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역사전쟁과 결국 동전의 앞뒤
박정희 공과는 이미 평가로 나와 있어
진정으로 역사전쟁 이기는 길 찾아야
노무현 전 대통령을 평가하는 글을 얼마 전에도 썼다. ‘권위주의와 기득권 타파, 정경유착 끊기, 인권존중, 약자 배려, 탈지역주의 등…. 실현할 역량이나 실적은 없었어도 그가 던진 이들 가치는 시대정신이 됐다. 이후 누가, 어떤 세력이 집권하든 이를 비켜갈 수는 없게 됐다.’
그럼에도 결코 인정할 수 없는 것이 그의 역사관이다. 취임식서부터 그는 근현대사를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자가 득세한 역사”로 싸잡았다. 우리가 숨쉬고 살아온 시공간을 한 순간에 쓰레기통으로 처넣었다. 사관은 다를 수 있지만, 국가정통성 계승책임을 지닌 대통령이 할 말은 아니었다. 나라는 갈갈이 찢겼다. 그에 대한 느낌은 그래서 애증이다. 그런데 이 일이 재연되려 한다. 방향만 바뀐 채로.
좍 정렬한 듯 보이나 새누리당이나 정부 쪽 사람들과 속내를 나눠보면 딱히 그렇지도 않다. 특히 수도권 의원들에게선 난감함이 묻어난다. “일부 편향을 수정할 필요는 있지만, 국정화는 방식이 아닌데….” 사실 이게 상식 선이다. 배울 만큼 배우고, 여론에 예민한 그들이 모를 리 없다. 짐짓 단호한 그들의 표정이 그래서 딱하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정화를 정치적 셈법으로 접근하는 건 확실히 아닌 것 같다. 정치인들 견해도 대개 같다. “선거나 통치전략이 아닌, 부친 명예회복 때문인 것 같다”는. 이승만이나 친일은 거기에 엮인 문제일 뿐이며, 허접한 북한 따위는 족히 신경 쓸 깜도 아니다. 그러니 감히 말리기 어렵다는 것이다. 평생 피눈물을 삼켜온 부모의 일이므로.
그러나 박정희 전 대통령의 명예는 굳이 회복을 필요로 할 정도가 아니다. 역대 대통령 국민평가에서 늘 압도적 1위이니까. 솔직히 지금의 국가위상이나 생활수준을 박정희 빼고 얘기하긴 어렵다. 진보좌파에서 민중역량 축적이나 자본주의 발전단계 등으로 설명하려 든들, 어떻게 그 짧은 시간에 유례없는 폭발적 경제발전이 이뤄졌는지를 온전히 납득시키지는 못한다. 시대적 동기를 만들고 힘을 결집해낸 박정희의 특별한 추진력, 리더십이 이뤄낸 성취는 필생의 정적이었던 DJ조차 인정한 것이었다. 여행할 때 전국을 덮은 짙푸른 산림의 밀생(密生)을 보면서 시대를 앞서 본 그의 안목에 감탄하곤 한다.
그러나 역사적 평가는 이렇게 단선적인 게 아니다. 탁월한 추진력이나 리더십은 독재의 다른 면이기도 하고, 강력한 국가 동기유발은 강제 국민동원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그 시절 인권과 자유를 저당 잡히고 공권력에 끔찍한 피해를 입은 이들에게는 참혹한 압제의 시대로 기억될 것이다. 더욱이 인권, 자유가 훨씬 보편화한 지금 시각으로 보면. 이 또한 엄연한 역사적 평가다.
살펴 본 검정교과서들 모두 두 측면을 공히 다뤘다. 양과 뉘앙스에서 부정 측면이 더 두드러지는 대목이 몇 있으나, 집필기준과 검정으로 수정 가능한 정도로 보였다. 어쨌든 87년 이후 모든 모순의 근원이라는 식의 비판에도 박정희는 여전히 최고평가를 받는다. 이러면 충분한 것 아닌가? 사실 박근혜가 지우고 싶어하는 그늘은 아버지 본인이 훗날 감당하길 각오한 것이기도 했다.
그런데도 지금은 잊혀졌던 박정희에 대한 온갖 비판과 모욕, 폄훼가 도리어 되살아나 분출하고. 이념대립은 또 불 붙었으며, 지리멸렬하던 야권은 돌연 부활해 가망 없던 연대로까지 치닫고 있다. 효심에서든, 정치적 셈법에서든 역사전쟁은 잘못 시작한 싸움이라는 뜻이다.
박 대통령에게 넓은 판단으로 이쯤에서 ‘전쟁 종식’을 선언하길 간곡히 권한다. “역사와 국가에 자긍심을 갖자는 충정이었으나 심각한 국론분열이 자칫 국가발전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우려에, 아쉽지만 국정화 계획을 접으려 합니다”라고.
그리고 아버지처럼 경제ㆍ안보에 진력하고 한편으론 빈부격차 해소, 인권ㆍ자유 신장, 국민통합 등 아버지가 ‘불가피하게’ 유보했던 가치들을 실현하는 데 남은 임기를 쓰는 것이 옳다. 그게 아버지의 명예를 더 높이고, 궁극적으로는 역사전쟁에서도 제대로 이기는 길이다.
주필 jun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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