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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박근혜식 '배신의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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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박근혜식 '배신의 정치'

입력
2015.06.26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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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에게는 배신의 트라우마가 있다. 측근에 의한 아버지 박정희의 죽음, 아버지가 대통령이었을 때는 한 자리 얻겠다고 구름처럼 몰려들다 등을 돌린 사람들을 보며 생긴 마음의 상처다. 박 대통령 자서전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아버지 서거 후에 밑바닥까지 경험했다. 믿었던 사람들의 배신을 통해 사람의 욕망과 권력에 대한 집착을 똑똑히 봤다.”

▦ 박 대통령에게 “믿지 못할 사람”이라는 말은 가장 심한 욕이다. 25일 국무회의에서 자신의 뜻을 거스르는 정치와 정치인을 ‘배신자’로 낙인 찍은 것은 최고 수위의 비난인 셈이다. 박 대통령이 배신의 준거로 제시한 건 국민이다. 정치인들이 국민을 배신했으니 심판해달라고 했다. 하지만 상당수 국민의 생각은 다르다. 논란이 있는 법안을 일방적으로 일자리와 경제살리기 법안으로 규정하고 통과시키지 않았다고 국회를 배신자로 몰아붙이는데 다수가 동의하지 않는다.

▦ 오히려 국민들이 배신으로 여기는 건 서슬 퍼런 대통령의 한마디에 자신들이 통과시킨 법안을 손바닥 뒤집듯 하는 정치권의 행태다. 국회법 개정안은 찬성 211명, 반대 22명, 기권 11명으로 압도적으로 가결됐다. 새누리당 의원 대다수가 찬성표를 던졌다. 그래 놓고는 국민들에게 일언반구 설명이나 사과도 없이 입장을 바꿨다. “위헌소지가 없다”며 당당히 목소리를 높이다 대통령이 호통을 치자 슬며시 꼬리를 내린 의원들이야 말로 국민에 대한 배신이다. 그러고도 국회의원 한 명 한 명이 헌법기관이라고 자임할 수 있을까.

▦ 더 걱정스러운 건 박 대통령의 인식이다. 정부가 제출한 법안 몇 개 통과시켜주지 않는다고 국민을 들먹이는 건 억지다. 논리적 비약일 뿐 아니라 독선이다. 짐은 곧 국가라는 왕조시대적 권위의식이 물씬 풍긴다. 민주사회에서 대통령이 정부고 국가이며 곧 국민이라는 발상은 위험하다. 무엇보다 박 대통령이 배신을 입에 올릴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다. 국민이 행복한 나라를 만든다며 내세운 경제민주화 등 수많은 공약이 휴지조각이 됐다. 세월호 참사와 메르스 대란에서 보듯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준다던 약속도 물거품이 됐다. 정치권이 박 대통령을 배신한 게 아니라 대통령이 국민을 배신한 게 맞다.

이충재 논설위원 c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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