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께 거듭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 대통령께서도 저희에게 마음을 푸시고 마음을 열어주시길 기대한다.”
웬만한 정치인의 말은 어디선가 들어본 느낌을 주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여당 원내대표의 공개 반성문에는 좀처럼 기시감이 들지 않았다.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도 집권당 원내대표나 되는 유력 정치인이 누군가에게 이처럼 공개적으로 엎드려 사죄를 구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한 인간으로서 느꼈을 수치심과 자괴감 또한 짐작할 수 있었다.
거기서 끝난 줄 알았다. 그리고 끝났어야만 했다. 누가 봐도 대통령이 이긴 싸움이었으므로. 상대의 공개 사과를 이끌어 내고, 원내 운영방식에 변화를 이끌어내는 정도라면 적지 않은 승리다. 그러나 대통령과 그 추종자들은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원내대표의 사퇴를 요구하며 정치생명을 끊으려 했다. 이미 무릎 꿇은 장수의 목을 베고자 한 격이다. 싸움의 목적이 승리(국회법 반대)가 아니라 목숨(원내대표의 낙마)이었다는 걸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원내대표가 자기 정치를 한다”는 대통령의 불만에, 추종자들이 벌떼처럼 달려들었다. 의석 160석 중 50여석을 가진 소수파가 의원총회 투표로 당선된 이에게 나가라고 떼를 쓴 건 뭔가 믿는 구석이 있어서였을 것이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저항이 있었다. 떠밀면 나갈 줄 알았던 원내대표가 버티기 시작했다. 애초 당의 헌법(당헌)에 따라 뽑힌 ‘선출권력’을 비정상적으로 찍어내려 한 것이 무리수였다.
사퇴 요구의 부당함을 말하는 여론이 확인되고 당내 분위기도 심상치 않자, 상황이 급변했다. 원내대표는 묵묵히 자기 할 일을 했고, 청와대는 당에서 알아서 해 줄 것을 바라며 침묵했다. 싸움의 본래 주체가 사라지고, 결국 등떠밀려 우르르 몰려나온 추종자들만 무대에 덩그러니 남았다. 누구는 여전히 소리를 지르지만, 다른 이는 슬며시 싸움을 외면한다. “저 사람들 대책도 없이 어쩌자고 저런 거야?” 사람들의 비웃음 소리가 들린다. 지금까지의 상황이다.
선출권력을 향해 대차게 들이대는 모습을 봤을 때는 뭔가 사전에 정교하게 계획된 시나리오나 플랜B가 있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나중에 복기를 해 봐야 정확히 알겠지만, 이번 공세는 그냥 무대책 닥공(‘닥치고 공격’의 준말)이었을 개연성이 높아졌다. 축구로 치면 수비수와 골키퍼까지 상대 문전으로 몰려나와 골을 넣으려고 아우성을 친 격인데, 이상한 건 자기네가 이기고 있던 경기라는 점. 골 차를 더 벌리려고 그랬는지 골키퍼까지 골맛을 보고 싶었는지 모르겠지만, 잘 방어해 낸 상대가 70미터짜리 중거리슛을 날리면 추가 득점은커녕 실점할 위기에 몰렸다. 계획성 없는 닥공의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
갈등과 진통을 거쳐 어찌어찌 원내대표를 몰아내는 데 성공하더라도 큰 부작용이 발생할 게 뻔하다. 이 싸움의 전후(戰後) 처리는 무관용이 지배할 공산이 크다.
과거를 돌이켜 봤을 때 고개 숙인 자를 가혹하게 대한 대가는 항상 승자에게 더 날카로운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로마는 제1차 포에니전쟁에서 지중해 패권의 숙적 카르타고를 이긴 뒤, 땅(시칠리아), 바다(제해권), 돈(배상금), 사람(포로)을 다 빼앗았다. 결국 한니발은 아홉살 때 신전에 복수를 맹세하고 로마에 대한 증오를 먹고 자라, 나중에 코끼리를 몰고 알프스를 넘어 로마의 배후를 강타했다. 제1차 세계대전 종전 후 연합국이 독일에 강요한 지나친 배상금과 무리한 무장해제 역시 독일경제의 파탄과 국가적 자존심 추락을 불러왔고, 승자의 무관용은 결국 히틀러라는 괴물이 되어 돌아왔다. 그래서 패배는 패자가 감당할 수 있는 정도여야 한다.
임기 반환점을 아직 돌지 않은 권력이 권력투쟁에서 관용을 발휘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패배를 인정한 상대의 목숨(정치생명)마저 노리는 욕심은 필시 또 다른 갈등의 씨앗이 되기 마련이다. 너무 철저히 짓밟으면 원한의 근원이 된다. 지금의 무관용이 부메랑 되어 돌아오는 시기는 권력이 끝물에 달했을 즈음일 것이다.
경제부 이영창기자 anti09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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