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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싫어도···

입력
2024.09.13 04:3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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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강명 작가의 소설 '한국이 싫어서'가 9년 만에 영화로 재탄생했다.

장강명 작가의 소설 '한국이 싫어서'가 9년 만에 영화로 재탄생했다.


'헬조선'이라는 말이 유행하던 때가 있었다. 10년쯤 되었을까? 헬조선은 '헬(Hell)'과 '조선'의 합성어로 지옥 같은 한국을 말한다.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자조적으로 쓰이던 말이 경제적 어려움, 극심한 사회적 경쟁, 그리고 개인의 심리적 고통을 반영하며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사회적 위기를 대변했다.

무한 경쟁사회 속에서 보이지 않는 계층의 벽이 존재했고 그로 인한 불공정은 서로를 불신하게 만들었다. 정치·사회 지도자가 바뀔 때마다 그 불신을 잠재우기 위해 공정과 상식이 통하는 세상을 강조했다. 그들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을 개혁인 것처럼 천연덕스럽게 이야기할수록 역설적으로 사회에 대한 미움은 눈덩이처럼 커졌다. 그들이 던진 달콤한 미래에 대한 약속도 아무것도 지켜진 것 없이 신기루처럼 눈앞에서 사라졌다. 마치 희망고문 같았다. 자격지심일지 모르지만 당연히 지켜져야 할 공정과 상식도 선택적으로 적용되며 젊음을 무기력하게 했다.

고백하자면 불신의 시대를 사는 것이 모두에게 나빴던 것은 아니다. 위안이 된 적도 있다. 어떤 일에 실패하게 되더라도 "여기는 헬조선이니까 이 정도면 잘 견뎌냈어" "이 정도면 중간은 하지 않았겠나" 스스로에게 위로를 건네기도 했다. 헬조선이라는 기분 나쁜 어감의 유행어는 누군가에게는 불행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주는 마법 같은 부적이 됐다. 나는 지옥불 속에서 고통받으며 살아가고 있지만 지옥불을 떠나서는 살 수 없는, 남의 불행을 행복으로 먹고사는 아귀 같은 존재였다.

헬조선이라는 말이 생겨났을 때 대한민국 국정 슬로건은 '희망의 새 시대'였다. 그 구호는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거쳐 '다시 대한민국! 새로운 국민의 나라'로 이어졌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현실을 원망하는 빈도가 예전에 비해 현저하게 줄어들었음을 깨닫는다. 현재의 상황들이 10여 년 전보다 훨씬 좋아지지 않았음에도 그렇다. 꿈이 모두 고갈돼 더 이상 꿀 꿈이 없거나 각박한 현실을 온몸으로 맞아내며 생긴 '내성'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옥불에 대한 내성이 약한 일부는 "헬조선 탈출은 지능 순"이라며 태어나고 자란 둥지를 떠나기도 했다. 최근 개봉한 영화 '한국이 싫어서'의 주인공도 그런 이 중 하나다. 장강명 작가의 소설 원작을 9년 만에 스크린으로 옮긴 이 영화는 지난해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소개됐다. 9년 전 읽었던 책이 영화화됐다니 반가워서 책을 다시 주문해 열독하고 영화를 관람했다.

주인공 계나는 대학졸업 후 힘들게 직장생활을 하며 헬조선의 고통과 불합리를 견디다 못해 결국 행복을 위해 뉴질랜드(원작에선 호주)로 떠난다. "내가 왜 한국을 떠나느냐고? 두 마디로 요약하자면 ‘한국이 싫어서’. 세 마디로 줄이면 ‘여기서는 못 살겠어서’. 계나는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을 좇아 떠나기로 했다."(장강명의 '한국이 싫어서' 중)

소설과 영화는 외국으로 떠나는 주인공이 인천공항 출국장 앞에서 한국에 대한 미련이 가득 담겨 수화물 무게가 초과된 이민자 가방의 짐들을 덜어내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한국이 싫어서' 떠나는 자는 '한국이 싫어도' 못 떠나는 자의 배웅을 받으며 공식적으로 이 나라와 이별을 한다. 영화는 원작에 충실했다. 9년 동안 바뀐 것이 하나도 없었다.


류효진 멀티미디어부장 jsknigh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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