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선실세 국정농단’의 핵심 인물로 최순실씨가 지목된 이후 세간에 그를 둘러싼 종교적인 이야기가 걷잡을 수 없이 번지고 있다. 그 중 하나는 최씨의 부친 최태민씨가 만들었다는 ‘영세교‘(또는 영생교)의 실체와 영향력이다. 연설문을 비롯해 대통령 의전, 청와대 인사, 대북ㆍ외교 정책까지 사실상 모든 국정 내용을 일개 민간인에 불과한 최씨 쪽에 유출한 것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은 물론이고 핵심 청와대 관계자 누구도 이렇다 할 설명을 하지 않아 이런 소문이 갈수록 번져가는 형국이다.
‘김형욱(전 중앙정보부장) 회고록’에 따르면 최순실씨의 부친 태민씨는 1974년 육영수 사망 직후 당시 22세였던 박근혜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내 “어머니 목소리가 듣고 싶을 때 나를 통하면 항상 들을 수 있다”며 ‘현몽(죽은 이가 꿈에 나타남)’ 능력을 주장했다. 그는 70년대 초 불교, 기독교, 천도교를 통합했다는 영세교를 세우고 교주를 지내며 원자경, 칙사, 태자마마 등을 자처한 것으로 알려졌다. (▶ 37년을 넘나든 최태민의 그림자)
하지만 학계는 이 교단의 실체 조차 허상에 불과하다고 보고 있다. 국내 900여개 신종교, 이단의 정보를 망라해 최근 출간된 ‘한국신종교대사전’(모시는사람들 발행)에서 최태민의 ‘영세교’는 끝자락에 단 한 줄 등장한다. ‘자료 부족으로 집필하지 못한 208개 교단’의 목록, 즉 기타 등등에서 그를 “영세교(영생교, 최태민)”라는 단 9자로 소개한 것이 전부다. 이 사전은 1,236쪽 분량으로 1860년 이후 150년간 생긴 교단, 교주, 인물, 개념, 사건 등 2,300개 표제어를 아우르고 있어 사이비 교단까지 포함한 국내 종교 전체를 다룬 자료로 평가 받는다.
저자인 김홍철 원광대 명예교수는 “아예 교세랄 것이나, 정식 교리, 유인물, 신도 규모 등 근거가 전혀 없고 최태민씨가 개인으로 조금 활동했다는 것 밖에는 관련 사실이 없어 하나의 종교로 보고 집필할 수가 없었다”며 “소위 간판도 걸지 않고 교주로 행세만 했던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김 명예교수는 1967년부터 50년 가까이 국내 신종교, 이단 등을 집중 연구해 온 학자다. 흔히 종교계에서 영생교로 통하는 교단은 조희성(1931~2004) 교주가 1981년 경기 부천에서 세운 ‘영생교하나님의성회’로 최씨가 교주 행세를 해온 집단과는 이름만 같은 종교라고 그는 설명했다.
영세교, 영생교, 영세계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는 최태민씨의 ‘사칭 교단’ 흔적은 1973년 5월 한 지역 신문 광고에서 발견되는 정도다. ‘영세계에서 알리는 말씀’이라는 제목의 이 광고는 “조물주께서 보내신 칙사님(고 최씨 지칭)이 이 고장에 와 불교에서의 깨침과 기독교에서의 성령강림, 천도교에서의 인내천 이 모두를 즉각 실천시킨다 하니 모두 참석해 칙사님의 조화를 직접 보시라”며 “현대의학으로 해결치 못해 고통을 당하는 난치병자와 모든 재난에서 고민하는 분은 즉각 와 상의하시라”고 주장한다. 박정희 정권의 중앙정보부 등이 직접 조사해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수사자료도 그가 “개명을 통해 7개 이름을 사용했고 서울과 대전 일대에서 난치병을 치료한다는 등 사이비 종교 행각을 벌였다”고 기록한다.
그런데도 박근혜 대통령은 구국여성봉사단 등에서 꾸준히 최씨 일가와 함께 활동했다. 1988년 8월 23일 레이디경향과 인터뷰에서는 그를 ‘목사’로 칭하며 “최 목사는 새마음운동을 처음 시작할 때부터 옆에서 도와줬던 분이다. 그는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꽉 차있을 뿐, 사심이 없는 사람이다. 최 목사를 직접 만나본 사람은 누구나 그 점을 인정할 것"이라고 옹호했다. 최순실씨는 박 대통령이 이렇게 믿었던 최태민씨의 소위 영적 능력을 물려받은 후계자로 알려져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박 대통령이 일상은 물론 국정 전반에 최순실씨를 개입시킨 배경에 종교적 이유가 있다는 의혹이 공공연히 제기된다.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은 26일 당 회의에서 “지금 상황은 박 대통령이 최태민ㆍ최순실 두 사람의 사교(邪敎)에 씌어 이런 일을 벌였다고 볼 수 밖에 없다”면서 영생교(혹은 영세계)를 국정농단의 배경으로 지목했다. 여권에서조차 “황당하지만, 최순실이 교주여야 이 모든 상황이 설명된다”는 한탄이 나온다.
한 여권 관계자는 “심각한 경제 위기 상황에서 경제부총리조차 대면 보고를 하지 못하는데 최씨에게 주요 문건이 가는 등 대통령 주변이 이렇게까지 폐쇄적, 비상식적으로 굴러간 것을 다른 권력관계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지 않냐”며 “여러 사람 의견은 듣지 않으려는 게 전형적인 사이비 교단의 행태 아니냐”고 말했다.
김혜영 기자 shine@hankookilbo.com
김성환 기자 bluebird@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