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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민국'을 깨는 정치

입력
2024.11.06 00: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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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시내 한 대학병원 응급의료센터 앞에서 환자 및 보호자들이 대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시내 한 대학병원 응급의료센터 앞에서 환자 및 보호자들이 대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 서울에서 태어났습니다. 이후 부평에서 몇 년간 살고, 다시 서울로 돌아왔습니다. 방구석 생활을 즐기는 서울 촌놈이다 보니 스무 살이 되어서야 한국지리 교과서에서만 보던 지역의 방언을 처음 들었습니다. 전라도와 경상도, 그리고 그 지역 내에서도 사투리가 조금씩 다르다는 사실을 그제야 눈치챘습니다. 우습게도 외조부모님은 경상도 출신이셨고 이 역시 스무 살이 넘어서야 알았습니다. 제가 태어나기 훨씬 전에 상경하셨고, 이후에는 수도권에만 사셨으니 전 몰랐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하니 외할머니의 빨간 소고기뭇국과 제 아버지를 '사우'라고 부르는 언어 생활이 유일한 지역의 흔적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대학에서 만난 지역 출신 친구 중 몇몇은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 했습니다. 실제로 지역 기업에 취업한 경우도 있고, 자처해서 지사 발령을 간 친구들도 있었죠. 퇴직하면 꼭 돌아가겠다는 친구들은 더 많았습니다. 하지만 친구들 모두 요즘 들어 그 마음을 접었습니다. 오히려 다시 서울로 올 준비를 하는 친구들도 많습니다.

의료 때문입니다. 취업을 하니 결혼을 하고, 결혼을 하니 아이 가질 준비를 합니다. 그런데 임신 중에 큰일이 나면 갈 수 있는 병원이 지역에 없습니다. 난임 치료를 받기는 더더욱 어렵습니다. 어렵게 낳은 아이가 다쳤을 때 응급실 뺑뺑이를 겪을까 겁납니다. 일자리는 어떻게 구해도, 병원자리는 어떻게 구할 수 없는 게 작금의 현실입니다.

정부는 이걸 해결하려는 선한 명분으로 의료개혁을 추진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완성되지 않았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지방 국민들이 보고 있습니다. 국무총리는 추석 때 발생한 지역 응급실 뺑뺑이는 이미 발생하던 고질적 문제라며 책임을 회피했습니다. 정부의 추상적 답변은 지방 사람들에겐 확실한 공포로 다가옵니다. 고향에서 일가를 꾸리려던 친구는 다시 상경을 준비하고, 아프면 진짜 죽을 수 있겠다는 미지의 공포에 휩싸인 분들도 많습니다.

사실 의료만 문제는 아닙니다. 지방이 소외된 분야는 많습니다. 예시 중 하나가 지방대학입니다. 2023년 지방거점국립대에 대한 정부의 지원액은 학생 1인당 2,000만 원대입니다. 이는 서울대의 60% 수준에 불과합니다. 자본은 곧 경쟁력입니다. 지방대 경쟁력이 떨어지니 청년들은 서울로 올라가고 기업들도 수도권에 몰리기 마련입니다. 집값은 더욱 비싸집니다.

독일의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도 이 문제를 똑같이 지적했습니다. 독일의 경우, 지방국립대 경쟁력이 높아서 여러 지역에서 양질의 고등교육이 제공된다고 합니다. 지역 청년들은 이주할 필요가 없으며 기업도 지역에 머물 유인이 생깁니다. 지역에서 일자리를 얻고 가정을 꾸리는 선순환이 생깁니다.

저는 정말 운 좋게 서울에서 태어났습니다. 서울에서 태어난 것만으로도 행운이라는 사실을 요즘에서야 알았습니다. 동시에 누군가는 불운하게도 서울 바깥에서 태어나서 역경을 딛고 생존해야만 하는 시기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가까이서 보면 생존 다큐이며 멀리서 보면 희극인 대한민국이라는 시트콤의 끝은 결국 서울민국으로의 개명이 아닐까 싶습니다. 서울민국이 아니라 대한민국으로 존재하기 위해서, 서울과 지역이 공존하기 위해선 서울 바깥을 위한 정치와 사회가 필요한 2024년입니다.


구현모 뉴스레터 어거스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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