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초 대학 때 일이다. 그 선배는 콜라를 마시려는 후배만 보면 핀잔을 줬다. “미제(미 제국주의)의 상징인 콜라를 마셔서야 되겠냐.” 햄버거도, 운동화도 미국 상표는 안 된다는 근본주의 논리였다. 새벽마다 학교 안 외진 곳으로 모여드는 학생들도 있었다. 이들은 북한 역사나 ‘어버이 수령’ 김일성 주석의 주체사상 책을 즐겨 읽었다. 심지어 매일같이 북쪽을 향해 절을 한다는 소문들도 나돌았다. 이번에 어버이연합 건으로 문제가 된 청와대 행정관도 “한총련 중앙간부들은 밤에는 김일성 회고록을 읽고 김일성 항일무장투쟁 비디오를 보면서 탄복하고 박수를 쳤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소위 민족해방(NL)계열 운동권 얘기다.
이들은 8월만 되면 평양으로 가겠다며 통일로 4차선 한복판에 드러누웠다. 북한의 주체사상, 자주성을 최고로 쳤고 북한 사회체제 내부의 모순이나 1인 숭배 독재체제의 문제점은 외면하려 했다. 사회불평등 노동악법 등으로 사람들이 고통 받던 시기에도 뚱딴지 같은 통일투쟁으로 찬물을 끼얹곤 했다. 선거 때만 되면 보수야당을 밀어주자고 외쳤다. 한총련을 장악한 그들은 급기야 96년 연세대 사태로 학생운동의 쇠락을 가져왔다. 그 행정관이 96년 당시 한총련 중앙집행위원장이었다는 우연 아닌 우연도 있다.
NL 운동권에 주체사상을 전파했던 강철서신의 김영환 등은 90년대 말부터 느닷없이 극우로 변신했다. 이 대열에 합류한 NL 총학생회장 출신들도 여럿 있었다. 남들은 이미 다 알고 있던 북한의 비루한 현실을 자기들은 뒤늦게 깨달았다며 떠들기도 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북한 인권문제를 외면한다고 목소리 높이던 그들은 이명박 박근혜 정부 들어선 청와대와 공공기관에서 한 자리를 꿰차거나 국회 진출을 노렸다. 그리고 이들이 행동대원으로 추켜세운 게 바로 어버이연합이었다.
어버이라는 거룩한 이름을 욕되게 하며 요즘 주목을 받고 있는 어버이연합이긴 하나, 2006년 설립 초기에는 무시해도 될만한 존재였다. 비합리적이고 과격한 구호를 외쳐대는 어버이연합의 투박함은 먹히지 않았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 들어서부터 슬그머니 힘을 얻어갔다. 조금만 바른 소리를 해도 빨갱이 종북으로 몰고 가는 게 그들의 방식이었다. 종편은 이들의 목소리를 키웠고 어버이연합의 영향력은 날이 갈수록 커져갔다. 사복 입은 경찰서장을 때리고 막무가내로 서울시의회 방청석에 난입하더니 세월호 유가족의 단식 투쟁을 모욕했다. 결국 진보도 보수도 모두 싫다는 양비론, 정치혐오증을 확산시키는 데 성공했다.
백번 양보해 ‘나라가 어지러우니 우리 애국보수 어르신들이 나서자’는 순수한 애국심의 발로였다고 이해해본다. 아마 대부분의 어버이연합 회원들은 무료한 일상에 지친 나머지 교통비 2만원을 노리고 ‘그래도 우리는 애국한다’는 마음에 집회 머릿수를 채웠으리라.
그래도 잊지 말아야 할 부분은 어버이 뒤에 숨은 거대한 커넥션이다. 일선 부처로 치면 국장급인 청와대 행정관이 일개 시민단체인 어버이연합 사무총장과 한일 위안부 합의 지지 집회 개최 일정을 ‘협의’했다는데, 이게 사실상 조율과 지시가 아니면 무엇인가. 아마도 드러난 것은 빙산의 일각일 것이다. 돈으로 권력을 사겠다며 수억원을 어버이연합에 후원한 전경련의 결정이 과연 독자적으로 나왔을까. 대통령과 청와대는 개인의 일탈로 꼬리 자르기를 할 테지만 권력욕, 출세욕에 불타 극좌와 극우를 오가며 자행했던 악행의 실체는 곧 만천하에 드러나리라 본다.
우리가 또 경계해야 하는 건 혐오의 만연이다. 젊은 어버이연합 일베에서 횡행하는 차별과 증오의 언어들, 국가정보기관 조직원이 ‘좌익효수’라는 이름을 달고 자행했던 언어폭력 같은 것들은 사라져야 마땅하다. 괴물은 보통 자신이 괴물인지도 모른다. 인간은 안 되더라도 제발 괴물은 되지 말자.
정상원 사회부 차장 orno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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