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가을쯤 강준만 교수의 책 ‘싸가지 없는 진보’를 구입했던 것 같다. 2012년 대선 직후부터 궁금했던 주제인 무능력, 무기력한 제1야당을 다룬 책이 출간됐다는 기사를 본 뒤였다. 책을 인터넷 주문하던 당시만 해도 야당 출입기자 발령 전 미리 공부해보자는 목적도 있었다. 하지만 늦가을 무렵 노조 일을 마치고 편집국에 복귀해 외교안보팀을 출입하게 되면서 이 책은 책장 한 켠으로 밀려났다.
‘싸가지 없는 진보’를 다시 꺼내 든 것은 지난 9일 밤이었다. 19대 국회 마지막 국정감사 시작 전날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의 기습적인 재신임 발의 발표를 듣고서다. “당 대표직을 걸고 혁신, 단결, 기강, 원칙의 당 문화를 바로 세우겠습니다”라는 문 대표의 비장한 발표문을 읽으며 비주류에 시달려 지난 7개월 마음 고생이 컸구나 싶었다. 발표 직전 안철수 의원의 총선 패배 예상 인터뷰, 천정배 의원의 호남 신당 추진 등 안팎의 흔들기에 인내가 다해 승부수를 던졌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다. 재신임 투표 강행은 생뚱 맞았다. 문 대표의 기자회견 전문을 아무리 읽어봐도 왜 내부 싸움을 시작했는지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무엇을 위한 혁신, 단결인지 알맹이는 보이지 않았다. 실제로 21일 재신임 투표 방침 철회 전까지의 야당 행태를 보면 친노ㆍ비노ㆍ반노 가릴 것 없이 모두 각자의 정치적 ‘빠’들만 생각하며 독설을 퍼부어대는 싹수 노란 제1야당의 당권, 공천권 다툼에 불과했다.
제1야당의 선거 연전연패 이유를 분석한 ‘싸가지 없는 진보’ 머리말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오늘 같은 상황을 1년 전에 예언한 것 같기도 하다. “민주당(새정치연합) 사람들이 생각하는 정치의 목적은 무엇일까? 민주당이 대선을 포함한 선거에서 승리해서 이 세상을 바꾸는 데에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는 것일까? 천만의 말씀이다. 그렇지 않다. 우선 나와 내 계파가 내부에서 이기고 보는 것이 목적이다. 세상을 바꿔보고 싶은 뜻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자신들의 패권을 전제로 한 것이기 때문에 있으나 마나 한 것이다.”
죽자 살자 싸우는 듯 하지만 결국 친노든, 비노든, 반노든 적대적 공생관계를 구축한 게 분명하다. 비주류는 주류를 물어뜯고, 주류가 밀려나면 다시 비주류가 돼 주류를 공박하는 악순환은 서로의 정치적 필요성에 의해 재생산되는 구조다. 노선투쟁을 가장한 계파싸움, 적절한 공천 몫 챙기기, 그게 안 되더라도 최소한의 정치적 영향력 확보하기에 열중하는 그들의 모습에 국민들은 냉소를 보낼 뿐이다.
사람들의 세상살이는 팍팍해지다 못해 벼랑 끝으로 몰려가고 있다. 정부가 노동개혁이라는 미명 아래 노동 불안정, 불평등을 심화시키겠다고 나서도 제1야당은 수수방관, 속수무책이었다. 정부 여당의 지속적인 흠집 내기와 정치적 환멸 분위기 조성 끝에 세월호 참사는 잊혀져 가고, 온 나라를 불안에 떨게 했던 메르스 사태 재발 방지 논의가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는데도 무사태평이었다.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가 요동쳐도 야당에선 식견 있는 대안 한 마디 내놓지 못하는 무력한 모습이다.
사회 이곳 저곳에서 외마디 비명이 터져 나온다. 그런데도 이들을 되살려낼 정치적 힘을 가진 집단은 서로를 헐뜯으며 ‘4년짜리 정치인 취업 전쟁’에만 정신이 팔려 있는 듯 하니 답답할 따름이다.
‘조금 더 품위 있는 발언과 자세, 누가 더 유능하게 일을 잘하는가 정책 경쟁에 총력을 다하는 분위기, 진정성에 앞선 성실성’을 갖춘 ‘싹수 있는 야당’은 불가능한가. 누구는 이미 철 지난 얘기를 담은 책이라 깎아 내리긴 하지만, 2015년 가을 야당 정치인들에게 ‘싸가지 없는 진보’ 일독을 권해본다. 1석이든, 20석이든, 100석이든, 150석이든 제대로 일할 정당이 필요해서다.
정상원 정치부기자 orno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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