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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소통의 골든타임

입력
2015.01.26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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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 태종의 통치이념인 정관정요(貞觀政要)에 나오는 ‘민심과 바다’의 비유는 낯설지 않다. 위징(魏徵)이라는 신하가 태종에게 “임금은 배요, 백성은 물이다. 물은 배를 띄울 수도 있고 배를 전복시킬 수도 있다(君舟也 人水也 水能載舟 亦能覆舟)”는 상소를 올렸다. 말할 나위도 없이 민심의 엄중함을 간언한 기록이다.

‘창조경제’와 경제살리기의 골든타임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박근혜 정부의 국정 동력을 회복하기 위한 골든타임이다. 국정동력을 회복하지 못하면 경제살리기도, 공무원 연금개혁과 공공부문 개혁을 추진할 근간이 훼손된다. 정권이 개혁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국민의 지지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안된다. 집권 3년차를 맞는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지난주의 이완구 총리 내정자 발표와 청와대 인사개편에도 불구하고 이렇다 할 반등의 기미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

청와대 비선실세의 국정개입 의혹과 민정수석의 항명성 사퇴, 집권당 대표의 수첩파동 등의 핵심은 청와대 기강의 문란이다. 김기춘 비서실장과 ‘문고리 3인방’의 퇴진이 인적쇄신의 핵심내용이 된 이유다. 예상보다 총리 교체가 앞당겨진 이유도 30%대로 추락한 지지율 탓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지난 23일 청와대 인적쇄신에서 청와대 문건 유출 파동의 당사자들에 대해 문책성 인사를 단행했어야 한다.

신년기자회견과 지난 20일의 국무회의 이후 지지율의 하락이 이어진 이유는 청와대 문건 유출 사건으로 빚어진 인적쇄신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음으로써 박근혜 대통령의 ‘불통’이미지를 불식하지 못해서다. 이후 새 총리 내정이 예상보다 빨라지고 측근들의 업무를 일부 축소하면서 이들의 교체를 요구하는 여론을 일부 수용했으나 결과적으로 3인방에 전폭적 신뢰를 보낸 결과가 지지율 반등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이완구 총리 후보에 대해 야당도 긍정적 평가를 하고 국정쇄신에 기대를 숨기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지지율 반등으로 이어지지 않은 것은 측근 3인방에 대한 소극적 업무 조정이 민심의 향배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실세’ 3인방의 역할과 무관하게 이들을 권력의 실세로 인식하는 여론을 달래지 못한 결과다.

한 달 후면 집권 3년차를 맞는다. 30%대의 지지율로는 집권 3년차의 각종 국정 개혁을 이끌 수 없다. 정책의 수립과 집행은 권력의 수입과 지출이 균형을 이룰 때 가능하다. 권력의 수입은 지지율이다. 민심을 거스르는 정권은 성공할 수 없다. 리더로서 어려울 때 동고동락한 동지들에게 무한 신뢰를 보내는 것은 나무랄 일이 아니다. 그들의 비리가 드러난 것도 없다. “의혹 받았다고 내치면 누가 제 옆에서 일 하겠나”는 대통령의 말도 맞다. 그러나 청와대 문건 파동에서 측근들의 의혹이 사실이 아니더라도 국민 인식 속에 비서관 세 사람의 유임이 불통으로 인식되는 프레임이 형성돼 있다면 과감하게 도려낼 수 있는 결단이 있어야 한다. 비서관 몇 명의 거취가 국정의 발목을 잡는 일은 상상할 수도 없다.

연말정산도 소급입법한다고 했지만 막상 연말정산 일정이 시작되면 민심은 더욱 악화될 수 있다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지지율 30%대가 무너진다면 당청관계와 내년도 선거를 의식한 새누리당 내부의 원심력도 작동될 수 있다. 더 이상 국민을 향해 눈과 귀를 닫으면 안된다. 문건유출 사건의 대응과 수습이 김기춘 실장과 우병우 민정비서관의 주도로 이뤄졌을텐데 사태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민정비서관을 민정수석으로 승진시킨 것도 국민들을 납득시키기 어렵다. 쇄신의 대상을 유임시키고 피상적인 조정에만 그친 것은 소통으로의 전환이 아니다. 국민과 여론은 국정운영방식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불통과 아집을 경계하는 목소리를 더 이상 가볍게 보아 넘겨선 안된다.

쇄신은 항상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지금이 골든타임이다. 새로운 총리의 내정이 노린 정치적 효과가 3인방의 유임으로 반감됐다. 지지율은 단순히 숫자가 아니다. 민주주의를 무엇으로 정의하든 ‘인민에 의한 다수의 지배’라는 기본 골격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민심이 잘못된 인식에 기초했다 하더라도 민심을 거스르면 ‘배도 전복될 수 있다’는 엄혹한 진실은 근ㆍ현대의 서구정치나 동양의 고대정치에서나 공통적으로 관철된다.

최창렬 용인대 교양학부 정치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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