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컷동(더불어민주당컷오프동지회)’. 며칠 전 더민주에 특이한 모임이 생겼습니다. 공천 과정에서 공천배제(컷오프) 되거나 경선에서 탈락한 이들이 함께 뭉쳤습니다. 회장은 서울 마포을에서 컷오프가 된 정청래 의원이 맡았습니다. 총무는 청년비례대표 후보에 출마했던 탈락한 김빈 빈컴퍼니 대표입니다. 여기에 지역구 후보 경선에서 탈락한 김광진, 장하나 의원 그리고 이동학 전 혁신위원회 위원 등도 참여 의사를 밝혔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뭉친 이유는 사뭇 남다릅니다. 정 의원 측 관계자는 “억울하고 답답한 마음은 모두 마찬가지지만 일단 총선 승리가 먼저이기 때문에 뭐라도 당에 도움될 방법을 찾기 위해 뭉쳤다”며 “떨어진 주제에 무슨 유세냐는 비아냥도 있을 수 있지만 지금 우리당 상황이 찬밥 더운밥 가릴 때가 아니지 않느냐”고 전했습니다. 사실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탈락이라는 아픔을 겪는 경우 그 후유증이 상당하다는 게 경험자들의 공통된 의견입니다. 당사자는 물론 가족 지인 지지자 모두가 온 힘을 다해 경선 승리와 본선 승리를 위해 뛰었기 때문에 그 충격은 상당합니다. 몇 달 동안 정상적인 사회 생활을 하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있구요. 때로는 명예 회복을 핑계로 당을 떠나 다른 당에 둥지를 틀고 또 한 번 출마의 기회를 얻거나 비례대표 1번을 보장 받는 식으로 ‘철새 정치인’으로 날갯짓을 시작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더컷동의 선택이 눈에 띄는 것은 바로 이유 때문입니다. 특히 경선 참여 기회도 없이 ‘정무적’ 판단 등으로 공천 탈락을 경험한 이들이 당을 위해 무엇인가를 하겠다고 나선 것 자체가 삭막한 여의도 정치권에서는 보기 드문 경우입니다.
컷오프 뒤 재심을 요청했지만 기각 당한 정청래 의원은 26일 전남 영광의 이개호 의원(담양ㆍ함평ㆍ영광ㆍ장성) 선거사무소 개소식에 참석해 “억울하게 공천에서 떨어졌지만 탈당하지 않은 순수한 인재들을 모아 ‘더컸유세단’을 구성해 월요일 발족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자신을 “이 시대의 참 제물인 정청래”라고 소개한 뒤 “피 흘리는 정청래 조차 필요하다면 전국에 지원 유세를 다니겠다. 지금은 더 어려운 서민들의 눈물을 닦아줄 때”라고 덧붙였는데요. ‘더컸’으로 이름을 지은 이유에 대해 “컷오프, 경선 탈락을 겪으면 한층 더 성숙해졌고 속이 더 컸다는 뜻”이라며 “절대 컷오프의 컷이 아니라 컸이다”라고 재차 강조했습니다
이어 그는 “새누리당은 당 대표가 옥새투쟁까지 하는데, 더민주에서는 억울하게 떨어졌어도 당을 위해 죽어라고 뛰는 불쌍한 인간들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해 참석자들에게 씁쓸한 미소를 짓게 했다고 합니다. 특히 자신의 컷오프를 결정한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를 향해 “개인 김종인에게는 서운해도, 대표 김종인에게는 비판을 자제해달라”며 총선 승리를 위한 단합을 호소하면서 “계산은 총선 끝나고 해도 늦지 않다”고 여운을 남겼습니다. 그는 이날 자신의 트위터에 “전남 영광 이개호 후보 개소식을 마치고 경남 진해로 이동 중”이라며 “지금까지 지원유세 총 이동거리 2,825km, 5만원권 연결했을 때 9,174억원. 총선 내내 10조원 매출을 올리겠다”고 장담했습니다.
벌써부터 지지자들 사이에는 더컸 유세단에 누구를 포함시켜달라는 요청이 쇄도하는 등 반응은 나쁘지 않습니다. 정 의원 측은 “도와주고 싶다는 분들이 많다”면서 “누구를 포함시킬 지 여부는 ‘정무적’ 판단으로 하기로 했다”고 했습니다. 28일 더컸유세단은 정식 발족을 할 예정입니다.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삼남이자 더민주 국민통합위원장으로 활약 중인 김홍걸 연세대 김대중도서관 객원교수도 이름을 올릴 예정인데요.
앞서 김 대표를 포함해 문재인 전 대표 시절 인재영입 케이스로 당에 들어 온 영입 인사들이 전국을 다니며 당에서 진행했던 ‘더불어콘서트’의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하며 ‘더벤저스(더불어민주당과 할리우드 영화 어벤저스를 합한 말)’라는 별명을 얻은 적이 있으니, 이번 이들 유세단은 ‘더벤저스 시즌 2’인 셈입니다.
더컷동처럼 전국 곳곳을 누비며 유세를 다니지는 않지만 ‘백의종군’을 선언한 중진급 현역 의원들은 ‘조용한 지원’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지역구에 새로 공천을 받은 ‘후임자’에게 선거 운동을 도울 수 있는 조직과 인력을 인계하고, 함께 지역을 다니면서 지역 유권자들에게 소개와 동시에 지지를 호소하기도 합니다. 이번 공천 과정에서 최대 접전 지역인 수도권에서 현역 중진 의원들 중 공천 탈락을 당한 경우가 많고 그 자리를 정치 신인들이 대신하다 보니 중진들의 지원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상태입니다. 유인태 의원이 컷오프 된 서울 도봉을에 공천을 받은 오기형 후보는 “개소식 후 유 의원께서 직접 밖에서 참석자과 악수하면서 잘 도와달라 부탁하는 모습을 보고 매우 감사했다”고 말했습니다.
선거 초반 흐름만 보면 더민주에게 결코 쉽지 않은 상황에서 스스로 ‘탈락자들의 모임’이라고 지칭한 더컷동이 얼마나 바람을 일으킬 지 그들의 활약을 지켜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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