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근간 흔들리는 상황에도
靑 “대통령 숙고하고 있으니…”
쇄신방안 손 놓은채 눈치보기
일부 참모간에 거취 놓고 갈등도
청와대가 국정 정상화의 골든 타임을 흘려 보내고 있다.
‘최순실 게이트’로 최악의 위기에 몰린 청와대는 27일까지 아무런 쇄신 방안을 내놓지 않았다. 박근혜 대통령이 25일 비선실세 최순실(60)씨 의혹의 일부를 시인하고 사과한 이후 이틀을 허비하며 미적거렸다. 그 사이 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취임 후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고, 청와대ㆍ정부ㆍ새누리당은 모두 극심한 무기력에 빠졌다. 정권의 남은 임기 1년4개월을 ‘식물 정부’로 보낼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청와대 정연국 대변인은 27일 기자들과 만나 청와대ㆍ정부의 개편 계획과 관련, “박 대통령이 숙고하고 있다고 했으니 지켜 보자”고만 말했다. 박 대통령은 26일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심사숙고 하고 있다”고 했을 뿐, 지독한 혼란에 빠진 민심의 국정 쇄신 요구에 제대로 응답하지 않았다. 그것도 국민에게 직접 밝히지 않고, ‘최측근’인 이 대표를 통해 입장을 낸 것 자체가 국민을 무시한 오만이란 비판을 불렀다.
이런 지적에도 불구, 청와대 인사들은 “박 대통령 말고는 아무도 모른다”고 입을 모았다. 최씨 의혹으로 국가의 근간이 흔들리는 비상상황인데도 청와대 참모들이 박 대통령의 입만 쳐다보는 폐쇄적 의사결정 구조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청와대는 인선 작업에 시간이 필요한데다, 당장 쏟아지는 의혹에 대응할 보좌진이 필요하기 때문에 인적 개편이 지연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그런 실무적 문제가 걸림돌이라면, 박 대통령이 “쇄신을 약속한다. 기다려 달라”고 직접 밝혀, 국민을 안심시켜야 한다는 주문이 무성하다.
청와대 참모들은 끊임없이 제기되는 최씨 의혹을 해명하는데도 안일한 인식을 드러냈다. 이원종 대통령비서실장은 이날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정호성 제1부속비서관이 최씨에게 청와대 자료를 넘겼다는 의혹에 대해 “본인과 통화 해보니 전달한 사실이 없다고 한다”고 답했다. 이 비서실장이 정 비서관의 대면보고가 아닌 ‘전화 해명’을 들었다는 것을 공개하면서, 이른바 ‘문고리 비서관 3인방’의 막강한 ‘위상’은 이번 사태에 건재한 사실이 확인됐다. 이 비서실장은 “문고리 3인방이 일하는 것을 보니 어떻게 잘못된 것인지 제 눈엔 안 보였다"고 두둔까지 했다. 최씨를 비롯 박 대통령의 측근 관리를 책임진 민정수석실은 의혹에 침묵하거나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않고 있다. 청와대 내부에선 일부 참모들 간에 자신들의 거취를 놓고 갈등하고 있다는 얘기도 흘러 나왔다.
최문선 기자 moon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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