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알림

[36.5℃] 당신을 화나게 하는 것들

입력
2014.10.13 19:44
0 0

얼마 전 한 지인은 은행을 찾았다가 분통이 터졌다. 자금 사정이 넉넉하지 못한 그는 주택구입을 위해 대출상품을 찾던 중 디딤돌대출과 보금자리론을 함께 신청하면 그렇지 않을 경우보다 대출한도를 더 늘릴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3%대 초반의 저렴한 금리로 대출을 더 받을 수 있다는 말에 가까운 은행창구를 찾았지만 직원은 “그럴 수 없다” 는 답을 내놨다. 은행직원이 복잡한 대출관련 정책을 자체 확인하는 정보센터로 세 차례나 문의했으나 같은 답이 돌아왔다고 한다. 그 직원은 “부족한 자금은 신용대출상품으로 채우면 된다”며 안내했다.

따지고 물었다. 전화도 돌렸다. 알고 보니 이랬다고 한다. 은행 직원이 문의한 정보센터에서 잘못된 내용을 전달했던 것. 자칫하면 저금리로 막을 대출을, 5% 이상 높은 신용상품 금리로 감당할 뻔했던 아찔한 순간이었다. 정작 은행 측은 자주 일어나는 ‘해프닝’인 것처럼 넘어갔다고 한다. 분명 정중히 사과했어야 함에도 그러지 않았다. 은행직원의 무지, 혹은 의사전달 실수가 서민의 삶을 흔들 뻔 했음에도 별일 아닌 것처럼 지나갔다. 보신주의 철폐 움직임으로 문턱을 낮췄다고 생각한 은행이 여전히 고자세라니. 그는 화가 났다. 혹시 자사 상품을 더 팔기 위한 덫은 아니었는지 의심도 들었다고 한다.

이사를 하면서 가까워진 부동산 중개인은 요즘 들어 수도권 신도시 지역에 전세난민들이 부쩍 늘었다고 말한다. 2억 원대 중반인 중소형 아파트임에도 전세가 불과 몇 개월 사이 2,000만원 가량 훌쩍 뛰어버렸고, 이를 감당하지 못하는 세입자들은 다세대 주택과 월세를 찾아 떠도는 일이 많다고 한다. 그는 “정부는 대출규제를 풀어줘서 세입자들이 집을 사도록 했다고 만족하는 것 같은데 정작 1,000만~ 2,000만원이 없어 셋집을 옮기는 이들은 대출로 내 집을 마련한다는 게 쉽지 않다”며 “경기 부양한답시고 전세시장만 들쑤셔놨다며 속 끓이는 이들이 적잖다”고 전했다. 부동산 규제를 완화하는 정부 덕분에 투기수요만 늘어날 뿐, 정작 서민들은 혈압만 치솟는다. 부동산 시장에도 화난 이들이 적지 않나 보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은 이들은 공무원사회에서도 쉽게 만날 수 있다. 공무원연금개혁 때문이다. 사실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30년 근속 300만원 연금’의 혜택은 고위공무원들의 사례인 경우가 대다수이다. 9급으로 공무원사회에 들어온 행정직 말단, 혹은 기능직의 경우 고시를 거쳐 승진의 계단을 밟아온 이들과 공무원연금 수령액을 비교할 수 없다. 하지만 이들 하위직 공무원에게도 고위직과 마찬가지의 ‘압박’이 들어온다. 지인 중에 공무원노조에서 활동하는 이들이 있어서 가끔 속내를 듣는다. “언론이나 정부 모두 우리 말을 듣지 않는다”고 속을 끓인다. 이들에게 공무원연금 부족분을 채우기 위해 세금이 얼마나 들어가는지 아느냐고 따져봤다. 대형집회를 준비한다고 해서, 그러지 말라고도 했다. “그게 우리 잘못인가. 운영을 엉망으로 한 정부 탓이다.” 이후로도 한참, 그들의 분노를 들어야 했다.

문장마다 ‘서민의 복지’로 마침표를 대신하는 정부의 각종 정책발표가 이어지고 있지만 정작 대국민 서비스 개선, 경기부양, 공적연금 개혁 등 그 어떤 것도 서민의 삶을 위무하지 못한다. 정부는 보신주의를 뿌리뽑는다고 하지만 은행들은 수신금리를 왕창 내리고, 여신금리는 찔끔 인하한다. 부동산시장을 살려 서민의 삶의 질을 개선하겠다고 하는데, 전세 살이의 고단함을 가중시켜 마지못해 매매로 건너가도록 등을 떠밀 뿐이다. 결국 서민에게 남는 건 빚더미인 경우가 다반사이다. 공적연금 개혁 또한 누구를 위한 것인지 방향을 가늠할 수 없다.

정부는 12월부터 심장 스텐트 시술에 대한 보험적용 개수 제한을 폐지한다고 발표했다. 지금까지는 평생 세 개만 건강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었지만 이젠 죽을 때까지 무제한으로 저렴하게 시술 받게 됐다. 앞으로도 서민은 화가 날 일이 많으니, 아무래도 심장병에 대한 대비도 더욱 단단해야 한다는 정부의 배려일 것이다. 정부가 ‘병 주고, 약 준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

양홍주 ㆍ경제부 차장대우 yanghon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