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의 프리미엄 수제버거 쉐이크쉑(Shake Shack)이 마침내 한반도에 상륙한 22일. 30도가 넘는 폭염 아래 몇 시간씩 줄을 서지 아니하면 구경조차 할 수 없던 그 애증의 버거를 복면기자단이 맛봤다. 두 시간 반 동안 비 오듯 쏟아지는 땀을 닦으며, 휘청거리는 다리와 현기증 이는 이마를 짚으며 입장한 매장 안. 대표 메뉴인 쉑버거와 바닐라쉐이크, 프라이를 주문할 때, 잠시 헛기침이 나왔던 건 분노해서일까, 감격해서일까. 맛의 정확한 비교를 위해 국내에 들어와 있는 해외 프랜차이즈 수제버거와 비교, 시식했다. 대조군으로 일본의 모스버거, 미국 서부의 자니로켓 버거가 채택됐다. 시식 토론에는 복면기자단의 ‘아연한 맨’, ‘행복하슈렉’, ‘낮술 마신 밤의 여왕’이 참여했다. (입성기▶ 운 좋게도 2시간 반만에 쉑 버거를 먹었다)
낮술 마신 밤의 여왕(이하 여왕): 수제버거를 먹는 이유인 패티부터 얘기해보자. 일단 두께로 보면 쉑버거가 압도적이다.
아연한맨(이하 맨): 맛과 양 모두에서 ‘육식주의자를 위한 버거'다. 셋 중 최고다. 고기 먹을 때 밥, 쌈장, 상추 같이 먹는 거 싫어하는 나 같은 육식근본주의자의 욕구를 잘 만족시켜준다. 특히 싫어하는 게 마늘, 양파, 고추 같은 오신채와의 조화인데, 순전한 고기 맛만 즐기고 싶은 사람에게 매우 적합하다.
여왕: 솔직히 모스버거를 빼곤 차이를 모르겠다. 고슬고슬 낱알로 떨어지는 다진 고기가 수제버거의 매력인데, 모스는 여백 없이 꽉 찬 조직감이 수제버거 같지가 않고, 냉동 떡갈비 같다. 자니로켓과 쉐이크쉑은 비슷하지 않나?
행복하슈렉(이하 슈렉): 난 채소와의 조화가 뛰어난 자니로켓이 가장 맛있다. 쉑버거는 비주얼상 양상추와 토마토가 주는 산뜻함이 미각적으로는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여왕: 쉑버거는 ‘나는 지금 고기를 먹고 있소이다’라는 충일감을 너무 강요하는 것 같다. 육즙이 뚝뚝 떨어지는 고기에 그만 탐닉할 때도 되지 않았나. 그리고 육즙은 자니로켓도 떨어진다.
슈렉: 자니로켓은 소스와 양파맛이 고기와 잘 어우러져서 고기만 먹고 있다는 죄책감이 줄어드는 느낌이다.
맨: 극도의 영업비밀이라고 내세우는 쉑소스가 다른 데서는 못 먹어본 색다른 맛이다.
여왕: 버거마다 다 고유의 특제소스가 있긴 하다. 모스버거도 특제 미트소스를 내세우고, 자니로켓도 직접 개발한 소스를 강조한다.
맨: 모스버거는 차라리 소스를 개발하지 않는 게 나았다.
여왕: 미국 음식비평 사이트 ‘시리어스 잇츠(Serious Eats)’에 보니 페이크 쉑소스 만드는 법이 있다. 매장 캐셔가 “마요네즈를 베이스로 신맛, 단맛, 매운맛을 가미했다”고 알려준 말을 듣고 별도로 파는 쉑소스를 사다가 재현한 레시피가 공개돼 있다.
맨: 느끼한 가운데 산미가 느껴졌는데, 그게 사우어 소스였나 보다.
여왕: 자니로켓 소스가 바디감 있고 묵직하다면, 쉑소스는 약간 가볍고 경쾌한 맛이다. 그런데 왜 버거를 셰이크랑 먹는지 이해불가다. 버거가 6,900원인데, 셰이크가 5,900원이다. 끼워팔기 느낌이다. (사실은▶ ‘쉑쉑버거’ 뉴욕보다 비싸다고?)
슈렉: 짠맛의 프라이까지 요즘 트렌드인 단짠(달고 짜고의 반복)과 잘 맞을 수 있겠다. 하지만 난 콜라로 입가심하고 싶다.
여왕: 이렇게까지 줄을 서서 먹을 만한 맛인가? 사실 난 세상의 어떤 음식도 줄 서서 먹는 데 반대다.
슈렉: 20분 정도는 줄 설 수 있을 맛이다. 대체불가 정도의 맛은 아니라고 본다.
맨: 누군가와 함께라면 15분 정도는 기다릴 수 있을 거 같다. 혼자면 5분도 안 설 것 같지만.
