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대통령, 민주주의 훼손 책임”
이념갈등 아닌 권력 사유화 문제
광우병 등 시국선언과 성격 달라
일반 시민들 행동 나설 것 촉구
광화문 광장ㆍ신촌선 촛불시위
부산 박람회 참석한 朴대통령 앞
대학생들 기습시위 2명 입건도
국정을 농락한 ‘최순실 게이트’의 후폭풍이 시민사회로 번지고 있다. 과거 독재에 맞선 국민 저항처럼 학생과 교수들이 주도해 정권을 비판하는 ‘시국선언’을 내놓고 일반 시민들도 행동에 나설 것을 촉구하는 모양새다. 지식인 사회가 이념이나 정치적 이해관계를 떠나 민주주의 근간을 무너뜨린 이번 파문을 민주화를 이뤄냈던 87년 체제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최씨의 국정농단 행태에 분개한 대학가의 시국선언은 교수사회로 확산됐다. 성균관대 교수 40여명은 27일 서울 종로구 학교 교수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박근혜 대통령은 국가를 이끌 수 있는 능력과 양심을 갖추지 못해 탄핵이 마땅하다”고 밝혔다. 교수들은 “가능한 한 빨리 거국 중립내각을 구성해 개헌을 비롯한 모든 나랏일을 새 내각에 일임해야 더 이상의 사회 혼란과 국격 추락을 방지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성균관대 교수들을 시작으로 교수사회의 시국선언은 도미노로 이어질 기세다. 경북대 교수 80여명도 이날 박 대통령의 하야를 촉구하는 성명을 내놨고, 이화여대와 연세대 등 주요대학 교수들도 시국선언 발표를 위해 의견을 모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교수들의 조직적 결집 움직임도 감지되고 있다.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민교협)는 소속 교수들과 연구자 명의로 ‘민주주의 질서를 파괴한 행위의 책임은 대통령에 있다’는 내용의 시국선언문을 낼 계획이다. 민교협 상임의장인 송주명 한신대 일본학과 교수는 “선언문 초안을 작성 중이며 이르면 31일 학계를 대표해 선언문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대학생들과 시민단체의 시국선언과 탄핵 촉구 집회도 계속됐다. 고 백남기씨 모교인 중앙대 학생들은 “힘없는 농민을 죽인 것도 모자라 부검까지 하려는 박근혜 정권의 선택지는 권력을 내려 놓고 하야하는 것뿐”이라고 주장했다. 한양대와 카이스트, 국민대에서도 최순실 게이트의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시국선언문이 공개됐고 서울대 고려대 성균관대 홍익대 학생들도 시국선언 발표를 위한 연서명을 받는 중이다. 이날 박 대통령이 참석한 제4차 대한민국 지방자치박람회가 열린 부산 벡스코에서는 대학생 6명이 전시관 입구에서 기습 시위를 벌이다 2명이 입건되기도 했다. 서울 광화문광장과 신촌에서도 박 대통령 퇴진을 바라는 청년ㆍ시민단체의 촛불시위가 밤 늦게까지 이어졌다.
박근혜정부를 향한 전 국민적 반감은 비민주적 국정운영이 민주주의 체제가 수용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데 대한 위기감이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2000년대 들어 종종 등장했던 시국선언과도 성격이 확연히 다르다. ‘광우병 촛불집회’ ‘국정 역사교과서 반대’ 등 시국선언은 주로 이념과 정파적 갈등에서 파생된 이슈였다면 최순실 게이트는 위임된 권력의 사유화라는,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근본적 문제 의식을 담고 있다. 김혜숙 이화여대 교수협의회 공동회장은 “87년 체제 이후에는 대체로 이념의 지평 안에서 시국선언이나 성명이 나올 때가 많았다”며 “반면 이번 국정농단 사건은 기본 상식 수준을 거스르고 민주적 가치를 훼손해 모든 세대를 아우르는 저항을 부른 것”이라고 지적했다.
현 정부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고 국면전환용으로 개헌 카드를 꺼내 드는 등 헌법 가치에 대한 그릇된 인식을 드러내 지식인 사회의 반발을 극대화했다는 견해도 있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박 대통령이 국민에게서 위임 받은 권한을 사적으로 나누고도 문제점을 깨닫지 못하면서 온 국민이 절망하는 상황”이라며 “정치권은 대통령 권한을 축소시키는 방향으로 헌법 개정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현빈 기자 hbkim@hankookilbo.com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정반석 기자 banseo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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