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가 국민 수준을 반영하는 잣대라면 한국 국민의 수준은 더 떨어질 곳 없는 지점까지 추락했다. 세월호 특별법의 장기표류, 언제든지 찾아오라던 박근혜 대통령의 세월호 유족 면담거부, 2012년 대선 기간 동안 자행된 국정원의 선거개입 행위에 대한 사법부(재판장 이범균)의 납득하기 어려운 판결(정치관여는 했지만 선거개입은 하지 않았다), 내분과 무능으로 자멸해가는 새정치연합과 아무런 설명 없이 폐기되는 박근혜 대통령의 증세 없는 복지 약속 등에 이르기까지 참담한 지경이다. 청와대와 여당의 탓이 큰데도 지지율은 50%에 가깝다. 과반수 가까운 국민들은 저런 사안들이 별 것 아니라고 여기는 모양이다. 오히려 애국과 경제위기 등을 내세우며 적극적으로 지지한다.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그들을 믿으며 ‘내편 정치’를 밀어붙이다 보니 나머지 국민들은 버려진 형국이다.
버려지고 희생당한 국민들이 아프다고, 진실을 알고 싶다고 말하면,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경찰로 겹겹 포위하여 목소리를 봉쇄한다. “국정의 중심을 민생과 국민대통합 약속 실천에 두고 국민 모두가 행복한 100% 대한민국을 만드는 것”이 국정철학이라던 박근혜 대통령에 기대를 걸었던 국민들은 지금 실망을 넘어 냉소하고 있다. 국정 철학을 뒷받침해야 할 정책과 행동은 그 반대로 가기 때문이다. 어제 세월호 특별법에 대한 유족들의 요구사항을 모두 거부하는 대통령의 목소리엔 자신감이 넘쳤다. 이런 태도를 통해 전하는 메시지는 확실하다. 어떤 억울한 일을 당하더라도 권력의 비위를 거슬리지 않고 말을 잘 듣는 ‘착한 피해자’가 되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내편 국민과 권력에 순응하는 내편 아닌 국민들로 채워진 나라가 그들이 꿈꾸는 나라일까.
이런 노골적인 ‘내편 정치’는 이명박 정부에서 본격화했다. 특히 그는 우리 사회의 가치기준을 돈으로 획일화시켰고, 자기 편의 이익을 확실히 챙겨줬다. 정책의 기준은 돈이 되는지 여부였고, 환경파괴와 국민저항 따위는 무시했다. 노동자의 파업과 정부정책에 반대하는 목소리는 해고와 벌금으로 찍어 눌렀다. 또한 저항하던 사람들이 국가기관에 의해 사찰을 당하거나 피의자가 되자 겁먹은 국민들은 고개 숙여 침묵했다. 정의와 평등을 외치는 목소리는 메아리 없는 아우성으로 잊혀졌다. 제 이익을 잔인하게 추구하는 자들이 현실에서 승승장구했고, 입법부와 사법부는 그런 집단을 방치하거나 한 통속이었다. 불법으로 천문학적인 부를 축적한 자들은 제대로 처벌받지도 않았다. 박근혜 정부가 그런 과거의 적폐들을 바로 세워주리라 간절히 기대했지만 오히려 ‘내편 정치’를 강화시키고 있다.
100%의 대한민국과 국민대통합을 이루겠다던 약속을 대통령은 잊은 듯 하다. 향후 2년 동안은 선거가 없어서 청와대와 여당의 태도는 바뀌지 않으리란 전망이 우세하다. 그렇다면 이 모든 적폐들이 그들만의 잘못일까? 아니다. 약속을 지키지 않고 거짓말을 일삼는 그들에게 계속 기회를 주고 있는 국민들의 잘못도 크다. 왜 그런지 양치기 소년의 우화에 빗대 생각해 보자. 늑대가 쳐들어 왔다는 거짓말을 일삼던 소년 때문에 늑대가 진짜 왔을 때는 마을 주민들 중 누구도 도와주러 오지 않았다. 그 결과 주민들의 소중한 재산인 양들을 잃었다. 거짓말을 한 소년의 잘못이 크지만 중요한 임무를 맡은 소년이 거짓말을 반복하는데도 화만 낼 뿐 잘못된 행동을 바로 잡지 않았던 주민들에게 더 큰 잘못이 있다. 오히려 소년의 거짓말은 잘못된 시스템을 점검할 ‘골든 타임’이었으나 주민들의 무지와 게으름으로 놓쳐버렸다. 충분히 예견된 인재였다. 따라서 이 이야기의 핵심 메시지는 거짓말 하는 사람에게 자꾸 기회를 주다 보면 결국 나의 크나큰 피해로 돌아온다는 가르침이다. 우리는 국가의 양치기와 같은 정치인들이 내뱉는 거짓말에 대해서는 반드시 그 책임을 엄중하게 물어야 한다. “과거범죄를 단죄하지 않는다는 것은 미래 범죄에 용기를 주는 어리석은 짓”이라는 알베르 카뮈의 지적도 같은 맥락이다. 이것이 ‘내편 정치’에 기울어 ‘착한 피해자’를 강요하는 나라를 바로잡는 시작이다.
이동섭 예술인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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