “여행 한번 가야지”라는 말이 입버릇이었지만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 남학생들의 흔한 만남은 PC방에서 술집으로 이어지는 코스가 전부였다. 고등학교에서 함께 기숙사 생활을 했고 대학생이 되고도 자주 만났지만 여행은 생 초보였다. 학생신분으로 가는 사실상의 마지막 여행, 모든 일정을 직접 기획한 것도 처음이었다.
우선 장소 선정. 남자들끼리 갈만한 곳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아무리 아름다운 곳이라도 그림이 칙칙할 수 밖에 없다. 관광지 보다는 레포츠와 체험위주 여행이 낫겠다. 양평 가평도 후보에 올랐지만 한탄강으로 최종 낙점했다. 상류인 철원에서 래프팅을 한 후, 하류인 연천의 ‘한탄강 오토캠핑장’으로 숙소를 잡았다. 비용도 고려사항이다. 일인당 3만3,000원이면 래프팅과 산악바이크를 같이 즐길 수 있고, 모든 것이 갖추어진 캐러밴은 하루 숙박에 10만원, 이 정도면 가격도 적당했다.
다음은 교통편. 동두천역에서 한탄강역까지 열차가 운행하지만 배차간격이 길고 철원까지 이동이 번거로워 렌터카를 이용하기로 했다. 10만원이면 5명이 움직일 때 대중교통에 비해 많이 들지 않고, 일행 중 나름 운전의 고수도 있었다. 렌터카 이용도 처음이다. 차를 받으러 가야 하는 줄 알았는데 원하는 지역에 대령해 주었다. 오호!
당일 아침, 카톡도 길게 안 하던 친구들의 전화가 빗발쳤다. 하늘이 뚫린 듯이 비가 쏟아졌다. 남부지역은 곳곳에 호우주의보와 경보까지 내려졌다. 설렘보다 걱정이 앞섰다. 예약한 업체에 전화하니 다행히 무리가 없을 거라는 답변이다.
드디어 출발! 남자들끼리 여행 기분을 내기엔 오히려 렌터카가 제격이었다. 그대로 작은 해방구다. 아이유로 산뜻하게 출발해 각자 듣고 싶은 노래를 마음껏 틀었고, 제멋대로 성대모사도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철원 고석정까지 2시간 동안은 완전한 자유를 만끽할 수 있었다. 다행히 오던 비도 그치고, 업체 측에선 유량이 많아져 오히려 래프팅을 하기엔 더 좋아졌다고 했다.
조교의 안내에 따라 구명조끼를 입고 헬멧을 썼다. 승일교에서 순담계곡으로 이어지는 1시간 정도의 코스다. 천천히 노를 저어 물길을 따라 내려가자 장관이 펼쳐졌다. 곳곳에서 노를 멈추고 절경에 취했다. 주상절리로 이뤄진 기암절벽에 소나무가 많아 더 웅장하고 신비롭다. 무협지 등장인물이 경공술(가볍게 날아올라 장소를 이동하는 기술)을 펼치던 장소 그대로다. 안개가 자욱하게 깔리고 나룻배였다면 더 잘 어울리겠다.
곳곳에서 만나는 급류에서는 짜릿한 재미를 맛볼 수 있다. 물을 뒤집어 쓴 만큼 함성과 웃음도 커진다. 낙차가 큰 급류에서 J가 얼굴에 물벼락을 맞고 보트 안쪽으로 쓰러졌다. 얼빠진 그의 모습에 또 한바탕 웃는다. 뒤쪽을 보니 이번엔 조교가 물속에 빠졌다. 한 쪽 발만 걸치고 보트의 방향을 잡기 위해 몸을 바깥으로 기운 상태였는데 그만 실수를 한 듯 했다.
급류를 몇 번이나 만나고 고석정에 들어섰다. 강물 가운데 십여 미터 높이의 바위가 솟아있다. 그 위에 소나무들이 고고하다. 임꺽정이 숨었다가 포졸이 오면 강물로 뛰어든 장소라는데 가능했을지 의문이다.
‘추노’와 ‘군도’ 의 촬영지였다는 곳은 작은 모래사장과 현무암 협곡이 잘 어우러진 풍경이다. 자연이 만든 천혜의 세트다. 계곡을 따라 끝없이 기암절벽과 특이한 모양의 바위가 이어졌다. 방수팩에 핸드폰이라도 넣고 올 걸, 카메라를 가져오지 못한 것이 못내 후회되고 아쉬웠다.
