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의 딜레마… 무당파와 야당지지자를 동시 만족시켜야
19대 총선에서의 여야심판론과 18대 대선에서 안 후보의 출마방식
2012년 대선정국을 뒤흔든 안풍(安風)의 진원지로 중도무당파를 꼽는다. 그런데 이는 반만 맞는 얘기다. 안풍은 중도무당파의 양당 정치에 대한 불신을 한 축으로 하지만, 동시에 전통적 야당 지지층의 정권교체에 대한 열망이 또 다른 한 축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2012년 대선 당시 안철수 후보 지지층은 동아시아연구원(EAI) 패널조사(2012년 8월) 기준으로 민주통합당(현 더불어민주당) 지지자(42.2%)와 무당파(40.2%)가 반분했다. 당시 문재인 민주당 후보 지지층은 민주당 지지자가 과반(50.4%)이었고 무당파는 28.9%였다. 여기에 통합진보당 등 제3 정당 지지자(17.4%)가 합세했다.
자료: EAI·SBS·중앙일보·한국리서치 KEPS 패널조사 1차(2012.3), 4차 조사(2012.8)
민주당 지지자와 무당파는 기존 정당에 대한 시각 차이가 있다. 둘 다 정부여당에 비판적이지만 중도무당파는 여야 동시심판론이 강한 반면, 민주당 지지자는 여당심판론에 방점을 찍고 있다. EAI 패널조사 결과, 무당파에선 여야 동시심판론이 44.4%였고 정부여당 심판론이 22.9%인 반면, 민주당 지지자에선 정부여당 심판론이 45.4%였고 동시심판론은 37.4%였다.
이는 선거전략의 차이로 이어졌다. 민주당 지지자의 68.5%는 대선 당시 문 후보와 안 후보의 단일화를 지지한 반면, 무당파는 안 후보가 독자후보로 나서야 한다는 입장(43.1%)이 단일화(39.9%) 의견보다 높았다. 결국 지금은 국민의당을 이끄는 안 공동대표 입장에선 독자노선을 고수하면 야당 전통 지지층이 이탈하고, 후보단일화 등 연대를 강조하면 무당파의 이탈이 발생하는 상황이다. 이는 안 대표의 운신의 폭을 제한하면서 안풍을 뒷받침했던 유권자의 민심을 온전히 흡수하는 것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다.
호남에 대한 의존과 오해… 수도권과 2030세대 이탈
서울과 호남지역 국민의당과 더민주당 지지율 변화
자료: 한국갤럽 <데일리오피니언>
최근 제2의 안풍에 대한 기대가 급격히 약화된 원인에는 탈당 및 신당 창당 과정에서 호남의 반(反)더민주 정서에 과도하게 기댄 탓이 크다. 탈당 초기 여론이 긍정 반응한 것은 ‘강철수’ 이미지를 내세워 기존 양당체제의 극복과 ‘새정치’에 올인(다 걸기)하겠다는 입장을 명확히 제시했기 때문이다. 앞서 야당 지지층과 중도무당파 사이에서 좌고우면했던 것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그러나 창당 과정에서 새정치의 비전과 참신한 인물이 부상하지 못한 채 더민주에서 탈당한 호남 의원들을 중심으로 세 불리기에만 의존하면서 수도권 지지율은 답보하고 있다. 총선 최대 승부처이자 중도무당파가 강한 수도권에서 참신한 인물 발굴은 보이지 않고 더민주와의 적통 논쟁에만 몰두한 때문이다. 오히려 더민주가 외부인사 영입은 물론 김종인 비대위 대표 체제가 안정되면서 혁신 경쟁에서도 국민의당을 앞섰다는 평가가 많다. 국민의당은 더민주와의 호남 경쟁에서도 지역소외 감정과 더민주에 대한 반감을 동원하는데 그치고 있다. 호남에 의존할수록 수도권에서의 국민의당 지지율은 반등의 기회를 찾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실제 국민의당 창당 전후 서울에서의 지지율이 12~13%대였으나 더민주와 호남 주도권 경쟁에 몰두하는 동안 8~11% 수준으로 하락했다.
이는 호남 여론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호남은 지역의 배타적 이익 실현보다는 야권 결집을 통해 정부여당 견제는 물론 기존 여야 정당을 극복하려는 새정치에 대한 기대도 가장 높은 지역이다. 2월 한국일보, 한국리서치 여론조사에서도 호남은 전통적 정권심판론(36%)과 여야 동시심판론(30%)이 다른 지역에 비해 가장 높았다. 때문에 현재와 같이 새정치와 정권 견제를 위한 구체적 대책이 빠진 호남 정치의 강조만으로 지지율 하락을 극복하기 쉽지 않아 보인다.
안풍의 위축은 안 대표 개인의 지지기반 상실에서도 확인된다. 특히 2030 세대에서 지지 하락은 두드러진다. 18대 대선을 앞둔 2012년 10월 대선주자 지지도 조사에서 안 대표는 20대에서 47%를 차지, 문재인 후보(25%)와 박근혜 후보(18%)를 압도했다. 30대에서도 34%의 지지율로, 문 후보(31%)와 박 후보(27%)를 앞섰다. 그러나 2월 본보 여론조사에서는 비록 다자대결 구도였으나 20대 8%, 30대 4%의 지지율에 그쳤다.
안풍 부활 여부는 동시심판론 재점화에 달려
여-야별 심판론에 대한 태도와 국가경제인식
자료: 한국일보·한국리서치 여론조사(2016.2)
안풍과 국민의당의 부활 여부는 기존의 여야를 극복하길 바라는 동시심판론을 재점화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19대 총선에 비해 현재는 여야 동시심판론(38.4%→20.5%)과 정부여당 심판론(27.2%→22.7%)이 위축되고, 여당이 내세운 일방적 야당심판론(22.8→32.6%)과 무관심층(11.7→24.3%)이 늘어났다. 지난 총선과 대선을 달구었던 기존 여야정치에 대한 심판과 새정치에 대한 기대감이 빠지면서 보수층의 결집에 따른 일방적인 야당심판론과 정치적 냉소가 강화된 것으로 보인다.
여야에 대한 태도가 없는 무입장층의 경우 투표 의향도 낮다. 결국 안풍의 재점화는 기존 정치에 대한 불신이 냉소로 귀결되는 것을 막고 새정치에 대한 기대감을 이끌어내는 데 있다. 이들은 전통적 이념 대결을 떠나 여야 진영 모두에 실망한 층이며, 정책 면에선 경제와 민생이슈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2월 본보 조사에서는 일방적 여당 심판론자의 83.6%, 여야 동시심판론자의 76.5%가 한국 경제가 1년 전에 비해 악화되었다고 평가했다. 또 이들이 선택한 최우선 국정과제(최다 3순위 선정) 역시 양극화 완화, 경제 성장, 삶의 질 개선 등 경제와 민생 어젠다였다. 반면 야당심판론자나 무입장층은 경제 성장, 양극화 완화 외에 국가안보와 정치개혁 같은 어젠다를 최우선 과제를 꼽아 대체로 보수친화적 이슈를 선호했다.
따라서 안 대표가 자신의 지지기반인 여야 동시심판론자들을 선거의 장으로 끌어들이면서 여당심판론과 여야심판론 지지자들의 연대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서로 공감대가 큰 경제 이슈를 전면에 내세우는 게 필요하다. 무엇보다 실질적인 대안 제시는 물론 이를 주도할 수 있는 대안세력의 면모를 갖추는 것이 안풍 부활의 제1 선행조건이다.
정한울 객원기자(고려대 평화와민주주의연구소 교수) hanwool.jeo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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