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나는 알고 있다. 오로지 운이 좋았던 덕택에/그 많은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 남았다. 그러나 지난 밤 꿈 속에서/이 친구들이 나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강한 자는 살아남는다.”/그러자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브레히트 ‘살아남은 자의 슬픔’)
세월호가 바다로 가라앉은 지 6개월이 지났다. 침몰하는 배 안에서 친구와 가족들에게 ‘사랑한다’는 마지막 문자 메시지를 보냈던 안산 단원고 학생들을 도저히 잊을 수가 없다. 그런 친구들의 죽음을 지켜볼 수 밖에 없었던 생존 학생들을 떠올리면 덜컥 겁이 난다. 살아남았다는 이유로 아직도 스스로를 미워하고 있진 않은지, 세상에 대한 믿음을 잃고 스스로를 고통의 공간에 가두고 살진 않을지….
한 생존 학생은 법정에서 “선원들의 처벌 보다 왜 친구들이 그렇게 죽어야 했는지 근본적인 이유를 알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충분한 시간이 있었는데도 승객들은 왜 구조될 수 없었는지, 국민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삼겠다던 정부는 뭘 하고 있었는지, 세월호의 실소유주였던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은 정ㆍ관계에 어떤 로비를 했는지, 속시원하게 밝혀진 것은 없다. 세월호 선원, 정부의 재난 책임자, 구조당국 모두 책임을 떠넘기기에 급급하다. 결국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면 ‘악마가 한 일’일 게다.
빵 굽는 아저씨, 빵이 잘못 구워졌어요!/빵이 잘못 구워질 리가 없는데/좋은 밀가루를 썼고/구울 때도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거든/그래도 잘못 구워졌다면/악마가 한 일일 게다/악마가 빵을 잘못 구웠다/(중략)/미장이 아저씨, 벽이 파열되었어요!/벽이 파열될 리가 없는데/내가 직접 돌을 쌓았고/회칠도 매우 세심하게 했거든/그래도 파열되었다면 악마가 한 일일 게다/악마가 벽을 파열시켰다.(브레히트 ‘악마’ 중)
무능한 정치인들은 세월호 참사를 선거에 이용했다. 여야는 참사를 계기로 안전대책을 쏟아내며 이 참에 대한민국을 바꾸겠다고 선언했지만 그때뿐이었다. 선거가 끝나자 태도를 바꿨고, 세월호특별법은 정쟁의 도구로 전락했다. 정치인들의 무책임은 시대와 국경을 초월한다.
상복을 입은 오세그의 과부들이/프라하에 와서 말했네/“이 아이들을 어떻게 해주세요 여러분/오늘 아무것도 못 먹은 이 아이들을!/아이들 아버지가 당신들의 탄광에서 죽었으니까요.”/“어떻게 해보지”라고 프라하의 나으리들은 말했네/“오세그의 과부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지?”/(중략)/상복을 입은 오세그의 과부들이/국회 앞으로 몰려갔네/“이 아이들을 어떻게 해 주세요 여러분/오늘 아무 것도 못 먹은 이 아이들을!”/그러자 국회의 나으리들은 일장 연설을 했다/“이렇게 하지”라고 국회의 나으리들은 말했네/“오세그의 과부들에게 연설이나 해드리지.”(브레히트 ‘오세그의 과부들을 위한 발라드’ 중)
1934년 체코 오세그의 탄광에서 수직 갱도가 무너져 142명의 광부가 목숨을 잃었다. 이 사고 역시 당국의 허술한 안전관리로 인한 인재였다는 점에서 세월호 참사와 닮았다.
불신은 커져만 간다. 급기야 대통령의 사고 당일 행적까지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의심을 품는 것은 찬양 받을 일이다/충고하노니/그대들의 말을 나쁜 동전처럼 깨물어 보는 사람을/즐겁게 존경하는 마음으로 환영하라/그대들이 현명하여/너무 믿을만한 약속은 하지 않기를 나는 바랐다/(중략)/이제 한 사람의 지도자가 된 그대여, 잊지 말라/과거의 그대가 지도자들에게 의심을 품었기 때문에/현재의 당신이 지도자가 되었다는 것을/그러므로 그대를 따르는 사람들에게도 허용하라, 의심하는 것을.(브레히트 ‘의심을 찬양함’ 중)
세월호 참사 6개월. 국가가 내 안전을 지켜줄 것이라는 기대는 접었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정신차리고 길을 걸어야 한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나에게 말했다/“당신이 필요해요”/그래서 나는 정신을 차리고 길을 걷는다/빗방울까지도 두려워하면서/그것에 맞아 살해되어서는 안되겠기에.(브레히트 ‘아침 저녁으로 읽기 위하여’)
*베르톨트 브레히트(1898~1956)는 나치에 반대해 망명생활을 했던 독일의 극작가, 시인으로 ‘서푼짜리 오페라’ 등을 썼다.
한준규 사회부 차장대우 manbo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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