오후 4시가 다 되어서야 한탄강 오토캠핑장에 도착했다. 비도 오고 휴가도 끝물이라 캠핑장은 조용했다. 캐러밴이 쭉 늘어선 바로 앞으로는 폭이 넓어진 한탄강이 흐른다. 서울에서는 볼 수 없는 여유가 느껴진다. 딸과 느긋하게 대화를 나누는 어머니, 간이 테이블에 마주앉아 캔맥주를 나누는 젊은 부부의 모습이 편안하다. 조명이 은은한 산책로에서 우산 하나에 의지한 커플의 모습이 부럽다.
캐러밴 내부는 주방부터 샤워실, 침실, 식기 도구 등 웬만한 것은 다 구비되어 있었지만, 인터넷에서 본 것보다는 좁았다. 남자들끼리의 여행은 생필품 전쟁이다. ‘누군가 가져오겠지’라는 생각에 꼭 필요한 물건도 안 가져오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칫솔만 들고 온 파렴치한이 있었다. 캐러밴에 수건이 있었다는 점은 큰 다행이었다.
남자들만 모이면 여자들 못지않게 수다스럽다. 여자친구가 있는 Y와 J는 수시로 전화를 해서 솔로의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 캐러밴 내부를 찍어 보내는가 하면 영상통화로 다음엔 둘이 오면 좋겠다는 망발을 스스럼없이 쏟아냈다. 그 후로도‘남자들의 여자이야기’는 끝을 모르고 이어졌다.
밤이 무르익자 얘기는 앞날에 대한 방향으로 모아졌다. 곧 대기업 입사를 앞둔 M은 한숨 돌린 상황이다. 뒤늦게 한의대에 진학한 Y는 아직 4년 더 다녀야 하는 게 부담이고, 로스쿨 진학을 원하는 J와 H는 만만치 않은 경쟁률과 등록금에 한숨이다. SNS로는 알 수 없었던 친구들의 참모습을 온몸으로 부대끼며 확인하고 고민을 나눌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철원·연천=이재림 인턴기자(경희대 경영학과3)
[한탄강 여행비용(남자 5명)]
- 숙박비 100,000원(6인용 캐러밴 성수기요금)
- 교통비 105,000원(렌터카+보험료+기름값)
- 식비 76,760원
- 체험·입장료 165,000원
- 총액 446,760원
- 1인당 89,352원
[한탄강 여행메모]
- 한탄강은 강원 철원에서 경기 포천·연천을 거쳐 임진강으로 합류되는 길이 110km의 강이다. 현무암 협곡을 이루고 있어 규모에 비해 웅장하고 기암괴석이 많다. 평지에서 푹 파진 지형이라 교량을 지나는 곳이 아니면 강이 보이지 않는 점도 특징이다.
- 철원·포천·연천은 고속도로가 없어 실제 거리보다 멀게 느껴진다. 전철이 없어 대중교통보다는 개별 승용차를 이용하는 편이 낫다.
- 고석정은 철원지역 한탄강 관광의 핵심지역이다. 강 중앙에 우뚝 솟은 기암봉과 일대의 현무암 계곡이 절경이다. 제대로 감상하려면 래프팅 보트를 타는 게 좋다. 승일교~순담계곡, 순담계곡~군탄교 구간은 3만 3,000원, 직탕폭포~승일교 구간은 5만 5,000원이다.
- 포천시는 상류에서부터 차례로 한탄강8경을 지정하고 본격적으로 한탄강 알리기에 나서고 있다. 현무암협곡에서부터 폭포 소 등이 두루 포함됐다. 제6경 비둘기낭 폭포는 주상절리와 폭포가 아름답게 조화를 이뤄 ‘선덕여왕’ ‘늑대소년’ 등 드라마와 영화에 자주 등장한 곳이다.
- 포천시는 제3경 화적연에서 제7경 구라이골에 이르는 구간에 2개 래프팅 코스를 운영하고 있다. 포천시통합예약 사이트(http://www.pcss.kr)에서 자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 연천군은 전곡리 유적지 일대를 체험 놀이공원으로 꾸몄다. 다양한 구석기 체험프로그램과 시설이 아이들의 호기심과 상상력을 자극한다. 유적지공원 동편의 전곡선사박물관에선 구석기 유물과 생활상을 상설 전시하고 있다.
- 유적지 아래 한탄강변엔 오토캠핑장을 조성했다. 자동차야영장과 캐러밴, 캐빈하우스(오두막)등 3가지 숙박시설로 구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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