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시장이 살아난다는 말이 빈말은 아닌 것 같다. 올해로 결혼 11년. ‘하우스 푸어’가 될 생각이 없다며 오래도록 셋집살이를 고집했던 나와 아내가 얼마 전 두 손을 들었다. 아파트 매매 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말았다. 덜컥 계약금을 내고, 담보대출 신청을 하고 난 후 지금까지 내 집 마련을 하지 않았던 가장 큰 이유가 단지 신념이 아닌 자금의 문제에서 비롯됐다는 현실을 깨끗하게 인정했음은 물론이다.
특별히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다행히(?) 아파트 계약은 경기 부양을 최우선으로 밀어붙일 거라 믿었던 최경환 부총리가 전면으로 부상한 7월 초에 이뤄졌다. 최 부총리의 부동산 활성화 대책 발표와 때를 맞춰 생애 첫 주택 구입 스케줄은 진행됐고 여러모로 그 과정은 수월했다. 부동산 중개인은 “대출규제가 곧 완전히 풀릴 것”이라며 아파트 가격이 치솟기 전에 올바른 선택을 했다고 호언했다. 매도인도 섣불리 집을 팔았다는 아쉬움을 감추지 않았다. 모든 언론이 정부의 규제완화가 속도를 붙일 것이라 떠들었고, 최경환 경제팀은 이에 정확히 호응해 주택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 등 부동산 장벽의 키를 봄날 눈 녹듯 낮췄다.
부동산 실수요자의 눈으로 목격한 최경환 부총리의 경기부양 드라이브 효과는 생각보다 대단했다. 무덤 속처럼 조용하던 동네 부동산들이 장마당처럼 북적거렸다. 아파트를 계약하고 돌아선 후 며칠 지나지 않아 급매물들은 자취를 감춰갔다. 알게 모르게 매매가격은 조금씩 올랐다는 말이 들려왔다. 은행권 주택담보대출 상품들의 이자는 내려갔고, 은행창구에서 직원들은 “10년 전만 해도 LTV 100%까지 척척 대출을 해주는 게 흔한 일이었다”며 대출 건이 문제없이 진행되리라 말했다.
시장은 뉴스보다 한발 앞서 움직이고 있었다. 살던 전셋집을 처분하기 위해 찾아간 부동산마다 중개사들은 전화기를 붙들고 있었다. 투자가치가 높다고 볼 수 없는 구형 아파트 단지 곳곳에서 속속 이뤄지는 매매계약들은 누가 봐도 실수요자들의 움직임이었다. 부동산 거래 비수기인 8월 서울 아파트 거래량이 6,095건으로 같은 달 기준 5년래 최대치를 달성했다는 뉴스는 당연한 결과였다. 취재를 위한 3자의 눈이 아닌, 실제 나의 문제로 바라본 2014년 여름 부동산 시장은 무더위만큼 뜨거웠다. 여기까지, 최경환의 계산은 대체로 맞았다는 점을 인정해야 할 것 같다. 일단 이 지점까지는 ‘긍정적’이다.
하지만 부동산 경기가 달아오름에 따라 가계부채 악화에 대한 우려도 자라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는 평가를 성급히 확대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대통령의 금융권 보신주의 타파 의지까지 맞물리면서 부동산 시장을 향한 돈의 흐름은 점차 거세질 것이고, 이 격류를 견디지 못하는 부실의 지점에서 악성 부채를 짊어진 서민들은 치명적인 좌초를 경험할 수밖에 없어서다. 결과적으로 시류에 편승한 것처럼 이뤄낸 아파트 구매와 담보대출로 나 또한 이 격류 속에 뛰어든 셈이다. 개인적인 상황에 따라 언제라도 거꾸러질 수 있는 소용돌이 안으로 제 발로 걸어 들어 왔으니 불편한 마음이 없다고 말하기 힘들다.
8월 들어 살고 있는 동네의 전셋값이 치솟았다는 뉴스가 들린다. 전세금 인상률 상위 지방자치단체 순위에 올랐다는 말도 있다. 반전세의 유행 탓에 줄어든 전세물량을 저금리 기조 때문에 더욱 찾기 힘들어지면서 주변에선 내 집 마련을 서두르는 이들이 크게 늘었다. 이래저래 이들 서민의 선택지는 넉넉하지 못하다. 무리해서라도 빚을 내 집을 살 것인지, 아니면 쪼들리며 셋집을 전전할 것인지. 경기부양을 위해 정부는 연일 시장으로 자금을 쏟아 붓고 있지만 서민의 설 자리는 아이러니하게도 좁아지는 느낌이다.
가계부채 증가 속도가 소득이 늘어나는 속도의 두 배에 달하며, 주요 은행들의 주택담보대출 잔액이 지난달 4조원 가까이 급증했다. 나를 비롯한 서민들이 단순히 정부의 부동산 활성화 대책의 화려한 면에 혹해서 무리한 선택을 하지 않았기를 그저 간절히 바랄 뿐이다.
양홍주 경제부 차장대우ㆍyang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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