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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희 칼럼] 철저히 깨지는 길로 가려는가

입력
2015.12.0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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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새정치연합은 2012년의 데자뷔

이대로 총선은 야당 넘어 국가적 불행

부질없어도 또 文 安 결단 요구할 밖에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지난 6월 의원총회에서 안철수 전 공동대표와 만나 인사하고 있는 모습. 오대근기자 inliner@hk.co.kr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지난 6월 의원총회에서 안철수 전 공동대표와 만나 인사하고 있는 모습. 오대근기자 inliner@hk.co.kr

세상 떠난 정치인의 부활은 당대 현실에 대한 불만의 투사(投射)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사후(死後) 열광은 이명박 정권에서의 지나친 보수 회귀, 과거 적폐의 재생에 대한 반작용이 피해자 정서에 더해 폭발한 것이었다. 지지율 10%대까지 추락했던 그가 지금은 역대 평가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 바로 다음에 올라있다. 극적인 반전이 의미하는 건 말할 것도 없이 MB의 실패다.

김영삼 전 대통령 또한 같다. 현실이 이토록 팍팍하지 않았으면 호감도가 돌연 50%를 넘지는 않았을 것이다. 퇴임 당시 지지도가 한자리수로 역대 최악이었으니까. 더욱이 그의 공(功)이 민주화와 포용적 인품으로 집중 추억된다는 점이 시사하는 바는 명확하다. 권위주의시대로의 급한 퇴행, 협량하고 냉혹한 현 통치방식과 맞물린 것이다.

어쨌든 그가 만든 신한국당이 새누리당의 모체임에도 YS는 묘하게 보수기득권층으로는 남아있지 않다. 여당 대표인 김무성이 적자(嫡子)를 자임한들, YS는 영원한 야당인의 이미지다. 그래서 YS에 대한 긍정적 회고에는 오히려 현 야당에 대한 답답함이 더 크게 반영돼 있다고 보는 게 맞다.

이 즈음에서 매일 지겹도록 보고 있는 새정치민주연합의 내홍을 구차하게 설명할 필요는 없을 터다. 한마디로, 극도의 적전분열로 건곤일척의 승부를 망친 2012년의 데자뷔다. 이후 새정치연합에 혁신은커녕 어떤 작은 변화도 없었고, 지도자와 계파 간 갈등 반목은 3년 간 켜켜이 쌓이고 굳어 이젠 한 종지도 덜어낼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서로 모순된 것이긴 하지만 만약 문재인이 4월 재보선 참패에 마땅히 책임을 졌거나, 아니면 안철수가 한시적으로라도 협조자세를 보였더라면 사태가 이 지경까지는 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 때 어떤 방식으로든 정리하고 당을 추슬렀어야 했다. 그러나 둘 다 차기 대선구도를 좌우할 총선을 염두에 둔 마당에 부질없는 기대였다. 그렇게 그나마 괜찮았던 타이밍을 맥없이 흘려 보냈다.

총선이 임박해오는 지금 문, 안 누구에게도 운신의 폭은 없다. 그럴 리도 없지만 누군가 한 몸 희생해 혹 구당(求黨)의 결단을 하려 해도 할 수 없게 됐다. 친노든, 비노든, 호남이든 저마다 금배지 달기 위한 최적의 당내구도에 사활을 걸어야 하는 판이다. 추종 정치인들에게 주군(主君)의 대선은 막연한 가능성의 영역이지만, 총선은 각 개인의 절박한 현실문제인 때문이다.

가뜩이나 운동장은 더욱 기울어가고 있다. 더불어 사회학자 김호기 교수는 막스 베버를 빌어 선거에서 이기려면 단순히 신념보다, 주요 국가의제에 대해 책임과 능력을 보이는 책임윤리를 보여야 한다고 했다. 취약계층이 많아질수록 뭔가 능력 있어 보이는 기득권정당에 유리하다는 계급배반투표와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상황은 더욱 더 절망적이 돼간다는 얘기다. 안에선 고질적 계파싸움으로, 밖에선 몸에 밴 습관적 몽니 만으로, 줄기차게 안 되는 길로만 달려가고 있는 새정치연합에 해줄 ‘현실성 있는’ 조언은 더 이상 누구에게도 없다.

결국 남는 건 한번 철저하게 깨져보는 일뿐이다. 그렇지 않아도 내년 총선에서는 호남과 수도권 일부 등을 포함, 전체적으로 고작 4분의 1 정도(70여석) 의석을 얻는데 그칠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마저 나오는 판이다. 아마 그때 가서야 비로소 정신차리게 될 것이다. 대선 재수에 목 매던 낡은 지휘부가 다 퇴진하고, 계파도 의미 없어진 소수 정당으로 전락하면 새누리당보다는 먼저 젊고 참신한 인물이 지휘하는 정당으로의 재탄생이 가능할 것이다. 말해놓고 보니, 그게 어쩌면 차기 대선에서 성공 가능성을 높이는 유일한 길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때까지 이 나라는 한쪽 방향타로만 안팎으로 폭풍 몰아치는 격랑을 견뎌야 한다. 표류 정도가 아니라 심각한 난파위기에 몰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괜찮다면 철저하게 깨지는 길로 가도 좋다. 단, 결코 가볍지 않을 시대의 죄를 두고두고 감당할 자신이 있다면. 문, 안이 결단할 시간은 이제 정말 별로 없다.

주필 jun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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