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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청와대는 솔직해져야 한다

입력
2014.09.23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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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가 터진 뒤 우리의 1년 후 모습이 어떨지 두렵다는 칼럼을 썼다. 수많은 대형 사고에서 정부가 보여 온 행태를 볼 때 이번도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지레 체념과 함께 한편으로는 세월호 만큼은 정말 제대로 규명해서 허망하게, 처절하게 죽어간 어린 학생들에게 조금이나마 속죄해야 한다는 심정에서였다. 그러나 5개월이 넘도록 세월호 참사는 아직도 바닷속에 잠겨있는 10명의 실종자 만큼이나 한치도 수렁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다. 내년 4월 16일 대한민국이 어떤 낯짝으로 추모 1년을 맞을 지 참담하기만 하다.

정치권이 몇 개월 째 입씨름 하는 쟁점은 잘 알다시피 진상조사위에 수사ㆍ기소권을 주느냐 여부다. 진상을 제대로 규명하기 위해서는 독립적인 외부 인사가 전권을 쥐고 수사해야 한다는 게 유족들의 주장이다. 이미 제도화돼 있는 상설특검법의 취지와 다르지 않다. 사건이 던진 충격이 엄청난 만큼 이를 특별법으로 보다 엄중하게 다루자는 것뿐이다. 그런데도 청와대와 여당은 삼권분립에 어긋나기 때문에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한다. 과문한 탓인지는 몰라도 그렇다면 지금까지 12차례나 했던 특검은 헌법에 위배되는데도 했다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고 정부ㆍ여당이 대신 내세우는 특검 또한 기대 난망이라는 건 삼척동자도 안다. 지금까지 단 한번도 제대로 기능하지 못한 과거가 말해준다. 권력형 비리를 수사한다면서 대통령이 특검 임명권을 행사하는 제도에서 성역 없는 단죄가 가능할 리가 없다.

그러면 청와대가 반대하는 속내는 한 가지일 수 밖에 없다. 특별법에 따른 특검 임명에 대통령이 개입할 수 없게 되면 청와대가 수사의 칼날 위에 올라갈 수 있다는 두려움이다. 청와대가 수사대상이 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작위적인 위헌 논리를 갖다 대고 결과적으로 세월호 진상규명을 막는다면 어느 국민이 용납할 수 있겠는가. 구체적인 범죄혐의가 없으면 수사ㆍ기소권이 있더라도 청와대에 대한 영장 발부가 어렵다는 게 법조계 대다수의 시각이라고 한다. ‘대통령의 7시간’을 포함해 청와대가 세월호 참사에서 떳떳하다면 왜 더더욱 당당하게 조사받지 못하겠다는 것인지 국민은 궁금해하는 것이다. 국가개조를 하겠다는 청와대가 정작 자신에게 쏠린 의문은 덮고 가자는 것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언론에서 숱하게 지적했듯 지금까지의 국정조사나 검ㆍ경 수사에서 밝혀진 것은 거의 없다. 익히 예상했던 바다. 유병언 일가에게 모든 책임을 뒤집어 씌우면서 현장의 말단 공무원들 몇 명 잡아넣은 게 고작이다. 그나마 선박회사와 선원, 해경 등 관련자들은 서로 책임을 떠넘기고 있고, 법원에서는 이들에 대한 영장이 기각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핵심인 재난 시스템이 왜 이렇게 엉망이 됐는지, 관피아의 부패사슬이 어떻게 형성된 것인지, 백주대낮에 학생들이 수장되는 장면이 TV로 생중계되고 있었는데도 정부는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에 대한 의문은 하나도 풀린 게 없다. 이래서는 절대 국민이 바라는 진상규명, 책임자처벌, 재발방지가 이뤄질 수 없다.

박근혜 대통령은 참사 한달 여 뒤인 5월 19일 대국민담화에서 “이번 사고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최종책임은 대통령인 저에게 있다”면서 유족들에게 진상규명에 여한이 없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언제든 자신을 찾아오라고도 했다. 그랬던 대통령이 두 달 가까이 유족의 면담요구와 특별법 제정 목소리에는 귀를 막더니 16일 국무회의에서는 여야의 2차 협상안이 “마지막 결단”이라며 더 이상 양보가 없다는 쐐기를 박았다. 그러면서 국민은 민생을 풀어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특검 추천 과정의 일정부분을 유족에게 양보하는 것을 두고 결단이라고 했다면 그건 잘못된 단어 선택이다. 결단이라고 할 수 있으려면 ‘수사ㆍ기소권을 인정해 모든 것을 객관적으로 투명하게 조사하도록 하겠다. 대통령도 예외가 아니다. 그런 다음 모든 잘못된 것을 성역 없이 발본색원하겠다’는 말이 나왔어야 했다. 민생을 거론해 아직 시작도 못한 진상조사를 희석하려는 것이 돼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황유석 여론독자부장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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