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 오늘] 5월 12일
이레나 센들러(Irena Sendler, 1910~2008)는 폴란드 바르샤바 인근 오트보츠크에서 태어났다. 7살 무렵 의사 아버지가 진료 중 티푸스에 감염돼 숨진 뒤 이웃 유대인들이 가족을 돌봐줬다고 한다. 그가 바르샤바대학서 문학을 공부한 것도 그들 덕이었다. 그는 대학 졸업 후 폴란드사회당에 가입했다.
1939년 나치 독일이 폴란드를 점령할 무렵 그는 바르샤바 시 사회복지국에서 근무했다. 유대인 게토가 만들어지고 감시가 엄격해졌다. 그 시기, 그가 유대인 탈출을 돕기 위해 만든 위조 여권과 여행 증명서만 약 3,000여 개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행위는 처형도 감수해야 했던 범죄였다.
43년 그는 유대인을 돕는 지하단체 ‘제고타(Zegota)’의 어린이 구조팀 리더였다. 복지국 직원이던 그는 게토 출입이 상대적으로 자유로웠다. 게토를 수시로 검역해 티푸스 등 전염병이 바깥으로 확산되는 것을 차단하는 것도 그의 임무 가운데 하나였다. 그는 그를 돕던 팀원 등과 함께 앰뷸런스에 유대인 아이들을 싣고 나온 뒤 폴란드 가정이나 가톨릭 수녀회가 운영하는 고아원 등에 맡겼다. ‘전염병 환자’가 탄 차여서 나치의 검문도 덜했을 것이다. 그는 게슈타포에 발각돼 심한 고문을 당하고 사형 선고를 받기도 했지만 가까스로 목숨을 구했고, 이후로도 암약했다. 2차 대전 종전까지 제고타가 구조한 아이는 약 2,500명이었고, 그 중 센들러가 직접 구한 아이도 400여 명에 달했다.
종전 후 그는 전시 폴란드정부 공무원이었다는 이유로 투옥됐고, 그 이력 때문에 공산당 치하에서 전시 활동의 공로를 인정받지 못했다. 65년 이스라엘 홀로코스트 희생자ㆍ영웅 기념관 ‘야드 바셈(Yad Vashem)’이 그를 ‘의로운 시민 Righteous among the Nation’으로 선정해 초대했지만 폴란드 공산당 정부는 사실상 적성국가인 이스라엘로 출국하는 것을 불허했다. 그는 교육ㆍ보건 관련 업무에 종사했고 특히 아동과 노인 복지에 힘을 쏟았다.
이스라엘 정부는 91년 그를 명예시민으로 추대했고, 폴란드 정부도 96년 이후에야 성십자훈장 등 여러 영예를 그에게 안겼다. 그는 2008년 5월 12일 별세했고, 이듬해 ‘오드리헵번 인권상’이 그의 영전에 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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