여왕: 이렇게까지 줄 서는 행위를 한심하다며 비판하는 사람들도 많던데, 난 그냥 작은 축제 같은 거라고 본다. 평양냉면 집 앞에 길게 늘어선 노인분들과 아이폰 매장 앞의 얼리 어댑터와 뭐가 다른가. 한국만 이런 것도 아니다. 작년에 H&M과 발망의 컬래버레이션 때도 전 세계가 소동을 벌였고, 크라상과 도넛을 결합한 ‘크로넛’이 뉴욕에서 처음 나왔을 때는 아예 암판매상까지 나올 정도로 긴 줄이 늘어서 뉴욕타임스에 몇 번이나 대서특필 됐다.
맨: 줄 서야 먹는 식당이라는 게 욕하면서 보는 드라마랑 비슷하게 뭔가 피학적인 쾌감이 있다. 같이 흉볼 사람이 없으면 흥이 안 난다.
슈렉: 그게 뭐든 원하는 걸 얻기 위해 시간과 노력을 들이는 걸 비난할 이유는 없다. 그게 무엇이냐에 대한 가치평가는 주관적인 거니까. 신제품이란 게, 특히 남들이 찬탄하는 건 ‘도대체 얼마나 대단하길래? 내가 확인해보겠다’ 이런 검증욕구 아니면 압박이 좀 있다. 허니버터칩 대란 비슷한 거 아닐까.
맨: 맞다. 쉐이크쉑도 미국 3대 버거(인앤아웃, 파이브가이즈)니 뭐니 해서 검증 욕구를 마구 자극했다. 인앤아웃이 들어와도 똑같은 풍경이 연출될 것 같다.
슈렉: 초반에 안 먹어본 사람 소외감 느끼게 하는 마케팅 전략 같다. 열기에 열기가 더해지고 나면 홍보팀은 거들뿐. 욕을 먹든 찬탄을 받든 일단 도마 위에 올라야 흥행하는 거다.
여왕: 쉐이크쉑은 파인캐주얼을 앞세운다. 스테이크 대신 먹어도 흡족한 버거라는 뜻일 텐데, 버거+프라이+쉐이크 가격이 1만6,700원이다. 너무 비싸다는 비판이 일었다. 하지만 버거만 놓고 보면 6,900원으로 국산 수제버거인 크라제 마티즈 9,600원보다 훨씬 싸다. 냉동 다짐육으로 만드는 ‘패스트푸드 버거의 정점’ 버거킹 와퍼(5,400원)보다는 비싸지만 수제니까. 대신 쉐이크 5,900원, 콜라 2,700원 등 음료가 비싸다. 버거킹 콜라가 1,700원인데, 같은 콜라라고 같은 가격을 받으라고 할 수는 없지만, 뭔가 전략에 휘말린 느낌은 든다.
맨: 쉐이크쉑도 들어올 때 ‘한국패치’ 붙는 거 아니냐는 우려가 많았다. 한국 요식업계의 상술에 대한 불만이 너무 컸다. 패치가 게임수정 버전을 뜻하는데, 오죽하면 한국에만 들어오면 질이 떨어지는 식으로 내용이 수정된다는 의미로 인터넷 은어까지 생긴 거다.
여왕: 미국에서 먹는 맛과 사이즈 그대로 한국에 들여왔다고 한다. “한국 고객이 원하는 건 미국 쉑버거의 맛이지 한국화된 맛이 아니다”라는 게 본사의 판단이자 전략이라고. 우리 사회의 사대주의를 너무 잘 아는 것 같다.
맨: 꼭 사대주의라기보단 퀄리티를 떨어뜨리지 않겠다는 약속이기도 하다. 이제까지 한국 패치 붙어서 퀄리티가 올라간 게 없다.
여왕: 자니로켓과 쉑버거 모두 미국 버거인데 크기 차이가 너무 난다. 동부는 소식가이고, 서부는 대식가인 걸까. 수제버거라면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의 층고를 자랑해야 한다는 통념에 부합하지 않는 사이즈다.
맨: 그게 K-버거의 전형이다!
여왕: 열어보면 양상추 한 가득인? 질소포장 과자도 아니고.
맨: 자를 때 다 무너져서 얼마나 짜증나는데. 한때 팥빙수도 산처럼 쌓아 올리는 거 유행하다가 다 사라졌다. 너무 질질 흘리니까 사람들이 짜증내서.
슈렉: 역시 한 입에 들고 먹을 수 있으면서 패티가 알찬 게 최고 아닐까. 처음엔 칼로 썰어먹어야 하는 수제버거가 좋은 줄 알았으나 이제는 별로다.
여왕: 크기는 작지만 패티 두께는 쉑버거가 제일 두껍다. 무항생제·무호르몬제 앵거스 비프 100%라니 아이들 먹이기에도 좋을 것 같긴 하다. 음식평가의 기준이 양보다 질로 옮겨가야겠지만, 양이 적다고 꼭 질을 추구한 것도 아닌 경우가 많다. 쉑버거가 어떤 평가를 얻을지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박선영 기자 aurevoir@hankookilbo.com
황수현 기자 sooh@hankookilbo.com
김혜영 기자 shine@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